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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수 Dec 20. 2021

손흥민 말고 손웅정 -한동우

born in 1992.02.02



[1]

손흥민


우리 또래 중 너무나 좋아하는 인물이 있다. 92년생 축구선수 손흥민이다. 30년 가까이 축구라는 스포츠에 관심조차 없었던 내가 손흥민 선수를 좋아한다고 하면 주위에서 의아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축구를 좋아하기는커녕 싫어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19년도 12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프리랜서의 삶을 시작하면서 20대의 막바지를 심적으로 꽤나 드라마틱 하게 보내고 있었다. 쫓기듯 살다가 어느덧 30살을 앞두고 있었지만, 뭐 하나 제대로 이뤄낸 것이 없어 내 마음속엔 늘 불안감이 가득했다. 그러던 중 어느 아침에 양치를 하면서 TV를 켰다. 원래 TV를 잘 보지 않는데 그날따라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스포츠뉴스가 나왔다.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들만 뛴다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손흥민이 멋진 골을 넣었다는 소식이 마침 보도되고 있었다. 세상에 불만이 많아 꼬일 대로 꼬였던 당시의 나는 ‘또 국뽕인가…’라는 자조적인 관점으로 뉴스를 시청했다.


화면 속 손흥민은 수비 진영에서 공을 잡았다. 그리고 패스할 공간을 살펴봤지만, 마땅치 않아 일단 공을 몰고 달렸다. 또 한 번 두리번거리며 패스 길을 찾았지만 역시나 빈 공간은 없었다. 하지만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상대 수비수들이 손흥민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손흥민은 일단 공을 몰며 냅다 달렸다. 달리다 보니 어느덧 상대 골문 앞. 손흥민은 가볍게 골을 성공시켰다. 영국 해설진은 “Sensational!”을 외쳤고, 관객들은 한동안 흥분된 목소리로 손흥민의 응원가를 연신 외쳤다. 나중에 이 골은 손흥민 선수에게 1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멋진 골을 넣은 선수에게 수여하는 ‘푸스카스 상’을 안겨준 골이 됐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내 눈을 의심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상대로 70m를 혼자서 그냥 냅다 달려 골을 넣은 거다. 이날부터 난 손흥민의 찐팬이 됐다. 이후 손흥민 선수의 소속 구단인 토트넘의 경기를 모두 챙겨 보는 것은 물론, 토트넘과 손흥민의 다큐멘터리, 손흥민 관련 서적, 손흥민 분석 유튜브 영상 등 손흥민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지금도 챙겨 보고 있다.



[2]

말고 손웅정


그리고 최근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에세이를 읽게 되었다. 손웅정 감독은 손흥민 선수만큼이나 축구팬들에게 유명한 인물이다. 손흥민 선수가 직접 “나의 축구는 모두 아버지의 작품”이란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걸 보면, 어쩌면 손흥민 선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곤 했었다. 손웅정이라는 사람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방황의 연속을 달리던 20대 후반의 내게 왠지 나침반 같은 존재가 되어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손웅정 감독의 에세이에는 자신의 성장기와 손흥민 선수의 성장기 그리고 그 안에서 배운 삶의 철학이 담겨있다.





[3]

그의 르타식 훈련


손흥민 선수는 어린 시절 아버지 밑에서 아주 혹독한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았다. 그런데 그 훈련법이 꽤나 독특했다고 한다. 기본기에만 몇 년을 투자하는 다소 ‘투박한’ 방식의 훈련은 당시엔 너무나 생소했던 것이다. 그래서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손흥민 선수는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정식 축구부에 들어갔다. 기본기도 제대로 장착하지 못한 채 잔기술들을 배우면 크게 성장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확고한 신념 때문에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축구부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아마 그 당시 손흥민 선수와 같은 축구부에 소속돼 있었던 친구들은 내심 손흥민 선수를 무시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2년 뒤, 손흥민 선수는 실력과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아 17살의 나이에 대한축구협회에서 제공하는 유소년 축구 유학 프로그램에 발탁되어 독일행 비행기에 오르게 됐다.


어떤 사람들은 손흥민 선수가 독일에 간 후로 지금의 월드클래스 선수로 성장하기까지 탄탄대로를 걸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타고난 사람이라서 잘 된 거라며 가볍게 여긴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독일행에 오른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손흥민 선수는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여러 위기들을 극복해 나가면서 지금의 손흥민 선수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극복의 비법은 ‘기본에 충실’한 것. 여기서 말하는 기본이란, 축구 기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겸손한 마음, 감사한 마음, 욕심을 버리고 모든 걸 내려놓는다는 마음. 이러한 마음가짐이 심신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기본’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손흥민 선수는 30살인 지금도 매 시즌 자신의 강점은 더욱 살리고, 단점은 보완해 나가면서 성장하고 있다.


[4]

그리고 서른의 우리들


축구 선수의 20살은 일반인의 30살과 시기적으로 비슷하다고 한다. 일반인은 보통 인간 사회의 차가운 냉기를 30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피부로 느끼기 시작하는데, 축구선수는 20살 성인이 된 후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의 냉혹한 심판을 맛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10대 때 날아다니던 선수가 20대 때부터 폼이 급격히 떨어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고 한다. 기본기의 중요성을 경시하고 마음이 앞서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손웅정 감독은 말한다.


축구 선수로 따지면 나는 이제 막 유소년기를 마치고,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난 20대 때 손흥민 선수처럼 기본기에 충실했는가? 내가 옳다고 믿었던 무언가를 지금까지 고집해왔는가? 돌이켜보면 손흥민 선수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20대 때 여기저기에서 이것저것 내 나름 다양한 걸 시도해 본 것 같다. ‘성공’에 더 빠르게 다가서기 위한 요행을 찾았던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설프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너무 뒤처진 것 같거나, 나 혼자 엉뚱한 우물을 파고 있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바보같이 남의 말에 잘 휘둘리곤 했다. 내가 가는 길이 옳다고 믿고 우직하게 걸어가야 한다. 냉철히 분석했을 때 내가 가는 길이 결코 틀린 길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면, 더더욱 나 자신의 판단을 믿고 묵묵히 전진해야 한다. 20대의 난 그러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라도 나의 오판을 깨달았단 거다. 내가 축구선수는 아니지 않은가. 당장 이번 주말에 중요한 경기가 잡혀 있다든가, 사회의 냉혹한 심판을 앞두고 있지는 않다. 나에겐 아직 기본에 충실할 기회가 있다.



지금의 난 몸과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 가진 거에 감사하고, 이룬 것에 겸손하며,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되 욕심은 버리는 마인드 세팅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마냥 행복하기까지 하다. 고객사와의 계약이 끊기면 당장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하는 불안한 프리랜서의 삶이지만, 지금처럼 우직하고 성실하게 산다면 우여곡절이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든다.


두렵고 초조한 내 삶에 나침반이 되어준 손웅정 감독. 내 사무실 책상엔 손흥민 말고 손웅정의 사진이 놓여있다.




30±1살,

[손흥민 말고 손웅정]

written by HAN DONGWOO

@corydongwoo

한동우, born in 199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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