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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롬 Feb 11. 2018

#107.얄라비나, 시와 사막!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이집트 #시와 #클레오파트라온천

#모함메드 #친구 #소금호수

#2017년10월12일~13일


<사하라 사막 동쪽 끝에 위치한 작은 마을 시와>

 카이로에서의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긴긴 버스 이동이 시작되었다. 버스는 뽀얀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이집트 특유의 건조한 사막 지대를 달리고 또 달렸다. 역사에 종종 등장하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번의 경유를 거친 뒤 하루 해가 지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나야 버스는 우리를 목적지에 내려 주었다.

<당나귀 마차가 다니는 느리고도 느린 마을.>

 우리가 도착한 도시의 이름은 '시와 Siwa'. 사하라 사막 동쪽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은 당나귀가 끄는 수레가 교통수단일 정도로 정겹고 느린 그런 곳이었다. 아주 보수적인 시골 지역이라 남자들은 모두 무릎까지 내려오는 하얀 이슬람식 전통의상을 입었고 여자들은 눈을 포함해 온 몸이 가려지는 검은 옷을 입고 다녔다.

<덥고 먼지도 많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마법같은 곳이다.>

 나는 이 마을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뽀얗게 흙먼지가 이는 오솔길과 시곗바늘을 30년쯤 뒤로 돌린 듯한 낡은 풍경들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운 낯선 사람들. 시와에서는 이 모든 것이 묘하게 조화로웠고 편안했고 아름다웠다.

<치즈가 과도하게 들어간 피자로 점심 해결.>

 우리는 하루 100파운드(약 6,000원)짜리 저렴한 호스텔에 거처를 정하고 다음 날 느지막이 일어나 본격적인 시와 탐험에 나섰다.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ATM에서 돈을 인출 한 뒤 달가닥 달가닥 열심히 제 갈길을 가는 당나귀 택시를 잡으려고 길가에 섰는데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오토바이 택시였다. 열네다섯 살 남짓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두 명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마을 근처에 있는 '클레오파트라 온천'까지 70파운드(약 4,200원)의 요금을 요구했다. 여행자 바가지 적용 금액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우리는 흥정도 포기한 채 다음 오토바이 택시 기사에게로 다가갔다.

<윌 스미스 닮은 모함메드의 오토바이 타고 클레오파트라 온천 가는 길.>

 이번 오토바이 택시의 운전사는 키가 크고 윌 스미스를 닮은 모함메드라는 젊은이였다. 그는 40파운드(약 2,400원)에 '클레오파트라 온천'까지 우리를 데려다주었는데 영어를 잘해서 가는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클레오파트라 온천 물은 초록빛이었다.>

 모함메드는 열 살 때부터 15년간 당나귀 택시를 몰았다. 그렇게 돈을 모아 장만한 것이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오토바이 택시였던 것이다. 그는 시와 마을 토박이로 여행객들은 모르는 멋진 장소들을 많이 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당나귀를 몰 때 보다 더 먼 곳까지 빠르게 이동할 수 있으니 우리가 원한다면 해 질 녘 마을 근처에 있는 소금 호수에 데려가 주겠다고도 했다. 가격은 수영도 하고 작은 모닥불을 만들어 차도 끓여 주는 것 까지 포함해 1인당 40파운드(약 2,400원). 이 예산으로 그런 활동이 가능한 것일까 의문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지만 일단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약속을 잡았다. 모함메드는 온천에서 놀고 있으면 4시 반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유유히 떠나갔다.

<늘어지게 누워 있는 손님이라고는 우리 뿐인 노천 카페.>

 클레오파트라 온천은 지름이 대략 10m 정도 되는 둥그런 원형 수영장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속이 들여다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은 이끼 때문인지 녹색으로 빛났고, 수면 위로 올라오는 작은 기포들로 인해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흘렀다. 주변에는 한가롭게 낮잠 자기 딱 좋은 두 개의 카페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에서 온천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서비스로 나온 대추야자 열매. 곶감 맛이 난다.>

 시원한 과일 주스 두 잔을 주문하고 가져온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남편은 온천에 들어가 수영을 했다. 사실 나도 수영할 준비는 완벽히 해왔지만 차마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남탕에 온 듯 꼬마부터 할아버지까지 온통 남자들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듣기로는 엄청나게 한가로운 곳이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손님이 많은 것인가도 의아했다. 하지만 이유는 의외로 아주 간단했다. 금요일. 이슬람 사람들은 원래 매주 금요일마다 정결하게 목욕재계를 하고 모스크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우리가 방문한 날이 딱 금요일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한 차에 네다섯 명씩 타고 와서 온몸에 비누칠을 한 뒤 첨벙첨벙 뛰어들더라니. 매주 금요일 클레오파트라 온천은 이들에게 공짜 목욕탕이 되는 셈인 것이다.

<비누 칠하고 뛰어들면 목욕 끝.>

 워터파크에서 목욕하는 듯 신나 보이는 시와 사람들을 구경하다, 읽던 책에 시선을 주다, 또 새롭게 주문한 망고 주스를 음미하다 보니 어느덧 모함메드와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다. 이집트 사람들은 시간 약속을 잘 안 지키는데 모함메드는 그가 말한 4시 30분에 정확하게 클레오파트라 온천으로 우리를 데리러 왔다. 그를 향한 신뢰가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네셔널지오그래픽에서나 볼 법한 신비로운 풍경.>

 우리는 다 같이 모함메드의 파란색 오토바이에 올라 그만 아는 시와의 비밀 장소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혹시나 어딘가로 팔려가는 것은 아닐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잠시 후 펼쳐진 거짓말 같은 풍경과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결에 의심은 한 줌도 남지 않고 날아가버렸다.

<차 끓일 때 쓸 땔감 줍는 모함메드.>

 좌우로 끝없이 펼쳐진 소금 호수와 곳곳에 쌓인 하얀 소금산들 그리고 그 위로 뉘엿뉘엿 노랗게 태양의 자락이 드리워진 시와는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자연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엉덩이에 멍이 들 정도로 덜컹이는 오토바이 택시에 앉아 지금 이 순간 차오르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알고 있는 유일아랍어 단어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얄라비나! Let's GO!

<수영 후 소금 사막을 바라보며 명상(하는 척 하며 사진 찍기)>

 그리고 마침내 비밀스런 소금 호수에 조심스레 오토바이가 멈춰 섰다. 호수의 바닥은 새하얀 소금으로 가득했고 그 위로 황금빛 태양이 짙게 내려앉았다. 나는 저 멀리 쌓여있던 소금 더미 뒤에서 수영용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물속으로 들어갔다. 다리에 물린 모기 자국에 남아있던 상처가 소독되는 듯 따가웠다. 수영을 해보려고 앞으로 몸을 누이니 부력이 너무 세서 다리가 하늘로 달랑 떠버려 되려 물 속에 얼굴을 박게 되었다. 하도 중심 잡기가 어려워 이번에는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누워보았다. 좀 전보단 몸 가누기가 한결 수월했다. 나는 머리 뒤에 손깍지를 끼고 다리까지 꼰 상태로 물 위를 떠다녔다. 마치 젤리 위에 누워 수영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붉은 태양을 담은 달달한 차 한 잔.>

 우리가 소금 호수의 엄청난 부력을 체험할 동안 모함메드는 작은 모닥불을 만들어 차를 끓였다. 이집트 사람들도 터키 사람 못지 않게 차를 즐겨 마시는데 민트향이 나는 찻잎을 끓인 물에 설탕을 한가득 넣어 달달하게 마시는 것이 특징이었다. 모함메드는 달콤하고 상쾌한 맛의 차와 함께 몇 가지 주전부리들을 권했다. 곶감 맛이 나는 대추야자 열매와 과자 그리고 땅콩. 우리는 그가 차려 놓은 간식과 차를 마시며 해가 지는 소금 호수의 낭만에 빠져 들었다.

<모함메드의 쿠피야를 쓴 남편. 꽤나 잘 어울린다.>

 일몰을 구경하는 동안 모함메드는 자신이 머리에 쓰고 있던 스카프인 쿠피야를 풀러 우리 머리에 한 번씩 둘러 주었다. 그는 나에게 정성껏 쿠피야를 씌워주며 자신은 정확히 말하자면 이집트인이 아닌 시와인이라고 했다. 시와인은 북아프리카 이집트 서쪽 사막과 시와 오아시스 주변에 거주하며 농경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데 이들에게 쿠피야는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는 모자가 되기도 하고 모래 바람을 막아주는 마스크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와인들은 아랍어 이외에도 자신들만의 언어인 시와어를 사용한다며 우리에게도 간단한 인사말을 알려주었다.

<해가 지고, 내일을 약속하며 안녕!>

 우리 세 사람은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여유롭게 소금 호수 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모함메드는 돈을 떠나서 우리와 같은 여행객들에게 마을 구석구석을 소개해주는 일을 진심으로 즐기는 듯했다. 나는 그의 진심 어린 태도에 잠시나마 의심의 눈길을 가졌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서 이렇게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된 것에 감사했다.

<사막에서 만난 좋은 친구 모함메드와 함께.>

 어둠이 조금씩 세상을 덮던 순간 모함메드의 파란 오토바이는 다시 마을을 향해 달렸다. 이렇게 완벽한 저녁을 선물해준 그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거듭 고맙다고 말하는 것과 조금의 마음을 더해 가이드비를 지불하는 것 그리고 내일 함께 하루 종일 시와의 비밀스러운 장소들을 탐험하기로 약속하는 것뿐이었다. 이마저도 왠지 나의 미안함과 고마움을 채우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나 싶다. 어찌 되었든! 욕심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함메드의 본격 프라이빗 올데이 시와 투어. 기대 가득 안고, 얄라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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