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 Oct 19. 2021

문어_2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한줄기 불빛에 의지해 물속을 더듬는다. 원담에 갇힌 멸치떼와 복어가 불빛에 놀라 달아난다. 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유심히 살핀다. 돌이 눈을 뜬다. 검붉은 돌이 꿈틀거린다. 웅크리고 있던 몸통이 퍼지며 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돌이 나를 노려본다. 돌은 눈을 끔벅이고 뒤로 물러선다. 그때, 나는 물속으로 두 손을 집어넣어 돌을 낚아챈다. 꽤 큰 문어다. 드디어 잡았다. 문어는 여덟 개의 다리로 내 팔뚝을 감고 조인다. 빨판의 강한 힘이 느껴진다. 다리 하나를 뜯어내면 다른 다리가 달라붙는다. 도저히 놈을 팔에서 떼어내 망에 넣을 수가 없다. 놈은 더 강한 힘으로 팔뚝을 휘감는다. 놈은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 나는 가로등 불빛이 보이는 해안도로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발밑 돌을 주시하지 않고 걸음을 내딛다, 오른발이 돌에 걸려 넘어진다. 돌 틈 사이에 왼쪽 발목이 박힌다. 물을 첨벙대며 허우적거린다. 왼쪽 발목에 힘을 준다. 발목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더럭 겁이 난다. 곧 밀물이 엄청난 속도로 밀려올 것이다. 문어는 물을 만나자 더 거세게 저항한다. 왼발 힘만으론 돌 틈에 박힌 발을 빼낼 수 없다. 오른손으로 왼발을 잡아당긴다. 빠지지 않는다. 밀물이 덮치면 죽는다. 문어는 살아남는다. 나는 문어를 잡고 있는 왼손까지 동원해 발을 잡아당긴다. 문어 다리 서너 개가 돌에 달라붙는다. 돌은 내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점점 더 세게 조여 온다. 문어는 돌을 붙잡고 돌은 내 발목을 붙잡는다. 문어는 살겠다고 돌을 붙잡았고, 돌은 나를 죽이려고 내 발목을 붙잡았다. 문어를 살려줘야 돌이 나를 살려줄 모양이다. 가난했지만 그래도 잘 버텨온 시간들이 지나갔다.     


판사는 피고가 약식명령을 받았기에 다툼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조정을 하겠다며 다음달 1 11시에  나오라고 했다. 판사의 말은 십초도 걸리지 않았다. 다음 재판을 위해 쫓겨나듯 원고석에서 일어나야 했다. 그때 피고석에서 일어나 몸을 돌리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죽여 버리겠다고 목을 조르며 살기등등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욕설을 퍼붓던 남자는 법정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카페에서 처음 봤을  남자는 인정 많은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남자가 소개해준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름쯤 지내다 남자의 권유로 남자가 빌린 집의 바깥채를 빌렸다. 남자는 자신의 뜻대로 내가 따라주지 않자 돌변했다. 남자는 장사가  되지 않는 카페를 프리마켓처럼 꾸미고 싶다고 했다. 나와 그녀에게도 참여를 부탁했다. 그녀는 아이디어를 내고 웹자보를 만들어줬다. 남자는  전화번호를  넣지 않았냐며 화를 냈다. 자신이 육지에 가는 날엔 대신 카페의 문을 열어달라고도 했다. 남자는 갑질하는 고용주처럼 나를 대했다. 받아들일  없는 태도였다. 나도 일이 있어 이젠 카페에 나갈  없다고 하니, 남자는 불편해서 같이  살겠다며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법원  카페에서 애를 태우며 기다리고 있을 그녀에게 가야하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방청석에 앉았다. 다른 재판들이  없이 이어졌다. 돈에 얽힌 사람들의 치열한 다툼이 반복됐다.      


그녀는 벽지와 겨울이불을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제주시에서  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그녀는 군말 없이 출퇴근하듯 했다. 내가 힘들지 않아요? 물으면 그녀는  힘세요. 하며 팔뚝을 보여줬다. 희고 가는 팔에 힘줄만 도드라진 알통을. 그녀가  어깨를 토닥이며 귓가에 속삭였다.

“도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세 가지가 있대요. 시간, 많죠. 약간의 돈, 있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용기, 오빤 용감하죠. 난 용기가 없어 아직 못 헤어지고 있는데……, 오빤 다 가지고 있잖아요. 그때 그 남잔 겁난 거 감추려고 목소리 높였는데 오빤 당당했거든요.”

빠르게 지나가는 목소리 중에서 한 문장이 뇌리에 남았다. 용기가 없어 아직 헤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그 말의 의미를 나는 곱씹어본다. 그녀는 누구와 헤어져야 하는 걸까. 그녀는 멍하니 서있는 내 등을 짝, 소리 나게 쳤다. 그녀는 장판을 세 번이나 물걸레질했다. 벌레가 나오면 얏, 기합을 넣으며 벌레를 잡았다. 삭아서 부서지는 벽지를 걷어내고 알록달록한 벽지를 붙였다. 그녀는 씩씩했다. 바닷가에 나가 땔감으로 쓸 유목을 주우러 갈 때도 그녀는 흔쾌히 따라나섰다. 내가 갯바위로 내려가면 그녀는 혼자 리어카를 끌었다. 커다란 나무팔레트가 보이면 그녀가 먼저 내려가 빨리 내려오라 손짓했다. 밀물 때 떠밀려온 유목을, 썰물 때 보물찾기하듯 줍는 시간은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작업실로 쓸 큰 방을 청소했다. 나는 유목을 주우러 나왔다. 나무꾼이 땔감을 구하러 산으로 가는 게 아니라 바다로 간다라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리어카를 끌고 돌담 사이를 빠져나오다 덜컹, 돌담에 부딪쳤다. 리어카는 돌담 사이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틀 전에도 잘 드나들었던 길이었다. 순간, 뒷집 남자가 떠올랐다. 우리가 깔깔거리며 리어카를 끌고 나가면 이층에서 서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던 남자가. 돌담을 살폈다. 며칠 전 옆으로 옮겨놓은 돌이 길을 좁게 만들어놓았다. 설마, 자신의 땅을 서너 발짝 밟아야한다는 이유로, 돌을 쌓아 길을 막았을 리가. 집에서 해안도로로 나가는 올레길에 뒷집의 돌담이 있었다. 그 길을 이용하자면 뒷집 남자 땅을 서너 발짝 밟고 지나가야 했다. 해녀할머니가 살고 있었을 땐 그 돌담이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뒷집 땅 주인이 바뀌면서 그 돌담이 생겼다.     


제주의 겨울은 육지보다 매서웠다. 바람 부는 날이면  안에서도 입김이 나왔다. 창고에 녹슨 난로와 리어카가 있었다. 난로는 녹을 갈아내고 식용유로 닦았다. 리어카는 바퀴에 바람을 넣으니 그런대로 굴러갔다. 리어카를 밀고 돌담 앞에 섰다. 사람만 드나들  있게  돌담이라 리어카가 나갈  없었다.  하나만 옆으로 치우면 리어카가 다닐  있을  같았다. 돌을 굴려 안쪽에 넣어놓고 리어카를 밀고 바다로 나갔다. 처음 리어카를 갖고 바다로 나간 ,  번이나 유목을 실어왔다. 땔감이 쌓이자 부자가   같았다. 나는  하나를 치우고 바다로 나갔다. 북풍이 거세지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도 해질녘 돌아갔다. 내가 자고 가요, 물으면 그녀는 다음예요, 거절했다.     


죽었냐? 살았냐? 아빠  기제사야.  거야?”

일 년 만에 전화한 누나가 소리부터 질렀다. 누나의 목소리는 딱딱했다. 마치 빚독촉을 받는 것 같았다. 나는 숨이 막혀 말을 하지 못했다. 서울에 다녀올 돈이 없었다. 나의 침묵에 통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옆에서 통화를 듣고 있던 그녀가 봉투를 내밀었다.

“돈이 필요할 텐데 언제 줘야할지 몰라서 들고 다녔어요. 서울 다녀와요.”

봉투에는 모양을 가지런히 맞춘 오만 원짜리 이십 장이 들어있었다. 은행을 믿지 못한다며 그녀는 수줍게 웃었다. 고맙다는 생각보다 비참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녀는 시선을 맞추지 않고 말했다.

“멀리서 오빨 훔쳐본 적이 있어요. 갯바위에 내려가 나무를 줍는 오빠를 봤어요.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했어요. 오빠를 보면서 전화를 했어요. 오늘 못 간다고요. 돌아서는데 내가 너무 싫었어요. 못된 인간이 된 것 같아서. 미안해요. 많이. 서울 잘 다녀와요.”     


아버지 제사를 지내는 동안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누나는 짜증난 목소리로 다그쳤다. 나는 듣고만 있었다. 말을 섞지 않아 모두 답답했다. 그래서 상처를 남기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집을 나설  어머니에게 오십 만원이  봉투를 건넸다. 동그래진 눈동자가 기쁨인지, 당혹스러움인지 모르겠다. 나는  돈이 아닌 돈으로 아들노릇을 대신했다. 여관에서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의 젖비린내, 둥근 어깨, 가늘고  손가락,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는 마음 약한 여자. 불쑥 성욕이 북받쳤다. 자극 없이 발기했다. 나는 그녀를 떠올리며 자위를 했다. 괴로움을 잊기 위한 순간적 도피가 아니었다. 애틋한 감정에 젖어 나는,  몸을 만졌다. 짧은 순간에 절정을 느꼈다. 불을 끄고 누운   시간이 지났다. 잠이 오지 않는다. 제주로 돌아가면 그녀에게 안겨 잠들고 싶다. 나에게 없는, 이미 잃어버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올게요.”

법원 앞 카페에서 그녀를 안심시키고 일어섰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법원에 들어가는 게 못내 내키지 않았다. 법원조정실에서 감정이 폭발해 일을 그르치거나 화를 낼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돈을 받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됐다. 누구의 돈이 아닌 내 돈이 절실했다. 법원 현관을 지나칠 때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내가 왜 오빠를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죠? 프리마켓에서 처음 본 날 정말 신기했어요. 돈 때문에 나온 걸 텐데, 팔 생각은 안 하고 오로지 팔찌만 만들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어요. 빠르게 잘 만들지도 못하면서. 그 여유로운 모습 부럽고 좋았어요. 그 모습 부디 변치 말아요.’

나에게 여유가 있었나 보다. 나는 내 안에 없는 여유로운 나를 더듬어본다. 나도 모르는 나를 그녀가 찾았나 보다. 답장을 보내려다 시간에 쫓겨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법원 3층 제1조정실에 들어갔다. 조정관 두 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미소 띤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나도 정중하게 인사했다. 시인이라 자신을 소개한 조정관이 사건내용을 꼼꼼히 읽어봤다며, 잘 해결될 거예요. 다친 데는 어때요? 라고 물었다. 나는 상처는 다 아물었다고 답했다. 자연스럽게 왼쪽 무릎으로 손이 갔다. 통증이 느껴지진 않았다. 조정실 문이 열렸다. 남자와 여자가 들어왔다. 남자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조정관이 부부에게 말했다.

“조정할 게요. 서로 양보를 좀 하시고요. 잠시 나가 계세요.”

마지막 말은 조정관이 나에게 한 말이었다. 나는 멈칫했다. 나에게 왜 나가라고 하는지 당혹스러웠다. 일어나며 책상에 무릎을 부딪쳤다. 통증이 일었다. 문을 열고 나와 문을 닫았다. 등을 문에 기댔다. 나는 양보할 게 없었다. 긴 복도에 나만 있었다. 외로움이 몰려왔다. 그녀가 곁에 있었다면 내 손을 꼭 잡아주었을 터였다. 여자의 새된 목소리가 문을 때렸다. 몸이 진동하듯 울렸다. 시인 조정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요동쳤다.

“재판까지 가봐야 더 손해예요. 말 들으세요.”

시인의 목소리가 마지막이었다. 더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었다. 안에서 노크소리가 났다. 문고리를 돌리지 않았는데 문이 열렸다. 시인 조정관이 내 옆에 서서 종이를 내밀었다.

“이렇게 조정했어요. 읽어보고 사인하세요.”

피고가 얼마의 금액을 언제까지 원고에게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청구한 금액에서 조금도 깎이지 않은 금액이었다. 나는 사인을 했다. 조정관이 판사를 데려왔다. 판사는 기한이 한 달이지만 빨리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판사가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가 끄덕였다. 판사가 일어나고 뒤이어 부부가 자리를 떴다. 조정관 한 명도 뒤따라 나갔다. 시인 조정관이 시집 한권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제 나쁜 일 다 잊고 제주에서 행복하게 사세요.”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법원에서 도망치듯 벗어났다. 재판은 끝났다. 내가 이겼다. 나는 법원 맞은편 은행에 들어갔다. ATM기계에 카드를 넣었다. 오늘 입금된 돈이 있었다. 백만 원을 찾았다. 나는 그녀에게 달려갔다. 카페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없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시외버스터미널까지 한 시간 넘게 걸었다.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남자가 또 아일 때렸어요. 병원에 왔어요. 이번엔 절대 용서 못해요. 용기낼 게요. 일이 마무리되면 연락할게요.’

‘아이 병간호 잘 해요. 우리가 이겼어요. 돈도 다 받았어요.’

나는 답장을 보냈다. 한동안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더는 문자가 오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를 타면 다시는 그녀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이, 아이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버스에 탔다. 속이 메스꺼웠다. 실눈을 뜨고 먼 풍경을 응시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버지가 유독 나를 챙겼듯이, 나도 아이를 애틋하게 대할 수 있을까. 나는 더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를 목마 태우고 해변을 달리는 내가 보였다.       


밀물이 오고 있다. 젖은 해무가 달라붙는다. 랜턴이 허공을 헤맬 때마다 하얀 알갱이들이 달려든다. 고개를 돌려봐도 보이는  오직 해무뿐이다.   섬에 홀로 갇힌  같다. 쏴아아아. 밀물이 몰려오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밀물이 허리를, 가슴을, 목을 향해 올라온다. 목표를 잃은 불빛이 문어를 향한다. 문어는 눈을 끔벅이고 눈물을 흘린다. 문어는 먹이를 먹지 않아도 6개월 이상 살아남는다. 자신의 다리를 먹으며 생을 이어갈 만큼 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나는 문어를 놓아준다. 문어는 도망가지 않고 주위를 맴돈다. 다리를 모았다 펴고 멀어졌다 돌아온다. 밀물이 가슴까지 차오른다. 나는 문어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때  너울이 덮친다. 물살에 밀려 넘어진다. 가슴장화 안에 물이 들어찬다. 퍼뜩 정신이 든다. 환상이 아닌 현실이다. 급하게 장화 어깨끈을 풀고 발버둥 친다.  틈에 박힌 발이 빠진다. 다리는 육지로 눈은 문어를 쫓는다.

“으으으으.”

신음소리가 들린다. 원담 밖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있다. 나는 돌을 피해 모래를 밟으며 사람에게 간다. 남자는 머리와 다리를 다친 듯하다. 망에는 문어가 들어있다. 밀물이 속도를 높인다. 나는 남자를 부축한다. 남자는 문어가 돌을 붙잡듯 달라붙는다. 랜턴이 남자를 비추자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숙인다. 순간, 낯익은 얼굴이 돌과 겹친다. 뒷집 남자다. 돈 없는 남잔 고자라니깐. 돌이 낄낄대며 비웃는다. 남자는 내 눈을 피한다. 더욱 세게 팔을 붙잡는다. 나는 걸음을 멈춘다. 남자를 부축하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극단의 감정이 엉겨 붙는다. 살의와 연민이 결투를 벌인다.

“살려주세요.”

남자가 애원한다. 살려줄까, 죽게 버려두고 갈까.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나는 용기를 낸다. 다친 다리가 끌리지 않도록, 나는 남자를 높이 끌어안고 육지를 향한다. 남자는 물에서 벗어날 때까지 계속 살려달라 소리친다.     


 앞에 선다. 시선이  중앙에 놓여있는 돌을 향한다. 돌은 그대로 버티고 있다. 남자가  어깨에서 팔을 푼다. 나는 남자 허리에서 손을 뗀다. 남자 허리에 묶여있는 망이 떨어진다. 문어가 탈출을 시도한다. 남자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말없이 한쪽 다리를 쩔뚝이며 자신의 집으로 걸어간다. 문어는 바다를 향해  다리를 모았다 펴기를 반복한다. 밀물로   바다가 멀지 않다. 문어는 힘을 낸다. 해안도로를 건너는 문어를 뒤에서 따른다. 문어가 바다로 돌아가는 길을 끝까지 지켜본다. 짧은 순간 문어를 잡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문어를 잡으면 못된 사람이   같았다.     


문어는 바다로, 남자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긴장이 풀려 추위를 느낀다. 나는 돌을 무시하고 집으로 뛴다. 젖은 옷을 벗고 몸을 닦는다. 공기가 서늘하다. 난로에 숯만 남았다. 나무를 넣고 불구멍을 연다. 노랗고 빨간 불빛이 예쁘게 타오른다. 금세 훈훈해진다. 오늘도 나는 문어를 잡지 못했다. 나는 할머니가  문어를 냉장실에서 꺼낸다.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린다. 나는 망설임 없이 가위로 문어머리를 잘라내고 내장을 빼낸다. 굵은 소금으로 빡빡 씻는다. 미끈거리는 하얀 거품이 인다. 물로 행구고 다시 굵은 소금으로 씻는다. 문어를 끓는 물에 넣고 초고추장을 만들고 그녀가  김치를 꺼낸다. 문어를 꺼내 찬물에 식히고 큼지막하게 썬다. 근사한 식탁이 차려졌다.  술잔에 술을 따르고 건너편 아버지에게도 술을 따른다.

“문어 좋아하시죠. 드셔보세요. 나에게 용기와 여유가 있대요. 난 잘 모르겠는데.”

나는 단숨에 술잔을 비운다. 초고추장을 찍은 문어를 입에 넣는다. 어금니에 감기는 육질이 쫄깃쫄깃하다. 고소하고 매콤하고 시고 단 맛이 입안에 퍼진다.      


휴대폰이 운다. 그녀가 연락을 끊은  처음 울리는 휴대폰이다. 토요일 프리마켓이 열린다는 문자다. 전화를 할까, 문자를 보낼까, 망설이다 하지 않는다. 그녀는 일이 해결되면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여유로운 내가 좋다고,  모습 변치 말라 했다. 그녀가 연락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는다. 팔찌를 만들고 시집에 쌓인 먼지를 닦아야겠다. 그녀 손끝이  손등을 간질인다.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그녀가 찾아준 용기와 여유를 잊지 않기 위해, 내일도 문어를 잡으러 바다에 나갈 것이다. 앞뒤 모양을 맞춘 오만 원짜리 이십 장을 봉투에 넣는다. 그녀에게 갚을 소중한 돈이다. 봉투를 가슴에 대고 살살 문지른다. 따뜻해진다. 잠이 몰려온다. 난로 옆에 누워 눈을 감는다.

돌이 눈을 뜬다.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한다. 느리지만 여유롭게 바다로 간다.      

작가의 이전글 문어_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