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in 1993.05.01
어린 시절, 막연하게 나의 20대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언가가 반드시 되어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20대의 나는 태어난 이래로 가장 나약했고 흔들렸으며, 아무것도 아닌 그저 그런 시절로 지나가고 있다.
아들이 필요한 집의 딸로 태어나 탄생 자체가 환영받으며 시작한 삶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릴 적부터 꽤 호감형 외모에 알랑방귀를 잘 뀌는 성격 탓인지 집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진 않았다. 청소년 때에는 공부만 잘하면 되었고, 그것의 대가는 늘 날 배신하지 않았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조금은 건방질지 모르겠지만, 공부를 잘하면 나에 대한 호의는 선생님이던 친구이던 자연스레 따라왔다. 그냥, 정말 그냥 공부만 잘하면 되니깐 뭐든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늘 답이 있었고, 나는 정답을 잘 적어내서 성적만 잘 받으면 되었다. 그렇게 아이도 어른도 아닌 20대가 되었다.
처음으로 ‘실패’를 마주한 것은 인간관계였고, 우습게도 연애였다. 처음 마주한 실패에 나는 그것을 어찌 대해야 할지,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처음으로 답이 없는 문제에 갇혔다.
바닥, 또 바닥, 또 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은 끝이 어딘지 모르게 떨어졌고 다시 올라오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너무나도 깊은 아래라 다시 올라올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내가 가장 호의를 베풀었던 이에게 돌아온 거절에 배신, 허탈, 당황, 불안, 걱정이라는 부정적 감정이 한 번에 몰려왔다. 처음 맞닥뜨린 감정들에 매몰된 나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 날 더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그때부터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2줄 정도의 짧은 내용이었지만, 이내 감정이 더 깊어질 때면 금방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내 감정을 글자로 옮기는 일은 그 순간 모든 감정을 폭파시킬 정도로 매우 효과적이었다. 일기장에는 눈물 자국이 없는 페이지가 없었다.
그렇게 나의 ‘감정일기’는 ‘연애 실패 일기’가 되었고, 연애가 끝날 때마다 애정 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이별 직후 눈물범벅이 된 채로 몇 날 며칠을 열심히 쓰다 보면, 언젠가 나도 모르는 사이 감정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렇게 괜찮아지고 나면 어느덧 일기장은 덮혀진 채로 잠정 휴지기에 들어가게 되었다.
웃기게도 늘 덮혀진 일기장이 다시 열리게 되는 때는, 괜찮아진 이후 만난 사람과의 새로운 연애가 끝날 때였다. 그럴 때마다 이전 연애가 끝날 때 썼던 일기를 다시 읽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읽게 되는 나의 일기는 마치 남이 쓴 이별 소설을 읽는 듯했다. 나의 감정과 경험처럼 느껴지지 않고, 타인의 이별 이야기를 보는 듯해서 지금 나의 슬픔을 잠재워주곤 했다.
어느덧 그렇게 나의 20대 연애가 지나왔다. 다채로운 주제의 이별들로 힘들어했던 나의 일기이자 연애소설을 읽다 보면 주인공이 퍽 안쓰러워지기도 한다. 모든 이별이 다 똑같이 아팠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이별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어 왔음은 분명하다. 지난날의 내가 썼던 일기장 속에 그 시기를 헤쳐 올라왔던 흔적들이 보이는 것처럼, 아마 다음 소설에서도 주인공은 결국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30±1,
[20대와 이별일기]
written by JIN HEEJEONG
@jini_ddong
진희정, born in 1993/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