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P의 휴가 1/2

ENTP 요우의 2025년 첫 휴가: 기타, 인천, 호캉스, 항공권

by 요우


작년에는 연차를 잘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회사 일이 영 바빴던 것도 있었지만, 딱히 연차를 쓸 일이 크게 없었다.

2024년 연차도 모두 소진하지 못하고 5일 정도 남겼었다.

"올해는 좀 써야지" 생각하던 차에 4월 1일부로 소속 팀이 변경될 예정이다.

이때다 싶어 3월 22일부터 31일까지의 나름 긴 휴가를 떠났다.

3월 22일. "무계획, 무일정, 무약속"의 9박 10일. P의 휴가가 시작되었다.




3월 22일 토요일


별 다른 일정이 없었다.

집에서 쉬다가 저녁에 서현역 부근의 기타 스튜디오에서 기타 레슨 체험? 비슷한 모임이 있어서 다녀왔다.

내가 생각보다 피크를 길게 잡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 있는 거 연주 하나 해보라길래, 작년에 기타 처음 배우면서 땄던 "델리스파이스 - 고백"을 연주했다.



열명 정도가 자리에 앉아서 내 기타 연주를 쳐다보고 있는 그 기분이란.

그래도 수 없이 쳐봤던 솔로를 어느 정도는 잘 쳐냈다. 강사 분이 평가한 내 기타 등급은 "중급"이었다.

지금 연습하고 있는 너드커넥션 노래에 좀 어려운 기타 부분이 있는데, 꿀팁을 얻어왔다.

생각보다는 재밌는 모임이었기에, 아마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참여할 것 같다.




3월 23일 일요일


전날 모임에서 술을 좀 마시긴 했지만, 조금만 마셨던 터더라 생각보다는 멀쩡했다.

어디 안 나가고 집에서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를 12화까지 정주행 했다. 아 진짜 재밌더라.

나 역시 중간중간 울컥하는 데가 있었다. (눈물이 나진 않았다..)


드라마를 보다가 그래도 휴가인데 이렇게 가만있다가는 안될 것 같아서 호캉스라도 떠나자 생각했다,

일요일 늦은 밤,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인천 파라다이스 호텔을 2박 3일 예약했다.



이천의 에던 파라다이스 호텔도 후보 중에 있었는데, 에이씨 몰라하고 질렀던 것 같다.




3월 24일 월요일


미세먼지 한가득 인천


폭싹 속았수다를 늦게까지 몰아보느라 일찍 일어나지는 않았다.

점심이 한참 지나서야 짐 챙겨서 나왔다.

2박 3일로 예약했지만, P의 휴가를 위해 1주일치의 짐을 싸고, 여권까지 챙겼다.


파라다이스 호텔 트윈 룸

인스타에 숙소 사진 자랑했다가 "왜 침대가 2개냐", "누구랑 같이 간 거냐"의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안타깝게도 트윈 룸 가격이 가장 저렴했기에 트윈 룸으로 잡았지, 혼자 간 여행이다.



호텔 가서 할 거 없으면 기타나 쳐야지 생각으로 기타를 챙겨 왔던 터라,

2박 3일 동안 한쪽 침대는 기타의 차지가 되었다.



휴가이지만 당일까지 급하게 써야 할 문서가 하나 있어서,

호텔 1층의 체크인 카운터 앞에서 맥주 한잔 시켜놓고 몇 시간 정도 문서를 작성했다.


파라다이스 시티 1층: 온더플레이트

저녁은 호텔 1층의 뷔페식 온더플레이트에서 먹었다.

정가로는 1인 가격이 굉장히 비싼 편에 속하는데, 뭐 언제 또 와서 먹어보겠어 심정으로 들어가서 먹었다.

뷔페 2 접시 먹고, 커피 한잔 먹고 나왔다. 1시간 조금 넘게 있었다.

최근 몇 년간 뷔페라고는 결혼식 뷔페 밖에 안 먹어봤는데, 확실히 호텔 고급 뷔페는 다르구나 생각했다.

이 경험에 값을 지불했다고 생각하니, 2 접시만 먹었다고 크게 아쉽진 않았다.


밥 먹고 근처를 막 돌아다님

밥 먹고 소화도 시킬 겸 호텔 주변을 막 돌아다녀봤다.

여전히 미세먼지 수치가 높은지 조명의 빛 번짐이 예술이다.




가보고 싶었던 호텔 라이브 바가....

이 숙소를 잡을 때, 꼭 가봐야지 생각했던 호텔 내 라이브 바 다.

근데 하필 월, 화에 장사를 안 한다.

내가 제대로 안 알아본 탓이지만, 매우 아쉬운 부분이었다.



집에는 욕조가 없어서, 욕조 있는 숙소 온 김에 즐겼다.

좋은 호텔이라 그런지 미니바가 모두 무료다. 심지어 1박마다 리필도 해준다.

미니바에 라거, 에일 1개씩 들어있어서 2박 내내 몽땅 마셨다.

기타 엠프 겸 블루투스 스피커로 쓰고 있는 펜더 RIFF로 적당한 노래를 틀고,

요즘 E-Book으로 읽고 있는 카오스 멍키 좀 읽다가 나왔다.



할 거 다 하고 누워있는데, 집 근처 사는 학교 후배가 술 먹자고 찾는다.

타이밍 참 예술이다. 지금 인천이라고 ㅃㅇ 했더니, 그 후배의 다른 후배를 꼬셔서 술 마신 거 같더라.



3월 25일 화요일


숙소에서 진짜 늘어지게 늘어질 대로 자고, 오후에 겨우 추레한 몰골로 기어 나왔다.

바로 밥 먹으려 했으나, 가려던 식당이 4시인가 까지 브레이크 타임이라 호텔 근처 카페에서 멍 때렸다.



마침 경북 산불이 점점 확산되고 있던 터라 카톡으로 고향 친구들이 전해오는 소식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늦은 점심 겸 저녁으로 우동를 먹었다. 기대했던 우동 면이 아니라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이 아쉬움은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


밥 먹고 주변 좀 산책하다 어느덧 해 떨어질 시간이다.

그래도 인천까지 왔으니, 일몰 한번 보고 싶었다.

시간을 보니 지금 차 타고 20분 동안 을왕리 해수욕장까지 가도 시간 충분할 것 같았다.

숙소에서 대충 겉옷과 차키 챙겨서 근처 을왕리 해수욕장으로 쐈다.


을왕리 해수욕장 일몰


해수욕장에는 나처럼 일몰 보러 온 사람들이 드물게 있었다.

해가 떨어지는 것을 멍 때리면서 봤다. 생각보단 눈 부셨는데 아 선글라스 가져올걸.

뜨는 해던, 지는 해던, 수평선에 걸린 해를 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이 든다.

이전 1년 2개월을 함께 했던 조직, 그리고 4월 1일부로 바뀌게 될 조직에서의 생활 등

벌써 기억도 잘 나지 않는 N스러운 생각 하다가 더 추워지고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왔다.




3월 25일 화요일 _ 밤


호캉스의 마지막 날 밤. 나는 큰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짐은 1주일치 챙겨 왔고, 혹시 몰라 여권까지 챙겨 왔으니 사실 난 어디로든지 떠날 수 있었다.

휴가를 시작하기 전에 팀의 친한 동료가 했던 말이 자꾸만 머리를 맴돈다.



사실 대충 생각해 둔 다음 행선지 후보로 국내는 전주, 제주도, 안동

해외는 일본, 홍콩, 치앙마이 정도가 있었다.


쉽게 결정하지 못한 것은 나의 빈약한 해외여행 경험

그리고 해외에서 문제가 생기면 내가 스스로 헤쳐나올 수 있는가? 두려움

나이가 들면 낯선 경험에 대한 기피감이 생긴다더니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


휴가를 시작할 때부터 했던 길었던 고민을 잠깐의 생각 끝에 다음날 12시 40분에 출발하는 오사카행 왕복 티켓을 끊다.


저질러버렸다


굳이 따지자면,

늦은 점심 겸 저녁으로 먹었던 우동이 아쉬웠기에, 진짜 본토 우동을 먹어보고 싶었던 마음 50%

3월 말쯤 오사카 성가면 벚꽃이 딱 피었을 시기라는 얘기에 혹한 마음 30%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저지르지 않으면 언제 또 저질러 보겠냐는 마음 20% 였다.




아뿔싸, 항공권 예약하고 보니 다음날 QWER 커버팀 첫 합주가 있었다.

일정 체크를 똑바로 하지 않은 나의 죄가 컸다. 바로 석고대죄했다.



수환과 동휘형한테 따로 전화해서 석고대죄함....




3월 25일 화요일 _ 더 늦은 밤


하루 종일 안동 산불로 인해, 카톡이 울렸고, 신경이 많이 쓰였다.

어떤 친구는 하루 종일 산불 진압한다고 애쓰고, 어떤 친구는 집이 불타올랐다.

심란한 마음에 잠에 들지를 못했다.



내 기준에는 큰돈이 맞다. 하지만 내 고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비하면 기부는 훨씬 쉬운 일이다.

기부에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복잡한 심경에 브런치에 글도 하나 써 내렸다.


https://brunch.co.kr/@yowu/34


산불 소식을 계속 찾아보다가 결국 해가 뜨고, 겨우 2시간 정도 자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P의 휴가 2/2" 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yowu/36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산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