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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맛탄산수 Mar 01. 2021

스물 여덟 겨울, 리트를 풀었다 (4)

직장인 로스쿨 도전기  

스물 여덟 겨울, 리트를 풀었다 (1)

스물 여덟 겨울, 리트를 풀었다 (2)

스물 여덟 겨울, 리트를 풀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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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야 나 진짜 입학했네 미루고 미루다 3월이 되면 정말 못 쓸 것 같아서 부랴부랴 작가의 서랍을 열어제꼈다. 와 시간 너무 빨라 진짜 무슨 일이야 정말 이렇게 변시까지 쭉 초고속 행진하면 소원이 없겠네 정말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



2020.10 면접 준비 

- 로스쿨 면접은 대부분 정해진 시간 동안 지문을 읽고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미리 주어진 질문이나 면접관의 질문에 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문 난이도나 구성 방식 등등은 학교마다 천차만별. 인성 질문 역시 학교별로 하는 곳도 있고 안하는 곳도 있는데, 내가 지원한 학교들은 모두 인성 질문 없이 제시문을 바탕으로만 진행됐다. 이전 지원자들의 복기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면접 기출문제는 인터넷이나 로스쿨 면접 책에서 구할 수 있다. 

- 학교마다 면접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학교를 쓴 사람들과 스터디를 하는 게 좋긴 하지만, 서로 다른 학교에 지원한 사람들끼리 스터디가 꾸려서 각 학교의 기출문제를 바탕으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자의 경우 운이 좋으면 기출문제도 쉽게 공유받을 수 있고 어떤 사람들이 지원했는지 감 잡기에도 좋은 것 같다.

- 특히 면접은 "말"을 통해서 상대방과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에 혼자 연습하기엔 스스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면접만큼은 꼭 스터디를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 나는 9월에 가군 면접스터디를 시작했는데, 자소서 때문에 너무 정신이 없어서 9월에는 하는 둥 마는 둥 제대로 집중하진 못했다. 10월 초에 서류 접수가 끝나고 나군 면접스터디까지 새로 들어가면서 10월 한 달은 면접 준비에 집중했다. 면접 스터디듣 대부분 주말 오전이나 오후에 스터디 카페에서 진행되었고, 평일에 한번 정도 추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주말에 진행하고 -> 평일에 회사에 혼을 팔았다가 -> 다시 주말이 되면 대개 머리가 모두 리셋되어버린다. 평일까지 굳이 참여했던건 다른 것보다도 면접에 대한 텐션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토요일 아침에 눈뜨면 머릿속이 허얘서 막막할 때가 한두번이었어야지. 

- 서류 결과 발표는 11월 초중순이다. 서류 결과 발표가 난 후 면접까지는 짧게는 2~3일부터 길게는 2주 정도의 텀이 있다. 어쨌든 면접은 미리미리 준비를 해둬야 하는데, 서류 결과가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만약 서류 탈락이라면 지금 면접 준비를 하는게 무슨 소용이 있나, 라는 정말 나 스스로도 어쩌라는건지 모르겠는 내면의 두려움이 문득 솟아오를 때도 많았다. 렛츠 현자타임... 서류 탈락의 상상을 하며 텐션이 축축 쳐질 때마다 주변에 뛰어난 스터디원들이 있었기에 자극을 받고 다시금 일어날 수 있었다. 유리멘탈일수록 절대 혼자 하지 말고 타인의 직간접적 도움을 구하거나 혹은 구할 수 있는 상황에 본인을 억지로라도 밀어 넣자. 시간적 여유가 많을수록 자꾸 딴생각이 나를 잠식하는걸 현명하게 방어하자. 


- 면접스터디는 ZOOM을 통한 비대면 스터디와 오프라인 대면 스터디로 진행됐다. 세네 명 정도로 조를 짜서 서로 번갈아가며 면접관-면접자 역할을 맡아 진행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식. 처음엔 전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특히 코로나 때문에 줌으로 진행했을 때에는 더더욱 심리적 압박감과 오글거림이 컸는데, 눈 딱 감고 한번 해보니 별거 아니긴 했다. 내 성향 자체가 모르는 걸 새롭게 하기 전에 엄청 걱정하고 조바심 내다가, 막상 닥쳐서 하게 되면 걱정했던 것보다 스레기는 아니라서 안심하는 그런 스타일이라 그런 것 같기도... 

- 다들 잘하겠지, 나만 몽총이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실제로 하다 보면 기죽을 만큼 편차가 크지 않고 오히려 비슷비슷하다. 가끔가다 정말 어썸 브라이트한 대답이 나올 때도 있지만 어쨌든 파릇파릇한 학부생들 앞에서 전-혀 기죽을 필요 없고, 오히려 사회 경험 많은 직장인이라 유연하게 혹은 현업 내용을 바탕으로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도 하니 스터디에서도 절대 기죽지 말자. 면접은 기세다!(라고 어디서 들음)


- 모범답안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스터디원들과 내용적 측면의 피드백을 주고받는 건 조금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답변하는 자세나 어투, 논리적 흐름이나 일관성, 답변 구조 등에 있어서는 충분히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다나까"체가 익숙지 않아서 ~했는데요, 라는 말을 자주 썼는데 이런 부분들을 좀 더 격식 있는 어투로 다듬을 수 있었고. 답변에 있어서도 나는 반론으로 A만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B, C까지 생각하고 나는 A-B-C로 말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A-a-B-b-C-c로 말하는 것들을 보면서 많이 참고했다. 확실히 다른 사람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답변이 매끄러워지는걸 보면서 같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느낌이었다.

- 면접관 역할도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됐다. 면접자로 참여할 때마다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어두었지만 실제로 내 모습을 재생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사실 한 번도 보지 않(못)았다... 그렇기에 면접관으로 참여해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게 도움이 된다. 답변 내용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표현이나 임기응변을 어떻게 해내야 할지에 대해 많은 힌트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 정해진 시간 안에 긴장감을 갖고 지문을 읽는 연습도 중요하다. 집이나 스터디 카페처럼 잘 아는 공간에서 편한 마음으로 지문을 읽을 때의 소화력과 어수선한 면접장에서 긴장감 풀로 당기고 지문을 읽을 때의 소화력은 정말 달랐다. 연습할 때에도 다소 어수선한 환경(스터디 카페 복도라든지, 집이라면 다른 가족들이 있는 거실 등)에서 시간을 더 타이트하게 재서 지문을 읽어보는게 실전 연습에 도움이 될 것 같다(그렇게 못해서 화이트 아웃 올뻔한 1인)


- 면접용으로는 황변 책을 샀는데 기출문제만 보고 나머지 부분은 거의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중고로 사도 비쌌는데-_-사실 크게 필요가 있나 싶긴 했고 막상 되팔려니 똥값 됨... 실제 면접에서는 당연히 내가 모르는 지문이 나올 테니 내용이나 배경지식 측면에서 많은 인풋을 들이기보다는, 어떤 주제가 나오더라도 답변에 사용할 수 있는 나만의 템플릿을 만들어두는게 훨씬 유용할 것 같다. 특정 주제가 나왔을 때 거시-미시로 살펴본다든지, 개인-집단-사회의 프레임으로 분석한다든지 등등. 유튜브에서 면접 프레임에 대한 영상 몇 개를 찾아보면 감이 올 것. 



2020.11. 면접 

- 운 좋게 가군 나군 둘 다 면접을 가게 되었다. 면접 스터디는 대부분 면접 대상자인지 발표가 나기 전에 종료되었는데, 그래서 실제로 스터디원들이 면접에 갔는지 안갔는지 붙었는지 떨어졌는지는 최종 결과 발표 후에 몇 다리를 건너 알음알음 알게 되거나 첫 OT에서 ZOOM 참여자 목록을 훑어보다 알게 되었다. 뭐 이건 우리 스터디가 친목 싹 뺀 순도 100% 스터디여서 그랬는지도... 

- 재택 하면서 고무줄 츄리닝 바지만 입다가 오랜만에 정장을 차려입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취업 때 서너 번 입은 게 다인 까만 정장을 입고, 나름 개성으로 유지해온 뱅 앞머리는 가르마를 타서 곱게 실핀을 꼽고, 뒷머리는 하나로 묶고, 인상이 또렷해질 정도로만 살짝 화장을 했다. 무난한 촌스러움의 끝판왕. 사기업 면접에선 개성의 표현으로 나름의 포인트를 주기도 하지만 면접장에 가보니 조금이라도 튀게 입고 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 옆에 나 옆에 나 옆에 나. 그러니까 더 떨렸다. 정말 이 무리에서 내가 빛날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 첫 번째 학교는 오전에 면접을 보았다. 대기실에서 대기하다가 내 순서가 되면 짐을 챙겨 지문을 읽을 곳으로 이동해 지문을 읽고 면접에 들어가는 식. 대기하는 동안은 아무것도 볼 수 없어서 흐리멍텅한 동공으로 시계 초침만 좇았다. 면접 지문은 A4 용지로 3면 정도, 클리어 파일에 한 장씩 껴있어서 밑줄을 긋거나 할 수 없지만 메모할 수 있는 종이를 주기 때문에 거기에 요약과 키워드를 빠르게 휘갈기면 된다. 지문을 읽는 곳은 면접장 바로 앞 어두컴컴한 복도였는데 야맹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까딱하다간 글자가 안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은 침침하지 앞에 면접장에서는 면접자가 뭐라 뭐라고 대답하는 게 들리지 왠지 듣다 보면 도통 모르겠는 지문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귀는 쫑긋해보는데 정작 뭐라고 하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고 면접보조관이 눌러준 스톱워치의 시계는 계속해서 흘러만 가는데 나는 왜 아직도 이 문장을 읽고 있는지 모르겠고 들어가서 죄송합니다를 외쳐야 하나 고민하다 에라 모르겠다 키워드만 대충 적다 보면 지문 읽기 시간이 종료된다. 선한 인상의 면접보조관에게 "교수님들 다 좋으신 분들이니까 긴장하지 마세요."라고 속삭이듯 응원을 받고 면접장으로 입장. 질문, 대답, 눈치보기, 질문, 대답, 눈치보기를 여러번 반복하다 보니 면접 종료.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면접관과 면접자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고 유리 가림막도 있었다 보니 면접관이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이 분위기는 뭘까 도통 읽을 수가 없어 더 떨렸다. 특히 어떤 면접관분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았는데 (like ㅡ"ㅡ) 이건 나중에 악몽에도 나옴...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 혼자 얼마나 실없이 웃고 발차기를 하며 미친 사람처럼 걸어 나갔다. 

- 두 번째 학교는 오후에 면접을 보았다. 오전 면접 때는 체할까봐 거의 빈속으로 갔는데 오후 면접은 든든하게 먹고 갔다. 어느새 11월 말, 날이 좀 더 추워져서 두터운 코트를 꺼내 입었다. 역시 대기실에서 대기하다가 지문 읽는 장소로 이동. 다행히 두번째 학교는 밝은 강의실에서 지문을 읽게 해주었다. 그렇지만 역시 요이땅! 하면 뇌가 정지되는건 똑같았다. 기존에 기출로 풀었던 것보다 더 애매모호뭉뚱추상적인 지문이었는데, 첫번째 학교가 input 기관이 고장난 기분이었다면 두번째 학교는 output 기관이 고장난 기분이었다... 어찌저찌 대충 마음의 정리를 하고 두 분의 면접관이 계신 면접장에 입실. 마찬가지로 질문, 대답, 눈치보기를 반복하는데 첫번째 학교보다는 호흡이 빨라서 조금 더 대화의 느낌이 강했고 순발력이 필요했다. 면접이 끝나고 오후 조가 다 끝날 때까지 한시간 넘게 강의실에 대기하는게 정말 고역이었다. 저녁에 준수 온콘 보기 전에 장 봐둬야 하는데... 코트를 베개 삼아 꾸벅꾸벅 졸다가 나왔다. 아이고 후련해!


- 면접이 끝나면 사실 별생각 없고 그냥 사람이 쿨해졌다. 올 한 해 로스쿨 농사는 다 지었다 추수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 안되면 내년에 또 하지 뭐... 하지만 발표 날짜가 다가올수록 면접관님들 앞에서 어버버한 내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이불 킥을 하게 되고 점점 잠이 안오고 삶의 의욕을 잃고 위가 아프고 악몽을 꾸고 하루 종일 찝찝하고 그랬다... 취업 이후에 이렇게 외적인 이유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건 또 처음이었다.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인 순간. 만약 백수였다면 정말 정말 깊은 동굴로 들어갔을지 모른다 회사 고마워..ㅆ어.

- 그렇게 몇 밤 지새우다 보면 발표 날이 오기는 온다. 예정된 발표 시간의 한참 전부터 혹시라도 사이트가 전산오류로 결과를 빨리 알려주지 않을까 싶어 의미 없이 새로고침 새로고침 하는데 진짜로 뜨니까 약간 토할 것 같았다. 그래도 이런 거 확인하는 데에 은근 거침이 없는 나는 수험번호를 와다다 입력하고 바로 확인. 오열... 올해 농사는 풍년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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