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서영 Oct 13. 2016

여행과 일상 사이

뉴욕의 아침은 꼭 베이글과 커피여아만 했다.

일상(日常): [명사]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이상하게 나는 일상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방송국에서 첫 수습평가를 할 때도, 처음으로 이름을 걸고 영상을 만들 때도, 에디터라는 대외활동을 하면서 글을 쓸 때도 늘 '일상'에 대한 얘기를 담았다. 내 일상을 기록하는 걸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다이어리를 써왔다. 몇 안 되는 꾸준한 습관 중 하나다. 올해부턴 네이버 블로그도 시작했다.


블로그 포스팅, 유튜브, 각종 SNS를 통해 다른 사람의 일상을 빼꼼히 살펴보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이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각자의 일상이 주는 특별함이 정말 매력적이다.


여행을 가서도 가장 궁금한 건 그 사람들의 일상이다.

여행자에게 거리는, 빌딩은, 음식은, 전부 다 낯설다.

여기가 일상인 사람들은 어떨까,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디가 최고의 맛집인지, 어떤 관광명소가 제일 아름다운지, 어디로 가야 쇼핑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등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사람들이 제일 궁금하다. 이곳이 일상인 사람의 삶은 어떨지.



그래서 그런지 뉴욕에 와서 가장 먼저 해보고 싶었던 건 진짜 뉴-요커처럼 하루 보내기였다. 원래 여행을 할 때 빡빡하게 계획을 하는 편이 아니어서 간단히 알아보고 여행하면서 정하는 편인데 이날은 더더욱 그랬다. 무작정 일어나서 뉴-요커 하면 베이글 아니겠어, 하는 마음으로 구글맵에 Bagel을 검색했다. 네이버에 '뉴욕 베이글'만 치면 나오는 유명한 맛집이 그리 멀지 않았지만,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갔다. 빨리 아침을 먹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도 했지만.


그렇게 구글 맵을 보고 찾아온 Best Bagel & Coffee.

아침시간이어서 그런지 별로 유명한 곳이 아니었는데도 줄이 꽤 길었다. 메뉴판을 보고 싶었는데 줄 서있는 사람들로 가게가 꽉 찰만큼 너무 작아서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부터 조금 걱정되기 시작했다. 얼핏 본 뉴욕 여행 책자에서(사실 너무 신나서 책자까지 샀는데 제대로 읽어보지 못하고 왔다. 무작정 여행하는 스타일은 어디 안 간다.) 한국에서 흔히 먹는 연어는 Salmon이 아니라  Nova Lox라고 해야 한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크림치즈는 어떤 걸 골라야 하지, 계속 걱정하다가 덜컥 내 차례가 되었다.


다행히도 주문을 받아주시는 분이 아주 친절했다. Whole Wheat Bagel에 Nova Lox 주세요 라고 했는데, 어떤 크림치즈를 넣을 건지 물어봤다. Scallion 크림치즈 주세요 까지 자연스러운 척, 현지인처럼 말했는데 갑자기 안에 어떤 재료를 넣을 건지 하나하나 다 물어봤다. 자꾸 베이글 안에 뭘 넣고 싶냐고 물어봐서 당황한 나는 Um... mm... All이라고 말했다. 정말 아무 단어 없이 All만 크게 외쳤다. Please 조차 붙이지 않은 채.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다 물어보기도 민망했고, 베이글부터 크림치즈까지 어떤 종류가 있냐고 이미 물어봤던 터라 차마 속재료까지 물어보지는 못했다. 이렇게 글로 풀어내니 별거 아닌 일 같이 느껴지는데, 당시는 얼굴까지 시뻘게지면서 엄청 당황했었다. 주문을 마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Pick Up 코너로 가는데 베이글 만드시는 분들이 다 웃고 계시더라.



메뉴판이 안 보여서 가격을 보지 못하고 주문을 했는데 12.96불이 나왔다. 연어 베이글 하나에 14000원을 쓰다니, 그것도 아침으로! 간단하게 뉴요커처럼 아침을 먹고 산뜻한 하루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13불에 가까운 베이글을 아침으로 썼다는 생각에 충격을 먹었다. 일부러 커피도 안 시켰는데...


가게가 너무 작아서 앉아서 먹을 수 없었다. 그래, 뉴욕 하면 잔디밭 낭만이지 하며 브라이언트 파크로 향했다. 하지만 8월의 뉴욕은 밖에서 베이글을 먹는 낭만적인 아침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뉴욕까지 와서 스타벅스라니, 다국적 기업의 노예가 된 기분이었다.


스타벅스에 들어오니 익숙한 분위기라 쿵쾅거리던 마음이 좀 안정되었다. 스타벅스도 줄이 꽤 길었는데 익숙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내 이름 Seoyoung을 5번을 말해야 했던 거 빼고는 주문도 잘하고 커피도 잘 받았다. '간단하게' 베이글과 커피를 먹고 하루를 시작하려고 했던 계획이 조금 틀어졌다. 베이글과 커피를 사서 자리에 앉는데만 40분가량이 걸렸기 때문에.


자리에 앉았더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오늘 아침 일들은 마치 엄청난 퀘스트 같았다. 북적거리는 가게에서 빠르게 영어로 주문하고, 내 이름을 말하기 위해 S-e-o-y-o-u-n-g 스펠링까지 얘기하고, 자리가 없어 한참을 기다리다 겨우 앉아서 느껴보는 뉴욕의 아침. 베이글 하나를 주문하는 것부터 커피 가게에서 내 이름을 이해시키는 과정까지, 모든 게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았다.


진짜 뉴-요커처럼 베이글과 커피로 맞이하는 여유로운 아침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 온기를 잃어버린 조금 딱딱한 베이글과 Seoyoung이 적혀있는 스타벅스 커피, 정오도 안돼서 지쳐버린 나 자신뿐이었다. 분명 좋은 기분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사진은 찍어야지 하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갑자기 스멀스멀 설레는 감정이 올라왔다.


한국에 있을 때 거의 집처럼 드나들던 스타벅스인데, 대충 끼니를 때우려고 먹었던 베이글인데

지금은 옆에 있는 사람도, 유리 너머로 보이는 풍경도, 간간이 들려오는 말소리와 소음도 전부 다 달랐다.

따로 보면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모든 것들 - 베이글, 아이스 아메리카노, 스타벅스 -이 여행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전부 아름다웠다. 일상마저도 특별한 시간으로 변하는 이 느낌, 좋다.

굳이 낯선 곳에 가지 않아도 내 시간은 모두 빛나지만, 여행 중 더욱더 반짝, 하는 이 순간이 여행의 원동력이다.


여행과 일상 사이, 딱 집어 표현할 수 없는 그 부분.

당연하다고 느꼈던 걸 낯설게 보는 순간.

베이글과 커피로 뉴욕의 일상을 느끼기엔 글렀군, 하는 생각이 조금 누그러졌다.

 

여행과 일상 사이, 적당한 들뜸으로, 뉴욕에서의 첫날을 시작했다.






Best Bagel & Coffee

- 주소: 225 W 35th St A, New York, NY 10001

- 크림치즈가 조금 짰지만 맛있어요.

- 저는 되-게 잘 먹는 사람인데 반쪽 먹으니까 엄청 배부르더라고요!



인스타그램 @ seoyoungparkk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cheese_e

/ 박서영





작가의 이전글 어쩌다, 뉴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