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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롬 Jan 26. 2018

#106.이집트 신화 속으로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

#기자피라미드 #2017년10월10일~12일


<나일강 남단에 위치한 카이로.>

 이집트 나일강은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로 이곳에서 기원전 8천 년경 최초의 고대 문명이 탄생했다. 이것을 기반으로 기원전 3100년 고대 이집트가 세워졌고 로마의 속국이 되기 전까지 2800년간 그 영광이 계속되었다. 피라미드가 가장 많이 건축되었던 고왕조 시기(BC 3100년~BC 2040년), 외부의 침입으로 쇠퇴기를 겪었던 중왕조 시기(BC 2040년~ BC1567년) 그리고 다시 한번 번영의 시기를 누리다 결국 페르시아의 속국이 되며 멸망의 길을 걸었던 신왕조 시기(BC 1567년~ BC 332년)를 거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고대 이집트. 우리는 수많은 신화와 이야기들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고대 이집트를 조금 더 가까이 느껴보고자 현재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로 향했다.

<다합과는 많이 다른 거대한 도시 카이로>

 카이로는 지난 3주간 머물렀던 다합과는 정반대인 아주 커다란 도시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많은 자동차들이 뒤엉켜 소음을 만들어 냈고 거리는 온통 고층 빌딩들로 가득했다. 그 혼잡함 사이로 언제부터 흘렀는지 알 수 없는 나일강이 오늘도 조용히 역사의 한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상 속 나일강과 많이 다른 모습인 도심 속 나일강>

 고대 이집트의 흔적을 만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카이로 시내에 위치한 '카이로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에는 이집트를 다스렸던 역대 파라오들과 관련된 것들부터 당시 사람들의 문화와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벽화까지 수만 점에 달하는 유물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나는 수천 년의 때가 묻은 시간의 조각들 사이를 거닐며 이집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그들의 신화에 대해 생각했다.

<미니미 스핑크스가 지키고 있는 이집트 박물관>

 매의 머리를 가진 태양의 신 라(La)는 신들의 왕이자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의 아버지였다. 그는 세상을 돌아보는 일을 했는데 그가 왕궁을 나서면 세상에는 낮이 찾아왔고 그가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면 세상에는 밤이 찾아왔다.

<태양의 신 '라'의 눈은 자유롭게 온세상을 둘러볼 수 있다고 한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태양의 신 라는 스스로 잉태해 공기의 신 슈(Shu)와 수증기의 신 테프눗(Tefnut)을 창조했다. 이후 슈와 테프눗은 부부가 되어 땅의 신 게브(Geb)와 하늘의 신 누트(Nut)를 낳았다. 그리고 이 게브와 누트도 부부가 되어 오시리스(Osiris)와 이시스(Isis), 세트(Seth)와 네프티스(Nephthys) 등을 낳게 되는 것이다. 역시나 오시리스와 이시스 그리고 세트와 네프티스도 부부가 된다. 고대 이집트의 왕족이 근친을 통해 혈통 유지의 명분을 이어 갔던 사실이 신화에도 고스란히 반영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하늘과 땅의 신 게브와 누트>

 그러던 어느 날 악의 신인 세트는 이집트를 다스리고 있던 자신의 형 오시리스를 죽여 나무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떠내려 보내게 된다.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는 백방으로 수소문 해 그의 시신을 겨우 찾게 되는데 그 사실을 안 세트는 또다시 형의 시신을 빼앗아 열네 토막을 내 온 나라에 뿌려버린다. 이시스는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고 남편 오시리스의 시신 조각을 찾기 위해 전국을 헤매고 다니는데 세트의 아내인 네프티스도 오시리스의 시신 조각 찾는 것을 돕게 된다. 결국 이시스는 열세 조각을 찾게 되지만 마지막 조각인 성기 부분을 찾을 수 없어 직접 만든 뒤 남편의 시신을 복원한다. 이집트 사람들은 시신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면 그 혼이 영원히 유지된다고 믿었다. 때문에 신화 속 오시리스도 영혼이 되살아나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죽음의 신이 된다.

<출처: Wikimidia Commons/ 오시리스와 호루스 그리고 오시스>

 신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상상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시스가 복원한 남편 오시리스의 시신을 통해 아이를 갖게 된 것이다. 그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자신들을 여전히 뒤쫓고 있는 세트를 피해 늪지대로 들어가 아이를 출산하는데 그 아이의 이름이 '호루스 Horus'이다. 하지만 결국 호루스는 세트가 보낸 뱀에게 물려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 슬픔에 빠진 이시스는 모든 신들에게 자신의 아이를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이를 가엽게 여긴 태양의 라가 호루스를 살려내고, 지상을 다스리는 '태양의 아들'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귀요미 포즈를 취하고 있는 람세스2세 어린이>

 하지만 이시스는 자신의 아들이 라의 대리인이 아닌 온전한 '신'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라의 침을 가져다가 독사를 만들어 그가 지나다니는 길목에 풀어 물리게 만든다. 이 독은 만든 장본인인 이시스만이 해독할 수 있는 것이어서 그녀는 라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당신의 '비밀의 이름'을 알려준다면 뱀에 물린 곳을 치료해드리겠습니다.


 만약 라가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려주게 되면 그는 그 이름을 알게 된 자에게 능력을 모두 빼앗기고 만다. 하지만 고통이 너무나 극심했던 라는 결국 자신의 이름을 이시스에게 알려주게 되고 그녀는 자신의 아들 호루스에라의 능력을 주어 태양의 신이 되게 한다. 신화에서나 현실에서나 치마바람은 정말 무섭다.

<좌 호루스 우 세트 배치로 강력한 왕권 뽐내기>

 무튼 이렇게 호루스는 태양의 신이 되고 그의 권력은 자연스레 이후 이집트를 집권하는 파라오들에게 연결되어 인간의 신격화를 돕는 근거가 된다. 그래서 이집트의 모든 파라오는 '살아있는 호루스'로 불렸다고 한다. 이집트 박물관의 모든 유물들은 이렇게 먼 나라의 비밀처럼 숨겨졌던 이야기들을 우리 눈 앞으로 불러내 화려하게 펼쳐내 보였다. 매의 얼굴을 가진 태양의 신 호루스와 개의 얼굴을 닮은 세트는 모두 인간과 동물이 결합된 형태인 데다 크기도 보통 사람보다 컸기 때문에 계속 보고 있으면 무서운 기분마저 들었다. 나도 이 정도인데 수천 년 전 이집트 사람들은 이 형상을 보고 정말 신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을 느꼈을 것 같았다.

<말 안들으면 트리플 끄댕이 잡는다고 경고하는 람세스2세>

 전시실에서 만난 람세스 2세의 동상과 벽화에는 항상 호루스와 세트가 함께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붉은 머리카락은 전쟁과 악의 신인 세트의 것을 매부리 코는 태양의 신 호루스의 부리를 닮은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렇게 신과 닮은 모습을 통해 자신의 왕권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었던 람세스 2세는 그의 강력한 왕권을 생생히 보여주고자 당시 이집트와 문제를 빚고 있던 누비인들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벽화에 그려 넣기도 했다.

<출처:Wikimidia Commons/ 투탕카멘의 황금 가면>

 2층에는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은 '투탕카멘 Tutankhamun'의 황금 마스크와 그의 무덤에서 발견된 수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따로 돈을 내면 들어가 볼 수 있는 미라 전시실도 있었다. 남편은 보고 싶지 않다고 해서 나만 티켓을 끊어 들어갔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 두 눈 앞에 람세스 2세가 떡 하니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잘 보존 된 람세스2세의 미라.>

 그는 분명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이다. 하지만 유리관 속 그의 머리카락과 피부 그리고 치아는 놀라울 정도로 온전한 모습이었다. 그가 사랑했던 매부리코도 명확하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방 안에는 람세스 2세 이외에도 약 열구의 미라들이 누워 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벌떡 일어나 유리관을 박차고 나올 것만 같았다. 시신을 미라로 만들면 혼이 영원의 삶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의 입장에 크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었다.

<짓다 만 것 같지만 저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주 잘.>

 엄청났던 박물관에서의 고대 이집트 맛보기가 끝난 다음 날 우리는 택시를 타고 고대하던 기자 피라미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숙소가 있는 도심에서 지하철을 타고 미니 봉고를 타고 어렵사리 피라미드까지 가는 방법도 있지만 우리는 그냥 우버를 부르기로 했다. 이집트는 기름이 싸서 그런지 도심에서 피라미드 앞까지 22km 정도 되는 거리를 가는데 택시비가 58파운드(약 3,800원)밖에 나오지 않았다. 돈 없는 여행자에게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우버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이집트 물가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사람이 개미만해지는 엄청난 크기의 쿠푸왕 대피라미드.>

 입장권을 산 뒤 유적지로 들어서자마자 기자 피라미드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는 '쿠푸왕의 대피라미드'가 위엄 넘치는 자태를 드러냈다. 높이 147m에 기반이 되는 정사각형 한 변의 길이가 무려 230m나 되는 거대한 피라미드 앞에 서니 스스로가 작은 개미같이 느껴졌다.

<돌담에 앉아 피라미드 홍보대사인 척. >

 이 피라미드의 주인인 쿠푸왕은 기원전 2589년부터 2566년까지 이집트를 지배했던 파라오였다. 그는 재위 기간이 끝나기 몇 년 전 자신이 사후에 들어갈 거대한 무덤을 짓기 시작했는데 당시 건축에 사용된 돌 하나의 무게가 15톤에 달했다고 한다.

<강제가 아닌 국책 사업의 일환으로 건축된 피라미드>

 나는 지금껏 이렇게 엄청난 무게의 돌들을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정교하게 쌓아 올린 사람들이 모두 노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을 바꾼 기술과 혁신'이라는 책을 보면 기원전 5세기에 살았던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 역시 자신의 역사서에 이집트인들이 강제 동원되었다고 기록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헤로도토스의 역사서를 검증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연구를 진행한 최근 역사학자들은 피라미드 건설이 당시 이집트 자유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1년의 3개월, 나일강이 범람하는 시기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농민들이 국가에서 품삯과 식량을 지원받으며 일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기록들이 나왔던 것이다. 그들은 품삯이 제때 나오지 않으면 파업도 했고, 정해진 기간 동안만 노동을 제공한 뒤 다시 자신들의 삶으로 돌아가기도 했다고. 내 안에 켜켜이 쌓인 또 하나의 편견과 오해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피라미드 곳곳에 포진 되어 있는 낙타.>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지나 '카프라 피라미드'쪽으로 걸어가자 낙타를 탄 호객꾼들이 누가 봐도 관광객인 우리에게 지겹게 따라붙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호객꾼에 대처하는 방법도 점차 다채로워져 가는 8개월 차 여행자가 아닌가. 일단 재채기를 크게 한번 하고 낙타 알레르기가 있어 타고 싶어도 못 탄다고 너스레를 떨면 호객들은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다가 슬금슬금 다른 관광객에게로 발길을 옮기고 만다. 이게 먹힐까 싶었지만 의외로 잘 먹혀서 살짝 놀랐지만 말이다.

<과거 태양 아래 멋지게 빛났을 카프라 피라미드.>

 우리는 호객꾼들을 떼어 놓고 여유롭게 '카프라 피라미드'를 구경했다. 이 피라미드는 기원전 2558년부터 2532년까지 재위한 카프라 왕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었는데 정확한 것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높은 지대에 건축되어 쿠푸왕의 것보다 더 커 보였고 맨 위에 정교하게 작업해서 붙인 화강암 외장석들이 남아 있었다. 건설 당시 피라미드는 이렇게 반들반들하게 깎인 외장석으로 온통 뒤덮인 채 강렬한 태양 아래 그 위엄을 뽐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피라미드가 태양의 신 호루스의 아들이라 여겨졌던 파라오의 사후 삶을 위한 곳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주는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어린이 과학 동화에서나 보던 스핑크스를 만났다.>

 기자 피라미드에서 규모가 가장 작은 '멘카우라 피라미드'까지 모두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그 유명한 스핑크스를 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자연 그대로의 거대한 바위를 깎아 만들었다는 스핑크스는 수천 년의 세월에도 여전히 늠름하게 피라미드 앞을 지키고 있었다. 비록 원래 머리 위에 있던 신성한 뱀 조각은 사라진 데다 턱수염은 영국의 대영 박물관에 가 있고, 코도 많이 훼손된 상태였지만 말이다.

<출처: Geograph/ 그리스의 스핑크스에는 날개가 있음.>

 사자의 몸에 인간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는 이집트뿐 아니라 그리스, 시리아, 페르시아, 바빌로니아, 페키니아의 신화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침에는 네발, 점심에는 두발,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 짐승은 무엇인가?'라는 수수께끼를 내는 존재도 그리스 신화 속 스핑크스이다. 이렇게 나라별로 때로는 매나 숫양의 머리를 하고 있거나 서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등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보통 왕권과 태양신을 상징하는 용도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피라미드 사이의 수줍은 손하트.>

 내가 만약 수천 년 전 이곳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인간도 사자도 아닌 오묘한 모습에 태양신의 아들인 파라오의 얼굴이 새겨진 이 거대한 석상을 보고 '이게 바로 신이로구나'하고 덜컥 믿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고대 이집트는 신화와 삶이 하나의 매듭으로 이어진 견고한 집단이었고 그것으로 서른한 개의 왕조가 흘러가는 동안 자신들의 문화를 굳건히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출처: Wikimedia/ 멀리서 보면 세 피라미드가 한눈에 보인다고 함.>

 덕분에 과학으로 범벅이 된 21세기의 우리도 여전히 신화와 상상 속을 헤매며 즐거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명확한 증명은 어렵지만 다채로운 경우의 수를 늘어놓을 수 있었던 카이로 여행. 거리에 질서란 찾아볼 수 없고 도시는 온통 복잡함으로 가득하지만 여행자들은 오늘도 카이로의 진한 매력에 발이 묶이고야 만다. 우리도 이곳에 멈추어 낡고 오래된 신화와 역사를 걸쳐 입고 수천 년 전 그 날을 거닐었던 이 시간들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그 걸음이 모래 위를 걷는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깊이 있게 새겨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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