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터키 #이스탄불 #내친구의집은어디에
#2017년9월16일~18일
터키 여행이 끝나간다. 이스탄불에 도착해 아야 소피아와 블루 모스크를 보며 감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우리는 이틀 뒤면 이 사랑스러운 나라를 떠나야 하기 때문에 갈리폴리 반도에서 다시 한번 이스탄불로 이동을 했다. 처음 터키에 왔을 때는 유럽 대륙에 있는 구시가지 근처에 숙소를 구했었는데 이번에는 아시아 대륙에 있는 카디쿄이라는 지역에 짐을 풀었다.
카디쿄이는 셀축에서 만났던 터키인 친구 나이메와 아세나가 살고 있는 동네다. 이스탄불에 오면 꼭 다시 만나자는 자매와의 약속 때문에 되도록이면 그들을 만나기 쉬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그리고 다음날 직접 도시 곳곳을 구경시켜 주겠다는 나이메의 제안에 따라 점심때쯤 카티쿄이 시내로 나갔다.
다시 만난 나이메는 약속 장소에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나타났다. 어딜 가냐고 물었더니 내일이 새 학기의 시작이라 미리 기숙사에 짐을 가져다 놓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고3인 그녀가 다니는 학교까지 함께 걸어갔다. 나이메가 자신의 방에 짐을 가져다 놓는 동안 기숙사 앞 벤치에 앉아 기다리는데 호기심 많은 여학생들이 창밖으로 우릴 내다보며 꺄르르댔다.
나이메네 학교는 100년이 훌쩍 넘은 건물이 있을 만큼 고풍스러운 곳이었다. 들어보니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 수준 높은 공립학교라고. 이 학교의 킬링 포인트는 교실 창밖으로는 보스포러스 해협의 눈부신 풍경이었다. 교실에서 이 풍경을 매일 볼 수 있다니. 부럽다.
그녀는 제일 먼저 트램을 타고 갈라타 타워가 있는 지역으로 우릴 데려갔다. 예술가들이 모여 활성화되기 시작했다는 이곳은 여기저기 화려한 그라피티들이 그려져 있었다. 곳곳에 작가들이 앉아 그림을 팔았고 특이한 의류나 소품들을 파는 작은 가게들도 많았다. 처음 이스탄불에 왔을 때도 투어로 왔던 동네인데 현지인 친구와 같이 오니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갈라타 타워까지 이어진 계단에서는 뜻밖의 낯익은 얼굴을 만나기도 했다. 한 계단 한 계단을 고이 장식하고 있던 수령 동무. 누가 어떤 의도로 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무가 핫한 셀럽이라는 사실은 잘 느껴졌다. 글로벌 민폐 캐릭터긴 하지만 말이다.
길가의 작은 카페에는 낮부터 삼삼오오 모여든 아저씨들이 수다 삼매경에 빠져 계셨다. 차이 한 잔 시켜 놓고 남자들끼리 둘러앉아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터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이다. 차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열 잔 정도를 마신다고 하니, 그 때문에 차이와 함께 하기 좋은 디저트나 수다 등의 부수적인 것들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갈라타 타워 앞에 도착하자 나이메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노트였다. 나이메의 노트에는 오늘 우리를 데려갈 곳들에 대한 정보가 깨알같이 적혀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감동 주기 있기 없기. 만난 지 얼마 안 된 여행자들을 향한 그녀의 속 깊은 배려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런 나이메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시원한 음료를 사주는 것뿐이었다. 기분이다. 언니 오빠가 쏜다!
주변에 좋은 카페가 있는지를 묻자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 완전 인기 많은 동네가 있으니 자기를 따라 오란다. 믿고 따라가는 나이메 투어. 10분 정도 알록달록 귀여운 벽화가 그려진 골목 사이를 걷다 보니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페 하나가 나타났다. 우리는 밖에 놓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시원한 음료들을 주문했다. '프랑스 거리'라고 불리는 이 거리에는 이름만큼이나 분위기 좋은 유럽풍의 카페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역시 여행은 현지인과 함께하면 더욱 풍성해지는 것 같다.
카페에 앉아 시원한 음료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고 십 대 감성을 자극하는 스노우 앱으로 귀요미 사진도 찍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찾아간 다음 장소는 갈라타 다리였는데 낚시에 한창 몰두한 아저씨들을 지나니 엄청난 인파로 가득 찬 광장이 나타났다. 고등어 케밥 가게에서 쉴 새 없이 고등어를 구어 대는 통에 광장은 온통 비릿한 연기로 가득했다. 그 틈에서 우리는 설탕물이 흘러나오는 달달한 간식을 사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이메의 휴대폰으로 급한 연락이 왔다. 그녀의 아버지였다. 전화를 끊고 나자 나이메는 갑자기 오늘 지금 당장 시험을 보러 가야 한다고 했다. 런닝맨에서 보면 전화로 지령을 받자마자 미션 수행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장면이 나오는데 딱 그런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도 나이메는 전에 자신이 아르바이트했던 이집션 바자르의 디저트 가게에 우릴 데려가 전부터 사고 싶었던 터키 전통 디저트인 '피시 마니아'를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다 같이 페리를 타고 다시 아시아 대륙으로 넘어갔다. 페리 터미널에 마중 나와있던 나이메의 아버지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근처 카페에 앉아 차이를 마시며 그들이 학교에 다녀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두 사람은 대략 한 시간 뒤 시험을 마치고 돌아왔다. 다행히 시험은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한 인터뷰로 매우 간단한 것이었다고. 나이메의 아버지까지 합류해 총 네 명이 된 우리는 아까 구경하지 못했던 카디쿄이 시내를 걸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거리는 젊은이들로 가득했고 곳곳에서 펼쳐진 거리 공연들로 시끌벅적했다. 거리에서는 심심치 않게 교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온통 모스크만 가득한 이스탄불에 이런 지역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나이메의 아버지는 약속이 있으시다고 먼저 가시고 다시 셋이 된 우리는 등대가 있는 방파제로 향했다. 바닷가 옆으로 깔끔하게 조성된 공원에는 가족부터 연인까지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이곳도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핫한 장소라 여행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나이메의 언니인 아세나의 회사가 끝날 때까지 방파제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공원 가로등에 하나둘 불이 들어 올 때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퇴근한 아세나를 만나기 위해 등대 쪽으로 걸어갔다. 어둠이 내린 방파제 근처에는 열 살 남짓의 작은 소년들이 밤 산책 나온 사람들에게 풍등, 부채, 물 등을 팔고 있었다. 최근 시리아 사태를 겪고 난민이 된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그중 한 아이를 불러 풍등을 샀다. 바람이 많이 불어 풍등 띄우기 정말 안 좋은 날씨였지만, 한창 뛰어놀다 집에 돌아가 저녁 먹어야 할 시간에 장사를 하고 있는 아이를 보니 그냥 하나 사주고 싶었다.
아세나가 합류해 넷이 된 우리는 풍등을 들고 등대 옆 방파제에 가서 혼술을 하고 계시던 여자분께 라이터를 빌렸다. 그런데 염려대로 바람 때문에 불이 안 붙는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주워 불쏘시개로 써 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우리가 전전긍긍하고 있자 지나가는 아저씨 한 분이 도움을 손길을 내미셨는데, 그분의 활약으로 결국 풍등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우리 넷은 가까스로 불이 붙은 풍등을 잘 잡고 있다가 동시에 손을 놓았다. 기대했던 비주얼은 하늘 높이 날아가는 풍등을 바라보며 각자의 소원을 비는 그런 것이었으나, 현실은 거센 바람에 휩쓸려 10초 만에 방파제 구석으로 고꾸라진 풍등을 바라 보며 깔깔대는 네 사람의 모습 뿐이었다. 하지만 풍등이 잘 날아가지 않는 바람에 기억에는 더 깊게 남는 밤이 되었다. 낭만보다는 개그에 가까웠던 풍등 날리기가 끝이 나고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나이메에게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풍등이 날아가지 않아서 안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언니 미소를 지으며 '10초는 떠 있었으니 10초만큼은 이루어질 거야'라고 농덕담을 남겨 주었다.
10초만큼만 이루어질 소원에 다들 만족해하며 밥을 먹으러 간 곳은 우리말로 '벼룩'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었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하기로 소문이 난 곳이었는데 컨셉이 왜 벌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빨간 소파와 강렬한 컬러감의 그림들이 주는 분위기가 굉장히 독특한 그런 곳이었다.
피자와 파스타로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난 뒤 나와 남편과 나이메는 차이를 아세나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나는 모든 터키인들이 차이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젊은 사람들 중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역시 취향 차이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렇게 서로의 낯선 문화를 나누다 보니 늦은 밤까지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시간이 늦어 자리에서 일어날 때쯤 자매는 우리에게 내일 자신들의 집에 오지 않겠냐고 물었다. 집이 공항이랑 가까우니 비행시간이 되기 전까지 밥도 먹고 쉬다가 가라고 말이다. 우리는 또다시 훅 들어 온 감동에 고맙다는 말 밖에 내놓을 것이 없었다. 테세큘에데림!
다음날 우리는 한껏 들뜬 마음으로 짐을 짊어지고 나이메를 만나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여니 나이메의 어머니, 아버지, 큰오빠 부부, 작은오빠 부부가 우릴 맞아 주었다. 우리가 온다고 일부러 다 모여 계셨던 것이다. 이 집에 온 첫 외국인이라는 사실에 감격하고 있던 그때 이번에는 여기저기서 귀여운 꼬마들이 줄줄이 나온다. 열아홉 살의 나이메는 오빠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벌써 조카가 세명이나 있는 고모였던 것이다.
식탁에는 먼 타국에서 온 여행자들을 위한 만찬이 차려져 있었다.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식감이 좋은 밀푀유 빵 안에 닭을 넣어 구운 고급진 음식부터 샐러드와 각종 터키 전통 음식들까지 마치 잔치라도 벌어진 것 같았다. 가족들이 모두 자리에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하는데 나이메의 어머니께서 우리 접시에 가득가득 음식을 덜어 주셨다. 닭 요리 빼고는 사실 입맛에 그다지 잘 맞는 음식들은 아니었지만 초대받은 자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열심히 먹고 또 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정성껏 만든 디저트도 내주셨는데, 터키 사람들도 라마단 기간에만 먹을 만큼 특별한 음식이라고 했다. '귤락 Gullac'이라는 이름의 이 디저트는 우유로 만든 부드러운 식감의 푸딩 위에 견과류와 석류를 올려 먹는 것인데 색감도 예쁘고 굉장히 고급스러운 맛이 났다. 함께 나온 초콜릿 쿠키 맛도 정말 환상적이었다.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디저트까지 싹싹 먹고 온 가족과 돌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우리를 위해 음식을 해주신 나이메의 어머니는 웃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우셨는데 세심하게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모습이 우리네 어머니들과 많이 닮아 있었다.
일주일 전 셀축에서 나이메의 아버지를 처음 봤을 때, 내가 한 일이라고는 '메르하바'하고 인사를 건넨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한 마디의 인사는 우리를 좋은 사람들의 곁으로 인도했고,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었다. 인사는 마법과도 같다.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주문이 되어 기분 좋은 일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모르는 이에게 인사하는 것이 낯선 문화에 살다 보니 우리는 그 마법을 거는 법을 종종 잊고 살게 된다. 하지만 이번 터키 여행을 통해 나는 잊었던 마법의 주문을 되찾은 것 같다. 우리 마음에 계산 없이 친절을 베풀어준 나이메와 그녀의 가족들이 깊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