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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웰콤반 Jun 28. 2019

나의 산티아고

 스물아홉, 20대가 이렇게 지나가는 게 아쉬워 달라진 나를 기대하며 떠난 까미노 포르투게스. 다녀와서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까미노에 다녀오길 잘한것같냐고 물어본다면 주저없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해안길. 알베르게까지 3km 남은 지점. 오전부터 계속 마주쳤던 무리의 어른들과 얼마 안 남았으니 힘내자며 함께 속도를 올려 걸었다. 힘들게 도착한 알베르게는 방마다 이층 침대가 빈틈없이 빽빽하게 있고, 아주 습했다. 벽에서는 곰팡이 비슷한 자국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다. 한국에서부터 두려워한 베드 버그를 여기서 드디어(?) 만날 것만 같았다. 다른 선택지가 있을지 구글 지도로 찾아보니 다시 4km 정도를 더 걸으면 깔끔한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우선 바로 앞 슈퍼에서 콜라를 사서 앉자마자 한 캔을 원샷했다. 햇빛을 피해 쉬면서 한숨 돌리니 한 시간 정도는 다시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벌레가 두려워 이 더위에 더 걸을 생각을 하다니, 아직 고생을 덜했나 보다 하고 부킹닷컴으로 예약을 해놓고 길을 나섰다. 하필 오르막길이었다. “으악 3일째가 고비라더니 진짜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혼잣말을 중얼중얼 거리며 걸었다. 그래도 갈 곳은 정해져 있고, 길은 직진하기만 하면 되니, 앞만 보고 그저 걸었다.

숙소 입구가 보이자 다리가 풀렸다.
3일 차 도착 샷.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숙소로 들어서자마자 친절하고 밝은 호스트가 반겨주었다. 길에 아무도 없고 늦은 것 같아 살짝 조급해하면서 경보로 걸었는데, 예약한 게스트들 중 내가 제일 처음 도착했다고 했다. 저녁도 제공하니 원하면 말하라 했다. 곧장 샤워를 하고 나와서 내 생에 가장 맛있는 참치 샐러드와 달콤한 화이트 와인을 맛봤다. 온종일 따라다니며 괴롭힌 따가운 햇살이었지만, 미워할 수 없는 예쁘고 쨍한 햇빛은 저녁 8시에도 여전히 반짝였다. 햇살 아래서 빨래를 널면서 빈틈없이 행복했다.

호스트가 후딱 차려준 식사
jmt 참치 샐러드
세탁기가 없는 게 옥의 티였던 게스트하우스. 손빨래하느라 팔도 다리도 탈탈 털린 셋째 날이었다.

 몸이 너무 피곤하니 영어를 쓰고 싶지 않았다. 간단한 대화만 하고 들어와서 짧게 일기를 쓴 후 침낭을 폈다. 처음 가본 혼성 도미토리라 살짝 무섭기도 했다. 걸으면서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생각 중 하나가 ‘여기까지 와서?’였다. 여기까지 와서 일찍 자려고? 여기까지 와서 다른 사람들이랑 얘기 안 할 거라고? 그런 생각에 애써 이것저것 하려고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했다. 셋째 날 저녁엔 혼자 침낭 속에서 포르투에서 사 온 와인을 홀짝홀짝 마시고 잠들었다.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행복한 마무리였다.


 몸이 피곤해서 말이 안 나오던 셋째 날과 달리 둘째 날의 나는 투머치 토커였다. 상대는 룸메이트 사비니. 사비니는 매우 건강한 60대 후반 할머니였는데 병원에서 쭉 일하다가 이번에 은퇴 후 혼자 걸으러 왔다고 했다. 조카가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며 아주 반가워했다. 나는 사비니가 좋았다. 딸보다도 어린 나를 아주 존중해주었고 도움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멋진 친구였다.

 다음날, 걷다 쉬다를 반복하다가 다시 만난 사비니는 발에 물집이 생겨서 버스 정류장에 앉아 쉬고 있었다. 오늘 숙소에 도착하면 더 걸을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고 했다. 씩씩한 사비니의 울적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걷는 것은 각자의 몫이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한국에서 준비해 간 태극기 배지를 주고 헤어지며 내일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날부터 사비니는 만나지 못했지만, 더 천천히 걸었던, 기차를 타고 점프를 했던 그녀에게 행복하고 유의미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혼자 고군분투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가, 중반부터는 함께 걷는 동생들이 생겼다. 햇빛을 피해 들어간 바에 한국인들이 있었다. 전날 영어가 하기 싫어서 묵언수행을 자처하고 잠들었던터라, 한국인들을 보자마자 외쳤다. “한국인이세요!?!?” (포르투길엔 한국인은 물론 아시안을 만나기가 매우 힘들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동생들과 하루, 이틀 함께 걷다가 산티아고까지 함께 도착하게 되었다. 처음 만났을땐 정말 몰랐다. 우리가 그렇게 오래 의지하며 걷게 될줄은.


 순례길에서 매일 해야 할 일은 숙소 정하기, 정해진 만큼 걷기 두 가지뿐이다. 점심 먹을 때쯤 숙소 예약만 하고 나면 그날 해야 할 일의 80퍼센트를 끝낸 느낌이었다. 예약하는 순간 그날의 목적지가 정해지고, 그 길을 걸어내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일상이었다. 까미노에서 걷는 동안 별거 아닌 나의 모든 행동은 스스로에게 칭찬거리였다. 툭 튀어나온 돌을 잘 피해서 안 넘어진 것, 마트에서 매운 파프리카 가루를 잘 구별해서 산 것, 달달한 와인을 잘 고른 것, 왼쪽 오른쪽 밥집 중 왼쪽을 선택했는데 뜻밖의 맛집이었다던가 하는 사실은 너무 별거 아닌 것들에 감동하고 감사하면서 나 자신을 칭찬해주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국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분명히 노력해서 얻은 것, 잘한 점도 많았는데 부족한 부분을 자꾸 보게 되고 내가 해낸 것들이 ‘이상하게 내가 운이 좋아서’ 자꾸 잘 풀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찰나에도 '정신 승리하지 말자. 너무 부족하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부족한 부분이 많겠지만 채우면 그만인걸? 나를 인정하고 다독이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떨어져 보니 감정들이 객관화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여행을 다녀와서 첫 출근을 하자마자 여행하면서는 일부러 안 봤던 에버노트부터 켰다. 여행 전 한국에서의 마지막 메모는 ‘나는 왜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는 걸까’에 대한 답이었다. 내가 적어놓은 이유들을 보니 웃음이 났다. 걸으면서는 노트에 적힌 이유들이 정말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고, 진지하게 힘주어하던 생각들에 힘이 빠지고 가벼워졌다. 그냥 이 가벼워진 마음만으로도 “다녀오길 잘했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피씨 카톡을 켜니 새로운 친구에 순례길에서 만난 인연들이 있었다. 소중하고 따뜻한 인연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에 한번 더 행복했다.





출발지 포르투, 동루이스다리 2층에서 보이는 해질녘 도루 강변.
처음 만난 화살표
첫 날, 신이 나서 거의 뛰어서 건넌 마토지뉴스 다리
이구아나 발견!
콜라의 참맛을 깨닫는 까미노

 첫날 숙소로 한국에서 정해온 곳은 걷다보니 생각보다 너무 멀었다. 길에서 만난 네덜란드 아저씨가 캠핑장이 얼마 안 가면 있다고 알려주어 다행이었다. 방갈로 여기저기서 콜라캔 따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다들 힘들었구나. 웃음이 샜다.

캠핑장의 필리 그램 메뉴

 필리 그램(순례자) 메뉴는 가성비가 정말 좋다(는 것을 바르셀로나 물가에 눈물 흘리며 새삼 깨달았다.)

한국인 어머니들과 함께한 첫 숙소 조식

 첫 숙소 캠핑장에서 한국인 어머니 네 분을 만났다. 나도 60대, 70대가 되어서 친구들과 순례길 여행을 올 수 있을까? 나는 어머니들이 대단했고 어머니들은 혼자 온 내가 대단하다고 했다. 처음 만난 큰이모뻘 어른들과 맥주도 마시고 와인도 마시고 농담도 하는 재밌는 경험을 했다. 70금 농담에 깔깔 웃고,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무한히 주시는 칭찬과 사랑에 긴 여정의 첫날밤이 너무 행복했다. 캠핑장에서 혼자 잔다는 사실이 살짝 무섭기도 했지만 좋은 사람들이 많아 행복하게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카톡 아이디를 주고 받은 후 산티아고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며  어머니들이 먼저 길을 떠났다. 우리는 서로의 행복하고 무탈한 여행을 빌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받은 조건없는 신뢰와 애정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이틀 차 룸메이트 사비니가 찍어 온 파도. 해안길에서 바닷가를 걸을 땐 내내 파도가 이렇게 칠만큼 센 바람과 싸우며 걸었다.
무거운 배낭에서 많은 걸 버렸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달달하고 도수 센 미니 포트 와인. 밤마다 홀짝홀짝 한잔씩 마셨다.
셋째 날 숙소를 바꾸게 될 줄 모르고 여유 부릴 때. 친절한 식당 사장님이 숙소 약도도 그려주고 선물로 돌도 주었다.
초반엔 화살표만 보이면 찍었더랬지
생명수
숲 속에서 만난 천사가 지나가는 순례객 모두에게 견과류를 한 줌씩 쥐어주었다.
소중한 인연이 된 배울점 많고 고마운 동생들.
당나귀. 졸귀.
할머니 사랑해요

 구글 지도에 없는 음식점이었다. 반신반의하면서 들어갔는데 메뉴판도 없고 주인 할머니는 영어를 하지 못했다. 밥 먹고 싶어요 배고파요!라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니 주방에서 냄비를 꺼내서 보여주셨는데, 장조림 같은 야채 조림이었다. 일단 뭔지 모르겠지만 더 걸을 힘이 1도 없었기 때문에 앉아서 기다렸다. 이내 할머니가 저렴하고 푸짐하게 차려주신 음식은 순례길 통틀어 가장 맛있는 저녁이었다. 밥먹고, 잠깐 대화하고, 계산하고 나가기까지 할머니께 뽀뽀를 세번 받았다..


포르투갈-스페인 국경마을 valenca
이곳은 고양이와 개의 천국
다리만 건너면 스페인이었다.
심플한 국경
그냥 걸어서 다리를 건너면 ESPANA 표지판이 보인다.
Tui의 고양이
저녁 9시에도 쨍쨍한 햇빛. 해가 길어서 좋았다.
걷다보면 종종 보이는 버려진 등산화
누군가 숲 속에 걸어놓은 엽서.
누군가 적어놓은 SANTIAGO
까미노는 고양이 천국
흔한 까미노의 풍경
비를 피해 대피한 사람들. 왼쪽 끝 포르투갈 아저씨 진짜 웃김!!
자꾸만 생각나는 순례자 맥주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잊을 수 없는 순간
오랜만에 보니 반가운 한글
강에 비친 구름이 아름다워
원 없이 먹은 문어. 뽈뽀 축제가 한창이었다.
JMT
누군가 표지판에 해놓은 낙서. 낙서지만 멋있었다.
도미토리 사장님 아들. 유리창은 침범벅이 되었다.
유난히 긴 아스팔트만 나왔던 날
260km를 함께 걸은 배낭과 나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사랑하는 조카와 영상통화. 재잘 재잘 일과를 말해주는 내 소중한 존재.
산티아고 대성당 앞. 도착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한 시간도 우습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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