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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롬 Dec 23. 2017

#101.고대도시에서 '바운스 윗 미'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터키 #셀축 #에페소스

#고대도시 #터키가족

#쉬린제마을 #와인 #고양이

#2017년9월11일~12일


<터키 서부 이즈미르 주에 위치한 셀축.>

 밤새 버스를 타고 아이든에 도착했다. 아이든 버스 터미널 지하에는 주변 소도시들로 이동하는 돌무쉬 정류장이 있다. 우리는 셀축으로 가는 버스의 출발 시간을 확인하고 터미널 식당에 들어가 피자 한 조각씩을 먹었다. 배를 채우고 나니 딱히 앉아 있을 곳도 없고 해서 미리 돌무쉬에 들어가 쉬기로 했다. 차 안이 찜통이라 숨 쉬기도 힘들 정도였지만 간밤의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앉자마자 창에 기대 잠이 들었다.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낡은 돌무쉬는 꼬불 길을 따라 이 마을 저 마을을 하나하나 모두 방문 한 뒤에서야 우리를 셀축에 내려 주었다. 그래도 꾸벅꾸벅 졸며 와서 그런지 피로가 조금은 회복된 느낌이었다.

<고대도시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 >

 예약해둔 숙소에 짐을 내려 두고 지체할 새 없이 밖으로 나왔다. 우선 이동하며 먹은 것이라고는 피자 두 조각뿐이라 근처 식당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버스 터미널에 가서 '에페소스'행 돌무쉬에 올랐다.

에페소스는 유럽에 현존하는 고대도시들 중 그 모습이 가장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니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 순간 나는 에페소스행 돌무쉬가 타임머신처럼 느껴졌다. 그것 말고는 2017년에 탄 자동차가 기원전 2000년에 형성된 도시 앞에 멈추는 것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항구부터 도시까지 이어진 길 위에는 국제시장이 펼쳐졌다고 함.>

 기원전 11세기 말 이오니아인들에 의해 그리스 문화가 꽃피기 시작한 이 곳은 이후 페르시아인들의 지배를 거쳐 기원전 334년 로마의 일부가 되었다. 거대한 항구와 맞닿은 도시는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축적된 부를 기반으로 학문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발전을 이루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며 인근 케이스터 강의 흙이 점차 바다로 흘러들었고 그로 인해 바다가 메워지며 도시와 항구의 거리가 날이 갈수록 멀어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현상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연의 움직임을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게 화려했던 고대도시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조금씩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것이다.

<웅장한 고대도시 대극장의 모습.>

 하지만 에페소스에는 여전히 화려했던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 많은 유적들이 남아있었다. 좌우에 늘어선 거대한 나무들의 에스코트를 따라 도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대극장. 도시 인구의 10%를 수용할 수 있었던 이곳은 산의 경사를 그대로 활용하여 건설되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 지어진 다른 대극장들처럼 무대 중앙에서 말을 하면 순식간에 사방으로 소리가 퍼져 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각종 공연을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을 것이다.

<이오니아 양식과 로마 양식의 조화미를 엿볼 수 있는 켈수스 도서관.>

 대극장을 지나 올라가다 보면 아름다운 건물 하나가 나타나는데 그게 바로 '켈수스 도서관'이다. 한창 도시가 풍요로울 때 이곳에 보관하던 장서가 무려 1만 2천~5천 권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곳 장서들은 모두 양피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과거 에페소스와 알렉산드리아 두 도시는 모두 로마의 속해 있는 곳이었지만 약간의 경쟁 관계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파피루스 종이를 생산할 수 있었던 알렉산드리아는 에페소스가 자신들보다 장서를 많이 가지게 될까 봐 의도적으로 이곳에만 종이 수출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에페소스는 가축의 가죽을 손질해 만든 양피지로 장서를 만들게 된 것이었다.

<켈수스 도서관 앞을 지키고 있는 지혜의 여신.>

 하지만 켈수스 도서관에는 이것보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이곳 지하에 사창가로 연결되는 비밀 통로가 있었다는 사실. 남들 눈을 의식했던 학자들이 도서관으로 떳떳하게 들어가 은밀하게 여자들을 만나고 다시 떳떳하게 도서관으로 나오곤 했다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사창가로 향하는 길바닥에는 당시 새겨 두었던 남성의 성기 모양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일종의 광고 및 안내판인 셈이다. 예전에 폼페이에 갔을 때도 오랜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남자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 환락가에 들려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 및 동물들과도 성관계를 즐겼다는 자료를 보았는데 로마시대에는 이런 성문화가 일반적이었나 보다.

<사제들의 행렬이 벌어졌던 쿠레테스 거리.>

 충격적이었던 도서관을 나오자 정면으로 '쿠레테스 거리'가 길게 이어졌다. 쿠레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신반인을 뜻하는 말인데 고대 로마에서는 행정업무와 종교업무를 겸하는 사제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했다. 사제들은 매년 이 거리에서 성스러운 불을 지키는 의식을 치렀는데 거리의 이름은 바로 이것에서 유래되었던 것이다.

<각종 가십의 원산지였던 공중 화장실.>

 이 거리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좌측에 위치한 고대의 공중 화장실에서 칸막이 없는 변기가 긴 벤치처럼 쭉 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개방형(?) 구조로 인해 당시 화장실은 수많은 가십과 토론이 오가는 핫한 장소였다고. 게다가 오물들을 정화시설로 모아 거기서 맑은 암모니아만 걸러내 양피지 제작에 사용하기도 했단다. 버릴게 하나도 없는 알짜배기 장소.

<히드리아누스 신전의 조각들의 세밀함에 여러 번 놀라는 중.>

 화장실에서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하드리아누스 신전'을 만날 수 있는데, 입구 상단에는 메두사와 행운의 여신 티케상이 조각되어 있다. 머리카락의 부드러운 곡선과 생동감이 느껴지는 옷 주름은 2천 년 전의 조각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발 하나만 명확하게 남아 있는 트라이아누스 기념 분수탑.>

 신전 근처에 위치한 '트라이아누스 황제 기념 분수탑'에는 원래 있어야 할 황제 동상이 발만 남은채 훼손되어 있었는데 옛날에는 그 발 끝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도시의 모든 목욕탕과 가정에 흘러들었다고 한다. 로마는 이렇듯 수천 년 전에 이미 공공 수도시설까지 갖춘 어마어마한 제국이었던 것이다.

<가볍게 사자에게 헤드락 걸고 있는 헤라클레스 조각.>

 사자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헤라클레스가 조각된 문을 지나면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브랜드 '나이키'의 로고 제작의 영감을 주었다는 승리의 여신 니케 부조가 나온다. 부조에는 디테일한 옷 주름과 날개 그리고 한 손을 위로 들고 승리를 알리는 듯한 여신의 다양한 모습들이 들어 있는데 나이키는 단 하나의 선에 그 모든 것을 담아 버렸다. 이런 인사이트를 가지려면 현재의 트렌드뿐 아니라 역사와 고전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 여행은 참 좋은 공부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키 브랜드 창시에 톡톡히 일조한 승리의 여신 니케.>

 넓고 넓은 고대 도시 구경은 남쪽 입구에 위치한 바리우스 욕장에서 끝이 났다. 이곳에 온 여행객들이 피로를 풀고 도시에 들어갈 수 있도록 설치된 곳인데 지금은 거의 터만 남아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바닥에 난방도 되는 데다 냉탕 온탕도 따로 갖출 정도로 시설이 좋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 못지않게 로마 사람들도 목욕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들에게 지금 우리의 찜질방을 보여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열가마 나올 때 앞다투어 좋은 자리 차지하려고 몸싸움을 벌일지도 모른다.

<극산성 신맛의 석류주스. 위산 촉진에 최고임.>

 두 시간 동안 초집중 모드로 고대 도시를 둘러본 뒤 나가는 길에 시원한 석류 주스 두 잔을 샀다. 주스 파는 아저씨는 주문이 들어오자마자 바구니에 가득 담아 둔 석류를 꺼내 착즙기에 넣고 쉴 새 없이 짜고 또 짰다. 우리나라 마트에서 석류 하나 사려면 적어도 오천 원은 줘야 할 텐데 터키에서는 석류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아서 굉장히 저렴했다. 하지만 좋은 것도 과유불급. 100% 석류로 만들어진 주스는 한 모금 넘기다 식도가 녹아 없어질 만큼 신맛이 강했다. 그래도 다행히 한 잔은 아저씨 추천으로 오렌지와 반반 섞어 만들었기 때문에 먹을만했다.

<아저씨와 아세나와 나이메 그리고 우리 둘>

 오랜 이동에 이어 고대 도시 구경까지 하루를 쭉쭉 늘여 길게 쓰고 나니 그제야 겨우 밤이 찾아왔다. 저녁을 먹고 여유롭게 호스텔 1층 소파에 앉아 빈둥대고 있는데 연세가 지긋하신 터키 아저씨 한분이 우리 옆에 앉으셨다. 나는 그동안 배운 간단한 터키어로 아저씨께 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짧은 영어로 자기 딸들이랑 같이 차이를 마시자고 하셨다.

<뜻밖의 한국 국기가 반가웠던 순간.>

 아저씨의 두 딸은 엄청난 미인이었다. 막내딸인 나이메는 열아홉 살의 고등학생이었고 바로 그 위에 언니인 아세나는 스물두 살의 간호사였다. 그중 나이메가 영어를 할 수 있어서 중간 통역사 역할을 맡았다. 우리는 다 같이 밖으로 나가 아저씨가 낮에 봐 둔 넓은 정원이 딸린 카페에 갔다. 그런데 가게 앞에 왠 낯익은 국기가 걸려있다. 일부러 찾아온 건 아니었지만 놀랍게도 아저씨가 봐 두신 카페는 한식당이었다. 음식도 팔지만 예쁜 정원이 있어 차 마시기 좋아하는 터키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정원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차이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터키 가족과 밤 나들이 중.>

 아저씨의 가족은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데 이렇게 가끔 버스를 타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온다고 하셨다. 막내딸 나이메는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당찬 고등학생이었는데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노는 것도 수준급이었다. 언니와 함께 종종 클럽에 가는데 자기는 얼굴이 조숙해 보여서 절대 들키지 않는다고 했다. 아세나는 독일인 남자친구가 있는데 얼마 전에 프러포즈를 받았다고 했다. 아빠는 그 사실을 모르시지만 본인은 그 남자와 결혼해서 독일에 살고 싶다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터키 남자는 어떠냐고 물어보았더니 보통 너무 무례하고 매너가 없어서 싫다는 단호박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신중하게 노래를 고르는 나이메.>

 차이가 세 잔째로 넘어가며 한참 수다가 무르익어 가는데 직원이 다가와 오늘 노래방 기계를 처음 놓았는데 원한다면 무료로 사용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어딜 가서 쉽사리 마이크를 잡지 않는 삼십 대였지만 나이메와 아세나는 어디서든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십 대와 이십 대였다. 그들의 손에 이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갔는데 금영 노래방 기계가 있었다ㅎㅎ. 신기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 상황 속에서 직원은 우리에게 한국어로 된 노래책자를 자매에게는 터키어로 된 노래 책자를 건넸다.

<자매의 노래에 열심히 몸을 흔드는 서른한 살의 나.>

 자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예뻤고 키가 컸고 착했지만 노래를 못했다. 그래도 신나게 부르는 그들의 노래에 맞추어 남편과 나는 열심히 탬버린과 북을 쳐주었다. 그렇게 3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도 한곡 뽑아야 끝이 날 것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아, 안 하려고 했는데. 그러면서 조심스레 책자를 뒤져 DJ DOC의 명곡 'Run To You'의 번호를 누르고 있는 나의 손가락.


당다라 당다라 당당다라 당다라 당다라 당당다라 x2

원. 투. 원. 투. 쓰리. 포♪


 흥이 없는 사람의 엉덩이도 들썩이게 만든다는 전설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이 신비의 노래는 머리 위로 드는 일이 거의 없던 팔과 트래킹 할 때가 아니면 닳을까 봐 아껴 쓰던 무릎 관절을 움직여 궁극의 바운스 안무를 선보이게 만들었다.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본 자매는 물밀듯 밀려오는 새로운 문화에 감명을 받은 듯 손뼉을 치며 좋아했고 삼십대 한국인 두명의 저력을 동영상으로 남겨 본인들의 인스타에도 올리고 말았다. 아, 진짜 안 하려고 했는데 말이지. 그렇게 넘쳐 버린 흥 바람을 타고 터키인 가족과 우리 부부는 밤 12시가 될 때까지 온 동네를 쏘다니다 겨우 호스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황금빛으로 물든 셀축의 고성.>

 다음 날 터키인 가족은 이스탄불에 다시 오게 되면 꼭 연락하라는 말을 남긴 채 다른 도시로 떠나갔다. 우리는 조식을 먹고 모자란 잠을 좀 더 잔 뒤 오후쯤 버스 터미널에 나가 돌무쉬를 타고 근처 쉬린제 마을로 향했다. 쉬린제 마을은 와인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 명성답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코끝에 달콤한 포도 냄새가 가득 달라붙었다.

<달달한 포도주 냄새에 이끌리듯 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마을 초입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 위한 수많은 기념품 상점들이 모여 있어 엄청나게 복잡했다. 하지만 그곳을 지나 언덕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경치 좋고 조용한 장소들이 나타났다. 골목 곳곳에는 소소한 풍경들이 가득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들과 풀밭을 이불 삼아 누운 고양이 그리고 낡은 의자들이 한 편의 느린 영화처럼 담백하고 사랑스럽게 흘러갔다.

<나른하고 따듯한 풍경이 숨어 있었던 쉬린제 마을>

 골목을 걷다 마음에 드는 곳에 들어가 와인 두 잔을 주문한 뒤 딱 하나뿐인 가게 앞 테이블에 앉았다. 30분 정도 앉아 한 잔의 와인을 마시는 동안 우리 앞에서 예비부부가 웨딩 촬영을 했고,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지나갔으며 모녀로 보이는 여행객 둘이 와인 세병을 사갔다. 특별하진 않았지만 일상의 틈으로 불어온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한 그런 날이었다.

<한잔 가득 부어 주시는 인심.>

 터키의 여름은 해가 참 길어서 쉬린제에 다녀와서도 한참 동안이나 낮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어디로 이동을 할까 찾아 보던 중 호스텔 아저씨가 추천해준 차낙칼레라는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원래는 내일이 떠나는 날이었지만 생각해보니 여기에 더 있을 이유가 없는 것 같아 바로 터미널로 가 밤 11시에 떠나는 티켓을 사 왔다. 미리 돈을 내버린 1박의 숙박료가 살짝 아까웠지만 버스 시간이 워낙 밤이라 그때까지 편하게 샤워도 하고 쉬다가 가기로 했다.

<날이 좋은 어느 날 쉬린제 마을의 와인가게에서.>

 차낙칼레로 떠나기 전 숙소에 투숙 중인 또 다른 한국인 커플과 수다도 떨고 여행 정보도 교환했다. 여행자 커플은 본인들이 다 읽은 책 한 권까지 건네주었다. 얼마 만에 읽는 종이책인지 정말 감개무량했다. 책은 작가 김애란의 신작 '바깥은 여름'이었는데 재미있게도 그 책을 준 여행자분의 이름이 김애란이었다. 자신의 신작이라며 한 번 읽어 보라고 건네주시는 그 농담이 어찌나 즐겁던지.

<재미있는 일이 많이 벌어졌던 셀축의 호스텔.>

 타임머신을 탄 듯 수천 년 전 고대도시에도 가보고 터키인 가족과 노래방도 가고 손 넘김이 예술인 종이책도 선물 받고! 셀축에서 머문 하루 반의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이렇게 예측이라고는 1도 안되는 여행의 의외성은 매 순간 우리를 감동시켰다. 어제보다 오늘의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고, 매일의 평범한 일상을 평생 잊을 수 없는 날들로 바꾸어 주었다. 이제 우리에게 계획이란 그저 출발선을 긋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 선을 떠나는 순간 벌어질 모든 일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끝났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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