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6가지 메시지
멀지 않은 최근, 내게 뭔가 일이 있긴 했다.
그 일에서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전했던 말을 다시 한번 되뇌어본다.
나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너를 원한다
어찌 보면 차갑게도 들릴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사랑이란 위와 같은 한 줄에 가깝다.
몇 번의 연애와 이별을 지나오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 없이는 안된다"는 사랑보다, "나 없이도 잘 살지만, 그래도 나와 함께하겠다고 선택하는 사람"과의 사랑이 훨씬 건강하다는 것
이 글은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나누어 되새김질했던 생각들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면서 다시 한번 정리한 개인적인 기록이며,
스스로를 다잡기 위한 내게 전하는 나의 메시지이다.
누군가가 "없으면 안 돼서" 붙잡는 관계는 서로를 갉아먹을 뿐이다.
건강한 사랑은 나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지만, 그래도 너라서 함께 하고 싶은 관계여아 한다.
"너 없으면 못 살아" 이 말은 로맨틱한 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내 삶의 허전함을 상대에게 메워 달라는 이야기다.
한쪽은 끝없이 기대게 되고, 다른 한쪽은 끝없이 떠받쳐야 한다.
내가 믿는 건강한 사랑은 이렇다.
나 혼자서도 버틸 수 있고, 내 삶은 나름대로 잘 꾸려가고 있지만, 그래도 '너라서' 함께 있고 싶은 마음
연인은 없으면 죽어버리는 산소호흡기가 아니라, 있으면 더 좋고, 없어도 무너지지 않는 존재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사람을 필요해서 붙잡는가?
아니면, 이미 충분한 상태에서 선택해서 함께하려 하는가?
연인과 이별하거나, 삶의 루틴이 깨지거나, 캘린더가 갑자기 비어버리거나, 일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등
인생에 공백이 느껴질 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 공백을 채우고 싶어 한다.
그때,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한 마음 자체를 비난할 수 없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다른 사람을 갈망한다.
그러나 이런 상태에서 시작되는 관계는, 상대를 나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사람으로만 보게 만들기 쉽다.
이렇게 시작되는 사랑은 모래사장 위에 쌓은 성처럼 불안하다.
상대가 조금만 흔들려도, 나라는 존재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린다.
내가 믿는 순서는 이렇다.
1. 일이든 관계든 삶이 흔들리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
2.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누군가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3. 그런 상황에서 나를 버티게 해 줄 기반을 스스로 만들어 두는 것이다.
사람, 혹은 사랑을 인생의 공백을 메우는 반창고로 쓰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그 반창고 때문에 더 크게 찢어지는 순간이 온다.
언젠가 스쳐 지나가듯 본 유튜브 댓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30대 이후의 사랑은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너무나 크게 공감했고, 내게 큰 울림이 있어 쉽게 잊히지 않는 문장이 되었다.
20대의 사랑은 감정이라는 불이 붙는 대로 어느 정도 내버려 둬도 된다.
"나 지금 너무 외로워", "너 아니면 안 돼", "일단 좋으니깐 만나볼까?"
이런 마음으로 뛰어든 사랑이어도, 20대의 사랑 자체는 인생의 귀한 경험이 된다.
하지만 30대 이후의 사랑은 다르다.
연애 한 번이 인생 전체를 관통하기 시작한다.
결혼, 커리어, 경제 상황, 정신 건강, 가족계획, 생활 방식, 생활 반경 등
이 모든 것이 한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공유되고, 서로에게 흘러들어 간다.
그래서 30대의 사랑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불타오르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잘 다스릴 수 있는가에 가깝다.
감정의 강도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이 치밀어 올라올 때,
한 발자국 물러서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힘, 혹은
지금의 이 선택이 앞으로의 나와 상대방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까? 를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다.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몇 번이라도 멈춰 본 경험은 연애뿐만 아니라,
이후의 삶 전체에도 큰 도움이 된다.
혼자 잘 지내는 법을 이야기하면, 가끔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
"꼭 그래야 하나요?", "혼자여도 괜찮을 힘이 왜 필요한가요?"
혼자여도 괜찮을 힘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도 나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기초 체력이다.
내가 말하는 혼자여도 괜찮음은 고립이 아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 것,
나만의 취향, 루틴, 회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
내 기반이 무너지고, 내 감정이 흔들리고, 사람이 떠나가더라도 내가 나를 붙잡을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있는 것
지금의 사회는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불안을 강요한다.
이런 시대일수록 혼자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 기술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에 가깝다.
누군가와 사랑을 이야기하기 전에,
적어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상태였으면 좋겠다.
"나는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너와 함께라면, 더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힘든 일이 있어도 이렇게 얘기한다.
"이런 얘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아", "약한 내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기 싫어"
겉으로는 강인해 보이고, 단단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지쳐가고, 곪아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나 역시 그러했던 사람이었고,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언젠가 정말로 크게 부러져 대가를 치렀다.
자신의 약함을 끝까지 숨기는 것은 어찌 보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미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미덕이 언젠가 그 대가를 통째로 치르게 한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다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
다만 인생에 최소한 1~3명 정도, 나의 나약한 민낯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두는 것은 중요하다.
그게 꼭 연인일 필요는 없다.
친구일 수도 있고, 동료일 수도 있고,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일 수도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다"는 상태는, 길게 보면 스스로에게 독이 된다.
사랑은 한 사람에게 모든 기대와 역할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의 건강한 연결 속에서, 서로의 부담을 나누는 것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이별, 번아웃, 퇴사, 건강 문제 등 갑자기 인생에 공백이 밀려오면,
사람들은 "망했다", "다 끝난 것 같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느끼곤 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한 발자국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갑작스레 생긴 인생의 공백은 나를 제대로 한번 들여다볼 수 있는 인생의 몇 안 되는 시간일 수 있다.
바쁘게 살아오는 동안 뒤로 밀려났던 "나"라는 사람 자체를 다시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싫어하는 사람인가?
무엇을 할 때 가장 살아있는 느낌이 드는가? 나는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며, 지금 이 주어진 시간에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이러한 것을 차근차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은 의외로 자주 오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공백기들은 두려워하기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야 비로소 나를 다시 한번 성장시킬 기회가 왔다"
이렇게 받아들여보는 연습도 필요하다.
"오빠 너무 고맙고 오빠가 해준 얘기도 너무 많이 도움 됐고 나도 잘 살 거야. 그러면.. 오빠도 잘 살아."
이 마지막 인사말이 이상하리만큼 마음에 오래 남는다.
이 말을 되새겨보니,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나는 너를 대신 구해줄 수는 없다.
다만 네가 스스로를 돌보고, 사랑하고,
올바르게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허전함을 대신 메워주는 존재가 되는 게 아니다.
필요할 때 곁에서 함께 걷되, 서로의 선을 서로 지키고,
결국에는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서는 것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너를 원한다
너는 혼자서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고,
나는 혼자서도 나름 잘 살아가는 사람이다.
내가 믿고 싶은 사랑의 모양은
이러한 두 사람이 서로를 선택해서 걸어가는 모습이다.
2025년 11월 17일 새벽, 잠이 오지 않아 그 생각들을 그대로 옮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