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제 다시 좀 어떻게든 써볼려고
비교적 최근에 나를 알게 된 사람들에게는 낯선 모습이지만, 나는 원래 글 쓰는 것을 읽는 것 만큼이나 좋아했다. 어렸을 때는 싸이월드, 대학생 이후로는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을 하드하게 사용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던지는 글이든, 무의미한 뻘글이든, 단순한 근황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글이든 일단 키보드를 두드렸다. 피 속에 진하게 녹아있는 글쟁이 집안의 유전자 때문이었을까. 뭐든 내 생각을 남기고, 그 글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고, 그러면서 나도 무언가를 얻어가는 그런 일련의 활동을 좋아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글을 잘 쓸 수 없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여전히 쓰고 싶은 글들이 꾸준히 떠오르고, 어느 정도 초안까지는 작성해 보지만 그렇게 작성한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한다. 다시 각 잡고 써보자 마음먹었던 브런치 역시도 작가의 서랍에 쓰다만 글들이 쌓여만 갈 뿐이다. 모두 중간에 글이 꼬이고 방향을 잃어 표류하고 있는 글들이다.
내가 글을 예전처럼 쓸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나는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도 아니고, 글쓰기 교육이나 작문 훈련을 받은 사람도 아니며, 글을 쓰는데 문제가 있다고 먹고사는데 크게 지장이 있지도 않다. 이 문제는 삶의 여러 부분 중 비교적 '덜' 중요한 문제가 되었고, 제대로 생각해 보는 것 자체를 '언젠가 시간 되면 생각해 볼 일' 중 하나로 만들어 To Do 리스트 구석 어딘가에 우선순위 낮음으로 처박아두고 몇 년이 흘렀다.
오늘 끔찍이도 아껴 마지않는 사촌동생의 대학 졸업식이 있어 신촌을 다녀왔다. 퇴근 시간이 겹쳐버린 신촌에서 집까지의 길을 오랜 시간을 들여 운전을 했다. 40km를 2시간에 걸쳐 돌아오는 귀가 길, 붉게 물들어가는 석양빛이 꽤나 멋졌다. '나는 왜 글을 잘 쓸 수 없게 되었는가?' 그 오래된 문제가 불현듯 떠올랐다. 오디오로 나오는 슈카월드 라이브 다시 보기를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리면서 머리속으로는 이 문제를 고민했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예전에는 단순히 내 생각이나 경험을 글로 남기는 것에 집중했다. 그래서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있었지만, '무엇을' 전달할 것인지는 고민 없이 명확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글의 목적을 나를 포장하는 수단으로 삼으면서, '무엇을' 전달할까에 대해 잘못된 판단들을 내렸다.
글 자체를 내 포장지로 삼게 되니, 글에 온갖 미사여구가 붙고, 간단하게 쓰여질 글에 너무 많은 내용을 때려 넣었다. 당연히 내가 쓰던 글은 자가당착에 빠진다. 글 작성에 기술적인 전문성이 없으니 하나의 글을 간단하게 끝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결국 밑천이 드러나 요란해진다.
내가 글을 막 쏟아내던 시점은 대학생 3~4학년, 직장인 때는 2~5년 차 즈음이다. 흔히 '대리병'(하단 참고)이라 불리는 그것이 내게도 임해버렸고, 그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거의 1일 1글을 찍어냈었다. 그때 당시에는 페이스북이 주류 SNS라서 페이스북을 통해 글이나 의견을 던져댔다. 근거 없는 자신감과 얕은 지식과 경험으로 던진 글들은 업계의 노련한 선배님들의 맛있는 먹잇감이 되었고, 종종 신나게 얻어터지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모든 글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떤 것들은 지금 봐도 '내가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었다고?' 싶은 것들이 '가끔' 있다)
대리병
난 이미 겪을 만큼 다 겪어봤고, 알만큼 다 알고, 일도 진짜 개잘하고, 능력도 쩔고, 아무도 날 터치할 수 없고, 아무튼 나는 슈퍼짱짱맨이고, 차가운 도시 남자 도시 여자고, 젊고 쿨하고 암튼 짱이라서 내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하는 상태. 보통 3~5년차 쯤 대리 직급 달 때 즈음 잘 걸려서 대리병이라고 한다나. 생각보다 주변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나는 윤태호 작가의 미생을 통해 처음 알았다
나이가 더 들고, 연차와 경험이 더 쌓이면서 알게 된 삶의 진실 중 하나는 '나는 언제든지 틀릴 수 있고, 지금은 맞더라도 나중에는 아닐 수 있다'라는 점이다. 그 생각이 들기 시작한 순간부터 글을 쓰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물론, 단순한 정보를 전달하는 글은 문제가 없지만 내가 즐겨 쓰던 글은 가치관, 방향성, 프로세스, 방법론 따위의 글들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방향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내용이라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지금 시점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을 수 있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에 지금을 돌이켜봤을 때는 정답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얘기한 내용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나중에라도 기억이 나서 수정을 한다면 다행이지만, 잊게 된다면 인터넷에 작성된 글은 영원히 남을 거라 후일의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글을 쓴다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언젠가부터 내 글이 어느 정도 호응을 받고, 사람들에게 미약하게나마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내가 쓰는 글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다. 글을 좀 써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놀랍게도 글이란 잘 써보겠다고 신경을 쓰면 쓸수록 잘 쓸 수 없게 되는 역설이 있다. (생각해 보니 모든 창작 영역이 그런 듯) 나 역시 그 함정에 빠졌고 '내가 쓰는 글은 완벽해야 해', '이왕에 쓰는 거 한 번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넣어서 써야 해', '장편의 개쩌는 글을 써야지'라는 쓸데없는 완벽주의 강박에 빠졌다. 역량이 따라주지 않아 완벽할 수 없으면서 완벽주의를 생각한 결과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다.
처음부터 작았던 사진을 무작정 크기만 키운다고 퀄리티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글 또한 작성자의 경험이나 생각, 기억하고 있는 정보는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 이미 결정된 상수다. 그것을 억지로 늘리고 늘려봤자 좋은 퀄리티의 글이 써지지 않는다. 억지로 늘렸을 때의 그 빈 공간에는 무엇이 들어서는지 아는가? 바로 내 경험이나 이야기가 아닌, 내가 원하는 허상의 내 모습이 글에 투영된다. 어쩌면 내 무의식에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거나 보이고 싶어하는 모습을 글로 풀어내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건강한 방법이 아니다. 남겨서 좋을게 없는 글이다. 최근에 내 글에서 발견한 가장 경계해야할 좋지 않은 버릇이다. 그런 글을 쓰고 다시 읽어보면, 도저히 봐줄 수가 없는 글이다. 그렇게 조용히 작가의 서랍으로 직행하는 것이다.
잡설이 길었다. 위를 다시 읽어보니, 옛날엔 무지성 똥글만 질러댔던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가끔 오래된 내 글에 도움을 받았다는 감사 메일을 받거나, 면접이나 옮기게 된 회사에서 내 SNS, 블로그 글을 보신 분이 알아봐주고 좋게 봐주시는 경우도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놀랍게도 지금 회사의 사내 밴드 동아리에도 그런 분이 있다. 물론 나는 수치사 직전까지 갔다 옴)
이 글도 최대한 간단하게, 해가 떨어지는 퇴근길을 운전하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정리했던 것들을 회고의 형태로 남겨둘 요량이었다. 그런데 쓰다 보니 맞아 이랬었지, 맞아 저랬었지. 하면서 생각보다 길어졌다. 그래도 오늘 생각한 것들을 최대한 의식하면서 썼던 터라, 오랜만에 글을 제대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조금씩이라도 다시 짧은 글들을 써봐야겠다. 예전같이 호기롭거나 노기등등하거나 보여주기식으로 요란한 글이 아니라 잔잔한 모닥불 같은 세로토닌 물씬 풍기는 그런 짧은 글들을 써보고 싶다.
혹시라도 연이 닿아 이 글을 본 당신도 짧은 글 하나 정도 써보는 의미 있는 순간이 있길 바래본다.
요약
1. 남 보여주려고 쓰지 마라
1. 겪은 것만 얘기해라
1. 욕심부리지 마라
1. 깝치지 마라
1. 허세 빼라
(놀랍게도 이 글의 전체를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끄적거린 글이다. 생성형 AI 의 도움을 1도 받지 않고 써내려간 글도 오랜만이다. 그렇다. 쓸 것이 명확하면 어떻게든 쓸 수 있는 것이다.)
2025.02.24 초안을 작성하다.
2025.02.25 발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