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출가하신 결정적인 이유는 생로병사의 모습이 너무 처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왕궁에서 살아온 왕자는 바깥세상의 비참함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왜 아프고 병들고 늙고 죽는지에 대해 궁금하긴 하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러한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남의 일처럼 여겨오다 이제는 가슴속에 깊이 드는 의문이다.
도대체 삶이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으며 태어나서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겨났을 때 기억은 없지만 죽음의 순간은 기억할 것이며 그와 동시에 살아온 모든 기억은 영원히 사라진다. 도대체 영원이란 무엇인가?
순간적으로 이 모든 생각이 든 순간을 얼마 전 경험했다. 죽음의 공포는 삶의 에너지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다. 어느 쪽을 더 관심을 두고 보느냐의 문제인데 최근의 경험은 삶의 에너지가 되었다.
아내의 정기 검진일이었다.
뇌혈관의 큰 수술을 성공적으로 하고 나니 삶의 에너지가 한동안 생겼다.
사람이란 망각의 동물이자 간사한 존재인 게 그 에너지는 점점 소실되었다. 물론 가끔 돌이켜 보면 희미하게 떠오르긴 하지만 퇴원 직후의 감사함은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수술 후 완치하였다는 판정을 받았다.
다 나았다. 그런 생각이 드니 수술 전 간절함도 어느새 사그라들었다.
몇 년 만에 병원에 가서 조영제를 투입하고 CT검사를 했다.
몇 번 해봐서 그런지 익숙했다. 아내는 조영제 들어간 느낌을 이야기하며 안정을 취했다. 역시나 조영제는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인증사진을 찍고 점심을 먹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별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수술했던 의사가 연수를 가서 다른 의사가 진료를 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좀 섭섭했다. 실력도 인품도 좋은 의사였으니 말이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의사는 농담을 던졌다. 큰 수술을 하셨네요. 어이구 핀이 몇 개나 들어있는 거야? 머리 한쪽으로 무겁지 않으세요? 등등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모니터를 보는 의사가 순간 무엇인가 유심히 집중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가 싶어 순간 대화를 멈추고 의사가 보여주는 화면을 봤다.
이럴 수가!
의사가 가리키는 곳에 혈관이 불룩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영상이 있었다. 그동안 수술한 부위 근처 혈관이 늘어난 것인가?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좀 불룩해 보였다.
순간,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다 떠올랐다. 다시 재수술을 하면 어떡하지? 이걸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위기 상황에서 정신이 바짝 차려지는 셈이다.
의사는 다시 예전 사진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수술한 의사라면 단번에 알겠지만 그렇지 않기에 과거 자료를 비교해 본 것이다.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의사는 웃으며 사과했고 우리도 결과가 좋으니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 다시 떠올랐다. 삶의 소중함을, 살아있음을.. 다만, 긴장을 좀 하고 살아야 할 것 같다.
삶은 그렇게 지나간다.
그렇게 죽음에도 가까이 간다.
결국, 그 순간이 온다.
만약 그 마지막 순간이 올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살아있다는 게 감사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