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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맛탄산수 Jan 16. 2022

2학기도 끝.

전필 5개. 버티는 것 만으로도 대단한 학기라고들 했다. 회사에서도 다른 일 5개를 한번에 시키지는 않는데. 잘했는지 못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무사히 2학년에 진입할 수 있게 된 걸 보면, 꽤나 무난하게, 잘, 버텨낸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 선뜻 '잘 했다'라는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나는 버텨내는 것 만으로도 힘에 부친 시간동안 누군가는 a를 해낸뒤, b를 해냈으며, 거기에 c까지 해내고야 마는 모습을 보며 도대체 나는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었다. 아니, 여전히 모르겠다.


타인을 향한 부러움과 시기심같은 얄팍한 감정들은 타오르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증발해서, 서른이가 된 이후로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다만, 이제는 끈적해서 떨쳐내기 힘든, 그만큼 구질구질한, 나에 대한 감정들이 마음 한켠을 떠나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들의 성취일수록 더욱 끈덕지다. 나는 왜 안될까, 나는 왜 조금 더 약아빠지지 못했을까, 나는 왜 조금 더 실리적이지 못했을까, 나는 왜, 더 잘하지 못했을까?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도 안다. 쌓아온 시간이 다르다는 것도 안다. 나는 나만의 무언가가 있을 거란 것도 안다. 다 아는데, 비교를 버리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게 오히려 나의 세계를 고작 나만큼만으로 작게 만드는게 아닌지 퍽 두려워지는거다. 내가 만든 우물엔 두레박도 없겠지. 


모두가 각자의 길을 걷던 세상에서는 눈을 돌리면 그만이었는데.

모두가 같은 길을 걷는 이 세상에서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쉽지가 않다.

길의 방향보다 속도가 중요한걸 알면서도 청개구리처럼 적응하기가 싫다. 

어쩌면 어려운 일을 싫다고 둘러대는건 아닐까.


정말 별거 아닌것 같다가도, 정말 별거인거 같은 기분에 며칠을 뻗어있었다.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에 휩싸여있지만 그래도 뭐 어쩌겠어.

그냥, 나는, 나왔는지조차 모르게 끝나는 드라마의 단역이기를 인정하기로 했다.


이건 순응일지, 포기일지, 인정일지, 승복일지, 안주일지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하나로 정의하긴 힘든 감정의 뭉텅이. 한달 한달 지내보면 또 달라질까? 수년간 무명을 극복하고 주연의 자리에 오르는 사람처럼.


반대로 생각하면 긍정적인 것들이, 지금은 한없이 부정적으로 느껴진다.

그냥, 지금은 그런 때인것 같으니 크게 애쓰지 않을란다.

개강할때 쯤이면 또 달라지겠지.


그래도 떠올리면 힘이 되는 것들.

출첵스터디조원들, 친구가해준따뜻한직언, 아무것도아닌것같아도민법지식이켜켜이쌓인다는교수님의말씀, 모든게다잘안되는날에도예쁜말로나를버티게해주는고마운사람, 편하게아무말이나할수있는친구, 이유는모르겠지만나를찾아주는사람들, 제일먼저켜는전산실전등, 12시사회대, 노들섬, 뼈해장국, 순두부찌개, 민법스터디사람들, 중간값의리걸마인드, 생일파티, 코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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