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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롬 Dec 29. 2017

#104.이집트 다합, 홍해의 품으로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이집트 #시나이반도 #다합

#홍해 #스쿠버다이빙 #여행자블랙홀

#2017년9월19일~10월09일


<이집트 시나이반도 남부에 위치한 다이빙의 도시>

 새벽 5시. 이집트 시나이반도에 위치한 샤름엘셰이크 공항에 내린 우리는 비자를 사기 위해 사무실 앞에 줄을 섰다. 25달러를 내고 한 달짜리 비자를 발급받아 입국 심사관에게 가져가니 별다른 질문 없이 입국 허가를 내주었다. 이집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뿐이었지만 어쨌든 안전하게 시나이반도에 입성. 미리 예약해둔 택시를 타고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다합으로 신속하게 이동을 했다.

<공항에서 다합 가는 길. 삭막한 사막 느낌 물씬.>

 이곳에 오기 전 길에서 만난 여행자에게 이집트는 어떠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인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곳은 아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남겼다. 말도 안 된다. 인도는 4차선 도로를 8차선으로 사용하는 나라이며, 도로 위의 모든 교통수단들이 1초도 쉬지 않고 클락션을 울려대고, 여행자만 보면 어떻게든 사기를 치려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기획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다. 물론 그것을 상쇄하는 매력이 있긴 하다. 하지만 어떻게 세상에 인도보다 더한 나라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직접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 이 말을 믿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정말 혹시나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걱정은 없다. 우린 이미 인도에 한 달이나 머물다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집 이층에 입주하게 됨.>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집트는 인도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한다. 이 말은 이집트의 환경이 훨씬 좋다는 것을 뜻한다. 우선 우리가 도착한 다합이라는 동네는 성경에 나오는 홍해를 끼고 있는 작은 도시인데 생활 물가가 저렴한 것은 기본이고 스쿠버다이빙도 아주 착한 가격에 즐길 수 있어서 수많은 여행자들의 블랙홀로 불리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보통 이곳에 온 사람들은 집을 렌트해서 한 달 이상 머물곤 한다. 그래서 우리도 함께 집을 쉐어 할 사람들을 찾아 방 두 개짜리 집에 입주를 했다.

<넘나 졸린 교육 비디오 시청. 영혼 탈출 넘버원>

 앞으로 한 달간 같이 살게 된 룸메이트들은 우리보다 하루 정도 먼저 다합에 도착해 스쿠버다이빙 자격증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그 친구들이 등록한 오르카라는 다이빙 샵에 1인당 260달러(약 29만6천원)를 내고 등록 한뒤 일정을 맞춰 같이 수업을 받기로 했다. 오픈워터 자격증+어드벤스드 자격증까지 모두 포함해서 이 가격. 우리나라에서 따려면 100만원 정도 들었을텐데 역시 다합이다. 첫날은 세 시간짜리 교육 비디오를 보고 가장 기본이 되는 이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둘째 날은 아침 일찍 카페에서 강사님을 만나 교재 뒤에 붙어 있는 연습 문제들을 풀고 오후에 룸메이트들과 처음으로 바다에 들어갔다.

<삼 주간 우리의 아지트가 되어 주었던 오르카 다이빙 샵>

 나는 깊은 물에 대한 약간의 공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처음에 굉장히 긴장을 했다. 하지만 첫 교육은 2미터 정도 되는 낮은 수심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스쿠버다이빙을 할 때는 기본적으로 물속에서 부력을 조절해주는 BCD라는 조끼를 착용하는데, 그 조끼 등 뒤에 공기 탱크를 매달게 된다. 조끼 앞쪽의 인플레이터와 디플레이터는 몸의 부력을 조절 할 때 사용하는 장치로 원활한 바다 탐험을 하려면 이것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기본적인 사항들을 머리 속에 잘 넣고 장비를 착용한 뒤 파트너와 서로의 준비 상태를 체크해주면 입수 준비가 완료 되는 것이다.

<오르카 2층에서 바라본 앞바다 마쉬라바.>

 이곳에 오기 전 내가 알고 있는 스쿠버 다이빙은 모두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뛰어드는 형태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특이하게도 장비를 착용한 채 해변에서부터 걸어서 바다로 들어간다. 한 20미터 걸어 들어가면 급격하게 깊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다이빙 샵은 '마쉬라바'라는 다이빙 포인트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에 샵에서 장비를 차고 포인트까지 걸어서 갔다. 물속에 잘 가라앉기 위해 허리에 8kg짜리 웨이트를 차고 묵직한 산소통까지 둘러메니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가 엄청나게 힘이 들었다.

<샵에 준 다이빙 장비와 수트는 사용 후 스스로 정비해서 반납해야 함.>

 하지만 일단 물속에 들어가면 부력이 높아져 장비의 무게감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들 물 위에 둥둥 뜬 상태로 오리발과 스노클 마스크를 착용하고 강사님의 신호에 맞추어 디플레이션 버튼을 눌러 BCD의 공기를 조금씩 빼며 물아래로 내려갔다. 2m 정도의 얕은 수심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그때부터는 이론 수업에서 배운 수신호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제일 먼저 물속에서 해야 할 미션들은 이퀄라이징과 마스크에 들어온 물 빼기, 마스크 벗었다 쓰기, 입에서 빠진 호흡기 찾기, 주 호흡기에서 보조 호흡기로 바꿔 물기 등과 같은 생존 스킬들이었다.

<물 속에서 조금 살만해지니 비로소 나오는 포즈.>

 다른 미션들은 간단히 성공했는데 마스크를 벗었다가 다시 쓰는 과정에서 코로 물이 왕창 들어오는 바람에 깜짝 놀라 발버둥을 치며 물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때 급히 따라 나오신 강사님이 이렇게 갑자기 상승하면 공기가 팽창해서 폐가 터질 수도 있다며 절대 그러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다. 지금은 수심이 낮아 별 탈이 없겠지만 자격증을 따고 깊은 수심에서 다이빙을 할 때는 정말 위험할 수 있는 행동인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 이후 나의 물속 수칙 1호는 '평정심 유지'가 되었고, 코로 물이 들어와도 최대한 일정하게 호흡하며 상황을 수습하려 노력하게 되었다.

<필기를 합격해야 자격증이 나오기 때문에 암기 풀가동. >

 세 번째 날 교육은 마스크 벗고 10m 왕복 수영한 뒤 다시 마스크 쓰기, 공기통 잠가서 호흡이 불가한 상황 체험해보기, 상대에게 보조 호흡기로 공기 나눠주기 등의 더욱 강도 높은 미션들을 수행해야 했다. 거기다 몸이 가라앉지도 붕 뜨지도 앉는 '중성 부력' 상태를 유지하는 훈련과 기본적인 다이버 수영법 등을 배웠다. 그렇게 미션들을 모두 성공하고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오픈워터'라는 제일 기본 단계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합 택시에 장비 실고 다이빙 나들이 고고.>

 한 지붕 아래 살기 시작한 우리 집 네 명의 식구들은 모두 단박에 오픈워터를 땄다. 강사님도 우리를 우등생이라 불러 주셨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이빙 시 기본적으로 수심 30m까지 갈 수 있어야 다양한 포인트를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어드벤스드' 과정을 수료해야 했다. 어드벤스드는 매일 나가던 앞바다가 아닌 조금 멀리 떨어진 '모레이 가든'이라는 포인트에서 진행되었다. 이곳에 가려면 다이빙 샵 수레에 공기통과 장비들을 모두 싣고 근처 공터에 가서 택시를 기다려야 했다. 트럭 모양의 택시가 오면 뒤에다 샵에서 가져온 장비를 옮겨 실고 사람은 몇 안 되는 좌석에 옹기종이 껴앉은 상태로 포인트까지 이동하는 것이다.

<어드벤스드 첫날 찾아간 모레이가든 포인트.>

 역시나 이곳에서도 어드벤스드 과정에서 꼭 수행해야 할 다양한 훈련들을 받았다. 공기통에 숨이 남아 있지 않거나 일행들을 잃어버렸을 때 긴급 출수하는 방법과 물속에서 BCD 조끼를 벗었다 다시 입는 과정, 웨이트 벨트를 풀어 무릎 위에 올렸다가 다시 재빠르게 착용하는 법까지 생존에 필요한 기술들은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었다. 하지만 미션들을 모두 통과하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강사님을 따라 바다 세상 구경에 나설 수 있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중인 남편>

 바닷속 세상은 확실히 우리의 세상과 달랐다. 그곳에서 나의 팔다리는 정중한 물의 저항에 맞추어 부드럽게 춤추듯 움직였고, 온전히 들려오는 호흡 소리는 태어나 처음으로 내 생명의 존재를 인지하게 만들었다. 땅에는 아름다운 것만큼 추한 것도 많지만 바다에는 오로지 아름다움 뿐이었다. 그곳의 대기는 짙고 푸른 물들로 가득했고, 작은 기척에도 부서질 듯 가녀린 산호들이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 바다의 시민들은 모두 매끈한 비늘 코트를 입었지만 누구 하나 같지 않았다. 그들은 혼자 있을 때나 무리를 지을 때나 항상 자연에 충실했다. 그래서 그 세상은 풍요로웠고 모두에게 공평했다.

<카메라 의식하기 있기 없기.>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바다 탐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룸메이트들과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그런데 지난 나흘간의 일정이 무리였던 것일까. 어깨에 한기가 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열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해열제를 찾아 먹고 침대에 누워 가진 이불을 모두 끌어다 덮었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고 천정이 빙글빙글 돌았다. 사실 내일 블루홀 포인트에 가서 30m까지 내려갔다 오는 딥 다이빙만 마치면 어드벤스드 과정을 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몸 상태로 바다에 들어갔다가는 영영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룸메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하루 걸러 그다음 날 바다에 들어가기로 했다.

<블루홀 입수 전. 오리발이 다리길이만 한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하루를 꼬박 쉬고 기력을 되찾자마자 자격증을 위한 마지막 과정이 이루어질 블루홀로 갔다. 블루홀은 해저 동굴이 붕괴되거나 해저 암석이 녹아내려 만들어지는 바닷속 싱크홀을 말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블루홀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 다합의 블루홀도 아름답고 신비로운 경관으로 다이버들의 사랑을 받는 포인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수심이 130m나 되는 데다 이미 많은 다이버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전적이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블루홀 펀 다이빙 중 물고기 입에 넣기 묘기 중인 가이드.>

 블루홀로 내려가는 입구는 한 번에 한 명씩만 내려갈 수 있을 만큼 굉장히 좁았다. 그래서 강사님이 가장 먼저 들어가시고 넷 중 체력이 가장 약한 내가 바로 다음, 남편과 룸메 둘은 그 뒤를 따라 들어오기로 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몸이 잘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서 도움을 주려고 따라온 마스터가 나를 끌고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이퀄라이징이 안돼서 귀가 찢어질 듯 아팠다. 수신호로 귀에 이상이 있다고 마스터에게 알리고 코를 막은 뒤 지긋이 숨을 내쉬며 다시 이퀄라이징을 시도했다. 그러자 쥐어짜듯 아팠던 귀에서 삐이 소리가 나며 압력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다이빙 스승이신 압시 강사님과 함꼐.>

 우여곡절 끝에 30m 지점까지 내려간 우리는 강사님의 지휘 하에 질소 마취 여부 테스트를 시작했다. 질소 마취란 수심이 깊어질수록 공기통 속 질소의 압력이 높아져 인체에 마취 증상을 일으키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질소 마취가 이루어지면 판단력이 흐려져 여러 가지 사고로 연결될 수 있으니 간단한 산수 문제를 풀어 자신이 멀쩡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강사님이 손가락으로 3을 보여주면 10이 되기 위해 필요한 나머지 수인 7을 손으로 표시해주면 되는 것. 그런데 강사님이 문제를 내는 도중 장난기가 도지셔서 남편에게 양손의 세 번째 손가락을 들어 보여 주셨다. 그걸 본 남편은 또 센스 있게 양손의 세 번째 손가락만 접어서 답을 표시했다. 그걸 보고 어찌나 웃기던지 다들 입에서 공기방울이 오천 개씩을 보글보글 올라오고 난리였다.

<수료하던 날 손바닥에 글씨 적어 물 속에서 이벤트 함. 압시짱!>

 이로써 안전하게 모든 교육을 마치고 드디어 펀 다이빙을 다닐 수 있는 자격증 두 개를 수료하게 되었다. 이 자격증만 있으며 앞으로 PADI에서 인정하는 모든 다이빙 샵에서 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여행하면서 내가 자격증 같은 것을 따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뜻밖의 수확이었다.

<코끼리코 앞에서 코끼리코 하는 대담함ㅋ>

 우리 네 식구는 자격증을 취득 후 이런저런 포인트에서 다이빙도 하고 스노쿨도 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ROTC를 해군으로 다녀왔다는 룸메 지현이가 남편에게 물에서 돌을 들고 수직 부양하는 훈련법을 가르쳐 주었다. 남편은 여행하며 처음으로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남자 애들이랑 수영을 하게 된 것이 정말 좋다고 했다. 그래서 재미 삼아 돌 들고 하는 수직 부양도 열심히 따라 했던 것인데 이것이 화근이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남편은 수직 부양 놀이가 끝난 다음 날 아침부터 숨을 크게 쉬지도 못할 만큼 폐 주변 근육에 통증을 느꼈고 온몸에 열이 펄펄 끓어 올라 결국 삼일 간이나 몸져눕게 되었다. 이십 대 중반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다 자신이 삼십 대 중반임을 잊은 대가였다.

<다이빙 할 때 얼굴을 포기합니다.>

 장기 요양을 마친 남편이 기력을 되찾자마자 우리는 다 같이 밤바다에 들어가는 나이트 다이빙을 신청했다. 6시쯤 샵으로 가 각자 장비를 착용하고 가이드가 나누어준 손전등을 손목에 묶었다. 깜깜한 바다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조금 긴장이 되었는데 안전사항만 잘 준수하면 별일 없을 것이라 믿고 가이드를 따라 물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온통 묵직한 어둠뿐인 밤바다에 손전등 불빛이 드리워지자 생각보다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대략 50분 동안 야행성 수중생물들을 찾기 위해 열심히 바다를 관찰을 했지만 특별히 만난 것이라고는 오징어 한 마리뿐이었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있었다.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손전등을 끄고 어둠만 가득한 허공에 손을 휘저으니 여기저기서 작은 불빛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플랑크톤이었다. 팔의 움직임에 따라 불빛들이 은하수처럼 펼쳐지는 것이 정말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먼 바다 나가는 날. 택시에 장비 챙기기.>

 다합에서는 대부분의 다이빙 포인트가 걸어서 들어가는 곳이지만 사람을 6명 이상 모아 특별 신청을 하면 멋진 배를 타고 먼 바다에 나가서 보트 다이빙도 할 수 있다. 선착장 왕복 이동 경비에 보트, 조식, 중식, 간식, 공기통 2개 분량의 다이빙이 모두 포함된 가격이 1인 600파운드(약 40,000원). 다이빙이 저렴하다는 동남아도 공기통 한 깡하는데 오 만원 이상이 든다는데 역시 다합은 다이버들의 천국임이 분명하다.

<생각보다 배가 넘나 좋아서 깜놀.>

 보트 다이빙 당일 우리 집 식구 네 명과 같은 날 다합 들어와서 친해지게 된 커플 그리고 처음 본 두 명의 다이버들과 함께 택시에 한 가득 장비를 싣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가이드들이 배 안으로 장비를 옮기는 동안 우리는 선착장에 서서 바다를 내려다봤는데 얼마나 물이 맑은지 거대한 가오리가 다 보일 정도였다.

<투명한 바다 맑은 하늘 그 속에 비치는, 이집트의 흙산.>

 배가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한 바다 위에 파장을 만들며 항해하는 동안 육지에는 이국적인 이집트 특유의 풍경이 여유롭게 흘러갔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에 취해 뱃머리에 누워 햇볕도 쬐고 배에서 제공된 조식도 먹으며 오늘 다이빙을 하게 될 '가브리엘빈트' 포인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포인트 도착 전 각자의 장비를 점검한 뒤 다이빙 슈트를 챙겨 입었다.  

<이제 장비 결합과 정비는 스스로 척척척.>

 배가 닻을 내리고 완전히 멈추어 서자 우리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장비를 메고 오리발을 착용한 뒤 조심스럽게 바다로 뛰어내렸다. 두 명의 가이드가 다이버 8명 전원이 안전하게 입수한 것을 확인하고, 잠수 신호를 보냈다. 천천히 내려간 바닷속은 반짝이는 햇볕과 화려한 색감의 물고기들로 가득했다. 앞사람이 내뱉은 공기 방울들이 눈 앞에서 찬란하게 부서졌고 발아래로는 우산 모양의 핑크빛 산호들이 펼쳐졌다. 코 앞까지 다가와 살랑살랑 지느러미를 흔드는 니모를 지나 에너지가 넘치는 참치 떼와 맞닥드리기도 했다. 바다는 정말 우리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세상이었다.

<룸메들이 찍어 준 우리 부부 다이빙 인생샷.>

 첫 번째 다이빙이 끝이 나고 점심을 먹은 뒤 잠시 쉬는 동안 스노클 장비만 차고 바다에 들어갔다. 홍해 바다는 염도가 굉장히 높아 구명조끼를 입지 않아도 몸이 둥둥 뜨는 신기한 곳이었다. 때문에 수영을 못해도 이곳에서는 누구든 5m, 10m 깊이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다. 게다가 '가브리엘빈트'깊이 들어갈 필요 없이 바다에 얼굴만 담가도 열대어들과 산호는 원 없이 볼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스노클링하기는 최적의 장소였다.

<수심 5m는 되는 깊은 바다에 막 뛰어 들어도 안전!>

 두 번째 다이빙도 안전하게 잘 마치고 나자 배는 닻을 올리고 육지로 방향을 돌렸다. 돌아가는 길 아주 멀리서긴 했지만 돌고래 떼도 잠시 볼 수 있었다. 보트 다이빙 덕에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난생 처음 깊은 바다에서 구명조끼 없이 스노쿨도 하고 정말 알찬 하루였다.

<보트에서 뛰어드는 다이빙이 걸어 들어가는 것보다 편하다.>

 사람들은 이집트 하면 '위험'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내가 직접 와 본 다합은 여유롭고 평화롭고 안전했다. 물가도 저렴한데다 언제 어디서나 스노쿨링을 즐길 수 있는 바다가 코 앞에 있어 잠시 들른 여행자들이 스스로 이곳에 발을 묶어 버린다는 마성의 도시 다합. 이 도시는 다이빙 외에도 매력이 차고 넘치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보낸 3주간의 생활기는 다음편에 따로 소개를 해야 할 것 같다.

<가브리엘빈트 포인트에서 룸메들과 가족사진.>

 여행을 하며 위험해서 갈까 말까 고민했던 나라들이 여럿 있었다. 아프리카, 인도, 터키, 이집트가 바로 그런 나라들이었다. 하지만 가기로 결정을 하고 막상 도착해 보니 위험 보다는 눈 앞에 펼쳐진 난생 처음 보는 놀라운 풍경과 문화들이 우릴 설레게 했다. 물론 이 선택의 배후에는 우리의 안전을 위해 늘상 챙겨 보던 지구촌 뉴스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적색 경보가 들어올 정도의 극 위험 지역이 아니라면 약간의 무모함을 가방 한켠에 고이 담아 떠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나는 안전에 대해 굉장히 걱정이 많은 사람중 하나인데 이런 나도 이곳저곳 다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세상은 미리 한 걱정보다 그리 위험한 곳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조금 위험할 수도 있지만 많이 행복할 수도 있는 여행의 길 위에 선다. 그곳이 안전한지 위험한지 더러운지 행복한지 맛있는지 놀라운지 아름다운지를 온몸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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