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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맛탄산수 Jul 13. 2021

5년만에 첫 종강

추적추적 비가 내렸던 개강 전날. 녹두 거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친구 둘과 오랜만에 둘러앉아 삼계탕을 먹었다. 10년전만 해도 바로 이 거리에서 부어라 마셔라 세상 건강 해치는 일만 줄창 저질렀는데. 이젠 몸보신을 운운하며 닭뼈를 바르고 있는 우리를 보고있자니 피식 웃음이 났다. 


내가 다시 여기 돌아올 줄 그 누가 알았겠으며 우린 왜 10년째 이 관악구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맴맴 맴도는 건지, 이 거리는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은데 왜 우리가 자주 가던 식당과 노래방과 술집만 그렇게 쏙쏙 사라져버린건지. 익숙한듯 익숙지 않은 이 거리를 곱씹으며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이 될만한 추억거리를 찾아헤맨 것은, 그렇지 않으면 뾰족한 긴장감이 자꾸만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간지러운 심장을 함께 도닥거려줄 친구들이 남아있었기에 망정이지.


10년만에 다시 입학한 학교에서 이 뾰족한 긴장감은 홀로 버텨내기엔 때때로 힘들고, 가끔은 누군가의 스쳐가는 응원의 한마디로 훌훌 털어낼 수 있을 정도의 별게 아니었으며, 알고보니 모두가 마음 한 켠에, 그 모양은 서로 다를지언정, 은밀하게 품고 살아가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나 혼자만 엄살이고 유난인가 걱정했던게 무색할 만큼 모두가 조금씩 어딘가 아린 채로 조용히 버텨내고 있다는 사실에 힘을 얻다가도 이런 상황이 힘이 된다는 사실에 로시오패스가 머지않았다 싶어 눈썹 한 쪽을 찡그리며 삐딱선을 타게되는 양가감정의 나날들. 


끝이 나면 어떻게든 종지부를 찍는 의식을 치러야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성격상, 눈코뜰새없이 지나간 첫 4개월을 어떻게든 정리해야만 할 것 같은데. 막상 쓰려고 하니 무엇을 써야할지, 어떻게 지나갔는지 머릿 속이 마구 엉켜있다. A4 한바닥을 가득 채운 사실관계 앞에서 쟁점조차 잡지 못하고 백지가 된 머리를 싸매며 펜대만 굴리고 있는 기분이랄까.


"로3이 되면 좀 익숙해져?"

"아니. 늘 새롭고 늘 어려워."


2학년 시작할 때는 갑자기 사례형을 어떻게 써야할지 눈앞이 캄캄했던거 있지? 올해 3학년이 된 오랜 친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매 학기 새로운 시련이 닥친다고 했다. 나와 많은 것이 비슷한 친구가 씩씩하게 지내는 것을 보며 나도 무난히 해낼 수 있으리라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친구의 한발자국 한발자국에 어떤 무게가 실렸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니 자세히 들여다보더라도 알 수 없는 것임을 뒤늦게 깨닫고야 말았다. 아니,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다음학기에 어떤 시련이 닥칠지도 겪어봐야 아는 것이므로, 결국 다음 학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다짐들을 적어본다. 


1. 숨지말기.

2. 괜찮은 척 하지 않기.

3. 모르는건 모른다고 인정하기.

4. 못하면 못한다고 인정하기.

5. 먼저 손 내밀기.

6. 하고싶은건 하기.

7. '나같은 사람'의 필요를 생각하기.

8. 거시적인 시각에서 체력과 시간의 균형잡기.

9. 중요한 것부터 일상에 채워넣기.

10. 나의 혹은 타인의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기.

11. 눈앞에 닥치지 않은 일에 조바심내지 않기.

12. 사람, 관계, 진로, 그게 뭐든 장기적이고 입체적으로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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