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4 댓글 2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졸업식

by 요우 Feb 25.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1. 고모네 큰 딸인 사촌동생이 대학교를 졸업했다.


나와 8살 터울이고, 18학번인 민모양이 이번에 졸업했다.


그런데 이놈의 가시나가 이걸 말을 안 해줬다. 월요일이 졸업식인데, 주말에 아버지를 통해 이 얘기를 전해 들었다. 부랴부랴 팀에 양해를 구하고, 서비스 출시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눈치 살짝 봐가며 월요일 연차를 급하게 사용한다.


사촌동생 대학교 졸업식에 간다 하니 주변 몇몇 사람들이 신기해한다. 이 친구 대학교 다니는 내내 졸업연주회든 다른 이벤트든 한 번도 가보질 못했고, 아마 이번이 얘네 학교에 갈 수 있는 마지만 찬스라고 느꼈다. 원래 할까 말까 할 때는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일단 해보는 게 낫다.


나는 19살 고3 겨울에 안동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아직도 그때 그 겨울, 낯선 북쪽의 추위와 허름한 종로 고시원과 높은 빌딩들이 즐비했던 주변 풍경들이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 그 나이에 홀로 올라와서 낯선 대도시 고시원에 자리 잡았는데, 어디 마음 비빌 곳 하나가 있었을까. 19살 이후로도 군대 휴가든, 중간중간 집밥이 먹고 싶을 때든 이래저래 목동에 살던 고모네에 신세를 많이 졌고, 지금도 지고 있다.


내가 19살이던 당시에 사촌 동생들은 11살, 10살 초등학생이었는데, 정말 어릴 적부터 얼굴 보면서 살지 않았으니, 그때는 영 어색할 뿐이다. 그러나 벌써 얘네들이 27살, 26살이다. 19살과 11살에는 큰 간극이 있지만, 35세와 27세는 생각보다 간극이 크지 않다. 어찌 보면 이젠 내 친척이나 가족 관계 중 가장 얼굴을 자주 보고 살게 된 친구들이 되었다. 난 외동이라 동생이 없으니, 아마 있었다면 이런 비슷한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은 그래서 졸업식에 갔다.


2. 마음이 신경 쓰이는 작은 한 가지


졸업식 하면 단연 남는 건 사진뿐이다. 나와 고모네 가족 모두 그것을 알고 있으니, 모두들 사진 삼매경이다.

이화여대에는 ECC라는 명소가 있다. 나는 처음 가봤는데 그 위용이 꽤나 웅장했다. 그리고 어느 졸업식과 마찬가지로 생계를 위한 전문 사진 기사분들이 작은 피켓과 포트폴리오를 들고 졸업식 장소를 배회하고 있었다. ECC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을 무렵, 갑자기 그 사진 기사 중 어떤 분이 내게 다가오더니 말한다.


"휴대폰 한 번 줘보세요. 제가 찍어 드릴게"


순간 당황했지만, 손해 볼 게 없기에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계산을 마치고 휴대폰을 건네어드렸다. 그리고, 사진 기사 분은 재빠르게 우리에게 여러 디렉션을 내리며 몇 장의 사진을 남겨주었다. 그러나 대가 없는 호의는 없는 법. 역시나 사진을 찍어주시고는 본인을 통해 제대로 된 사진을 남겨두는 것은 어떠냐 물어본다.


하지만 그 모습이 꽤나 소심하고, 수줍고, 적극적이지 않다. 그래서 그 사진 기사분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대가가 있어야 할 호의를 대가 없이 받아낸 것 같아서 마음이 영 찝찝하다. 순간적으로 몇 천 원이라도 팁을 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 머릿속으로 고민했지만 정신없는 졸업식 장소에 수많은 인파 속에 휩쓸리다 보니 어영부영 그 장소를 떠나게 되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캠퍼스 안에 작은 카페에 앉아 찍은 사진들을 둘러본다. 내 졸업식이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내가 잘 나온 사진이 있나 찾아보게 되는 법.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하나 발견했더니, 아까의 그 기사 분이 찍어주신 사진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아 역시나 5천 원이라도 팁으로 찔러 드릴걸 그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괜히 자꾸 생각이 났다.

사진 기사 아저씨 부디 그날 장사 잘 되셨길. 돈 많이 버시길 바래본다.


2025.02.25 에 초안을 작성하고, 바로 발행한 글이다.
작가의 이전글 언젠가부터 글 쓰는 게 어려워졌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