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생활을 통틀어 가장 힘든 시기가 언제냐는 물음에 사람들은 모두 다르게 답했다. 누군가는 낯선 환경에도 괜찮은 척해야 하는 1학년이라고, 누군가는 본격적인 경쟁 가도에 오르는 2학년이라고, 누군가는 변호사 시험의 부담감을 이고 지고 살아가는 3학년이라고 말했다.
이제 막 반환점을 돈 나의 현시점 스코어는 2학년 1학기, 압승.
1학년 자리를 내어주고 선배 소리를 듣는 학년이 되었건만 사람도, 공부도, 환경도 어느 하나 쉬워진 것이 없었다. 조금 익숙해졌다 싶어 피어나는 자신감 위에 드리우는 예상치 못한 낯섦 앞에서 나는 꽤나 자주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 실내에서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 상황이 퍽이나 다행이었달까. 휴학이라는 단어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3월을 생각하면 한 학기를 어떻게 버텨냈나 싶기도 하고, 그때 내가 너무 엄살이었나 싶기도 하고, 모든 일엔 시간과 무던함이 약이구나 싶기도 하다.
분명 혼자였다면 절대 버텨내지 못했을 시간이기도 했다. 비어버린 옆자리가 헛헛하다 싶을 때 귀신같이 찾아와 준 누군가, 어느새 엄살쟁이가 다 된 내가 두 팔을 뻗으면 닿을 지척에 있어준 오랜 친구들, 눈앞이 캄캄할 때마다 이정표로 삼을 한마디 한마디를 아끼지 않는 좋은 선배들까지. 힘든 이유만큼이나, 버텨낼 수 있는, 아니 오히려 꿋꿋하게 버텨내야만 하는 이유도 많았다. 무엇인가를 잃고 나서야 내가 가진 게 참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제일 존경하는 민법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먼지 같은 순간들이 쌓여 실력이 되는 거라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다. 뭐 그리 대단할 것 없는 하루하루를 그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꾸준히 내딛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서 야호,를 외칠 짜릿한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이번 학기를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법 공부의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자, 매력이라면 매력인 부분인 것도 같다.
"화 잘내요?"
"아니요. 그냥 저 사람도 다 사정이 있겠지, 라고 생각해요."
"이 친구 어른이 다 됐네, 어른이 다 됐어."
RC변호사님의 뜬금없는 질문에 그냥 솔직히 답했을 뿐인데. 이미 어른인 나는 한번 더 어른임을 확인받았다. 해야 하는 건 공부뿐이 없는데 하라는 공부를 안 해서 그런가 내적으로도 많이 단단해졌다. 좋게 말하면 이해와 포용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관조와 포기다.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대로 받아들이고, 길게 보면서 언젠간 쟤도 한 번은 넘어지겠지, 언젠간 쟤도 한 번은 잘 되겠지, 잘되고 안되고 총량 유지의 법칙은 누구에게나 동일할 것이라 믿는다.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다. 정상에 올랐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는 하산해야 하고, 동네 뒷산 한번 올랐다고 등산을 그만둘 것도 아니다. 시작이 반이라는데, 딱 반 왔다. 나머지 반을 어떤 모양으로 그려갈지 여전히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이 이전보다 가벼울 것임은 틀림없고, 나는 어떻게든 걸어 나갈 것 역시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