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희수 Dec 23. 2021

1) 운명론 -이해인

born in 1992.10.13


: 토속신앙,

  과학,

  데이터,

  혹은 사기라 불리는 것에 대하여



처음으로 그것을 마주한 건, 지금은 기억도 나질 않는 어렴풋한 어린 시절, 나이를 개월 수로 셈할 정도로 어린 시절의 기억.


혼자라 적적한 할머니는 나를 맡아 키우면서 종종, 옆 빌라의 삼층 할머니네 집에 놀러 가곤 했는데, 그곳에서의 기억은 아지랑이 피워내며 자츰 꼬부라드는 향과 경면주사의 안료 냄새.


엄마는 할머니가 어린 나를 데리고 그곳에 가는 걸 싫어했지만, 신년마다 가족들의 무사안녕을 점치는 것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곤 한참 뒤, 스물여섯의 1월을 맞아 나의 취업운을 물어물어 인생의 첫 사주풀이를 만나게 되는데

무엇이 그렇게 신기하고 소름 돋는지, 스트레스에 약하다는 풀이에 어머, 갈팡질팡 우유부단한 성격이라는 풀이에 어머어머, 한 번에 대기업에 딱 붙어버리긴 어렵겠다는 풀이에 아이고아이고를 되풀이하다 한 시간이 끝나버렸다.


스트레스에 약한 나지만, 한 번에 (나름의) 대기업이라는 곳에 떡하니 합격해버린 나는 강렬한 사주풀이의 첫인상으로 매년 나의 신년운세를 점치고 싶었으나,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뚜렷한 인생의 큰 고민과 질문이 없이 돈 몇만 원을 소비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일까에 대한 고심으로 매 연초를 흘려보내고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새 천 년을 맞는 지구촌의 각오가 어마 무시했듯이, 새 십 년을 맞는 나의 각오 또한 단단했어야 함이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서른을 대해야 하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갈팡질팡 했다. 특별한 서른을 보내고 싶기도, 유난스럽지 않은 조용한 서른을 보내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미처 갈피를 잡지 못한 사이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하며 나는, 지금이야 말로 다시, 내 인생의 무사안녕을 점쳐야 할 순간임을 불현듯 깨달았던 것이다.


그렇게 여름과 가을 사이, 4번의 사주와 점을 봤다.

부산여행에서의 타로 카페, 반년을 기다려서 본 전화사주, 출장 사주부터 십 수년을 압구정에서 전설처럼 전해 내려 오는 삐삐 도사까지. 어느 대목에서는 어머어머 했고, 어느 대목에 가서는 아이고아이고 하였으나 대체로 나의 미래는 평탄하고 안정될 것이라는 게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저마다의 말들을 마음에 새기며 어느 순간 안심했고, 또 동시에 서글퍼졌다.


삼십 년간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봐오며, 누구보다 나의 삶에 최선이었던 자아에 대하여는 스스로 의심을 거둘 수가 없어, 만난  5분도  안된 낯선 이와의 삼십  남짓한 시간 속에서 몇만 원짜리의 말을 빌려 자위하는 모습이라니.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매 순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우고, 소리치며 살아가는 나의 하루하루는 어쩌면 쓸모없는 소모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점사들이 이야기하는 평탄과 안정은 나에게 오직 충만한 행복만을 가져다줄 것인지.


많은 생각들을 건네고 떠나가버린 서른 번째 시월의 가을바람 앞에서,


누군가는 과학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민간신앙이라 부르며, 또 누군가는 순 사기 엉터리라고 이야기하는 그것과 또 한 번의 당분간 안녕.





30±1살,

[1) 운명론: 토속신앙, 과학, 데이터, 그리고 사기라 불리는 것에 대하여]

written by LEE HAEIN

@__ulmaire

이해인, born in 1992/10/13


매거진의 이전글 0) 키보드 앞에 자리 잡으며 -이해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