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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롬 Mar 21. 2018

#108.모함메드와 함께한 토요일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이집트 #시와사막 #마을구경

#사막에서점심먹기 #2017년10월14일


<사하라 사막 동쪽 끝에 자리 잡은 시와 마을>

 아침에 눈을 뜨니 지저분한 천장이 보였다. 시와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팜트리 호스텔은 두 사람이 하룻밤 묵는데 100파운드(약 6,000원)라는 획기적인 가격에 걸맞게 굉장히 어수선했고 지저분했다. 벽에는 이곳에 묵었던 수많은 사람들과 모기와의 질긴 전쟁이 적나라하게 전시되어 있었고, 침대에 깔린 이불은 청결과는 담을 쌓은 듯 보였다. 게다가 화장실에서는 하수구 냄새가 슬멀스멀 피어올랐다.

<출처: 팜트리 호스텔 페이스북/ 마당이 방보다 좋아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겠지.>

 하지만 우리는 나름의 방법대로 이곳에 적응해 갔다. 동네 슈퍼에서 모기 스프레이를 사서 하루에 반통씩 뿌려가며 방역 작업을 했다. 덕분에 벽 위에 새로운 모기 컬렉션은 생기지 않았다. 침대에는 가지고 다니던 침낭을 깔고 잤고 화장실 문은 가급적이면 열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여러모로 불편함이 많았지만 그래도 나는 이곳이, 시와가 좋았다. 시와에는 아름다운 소금 호수도 있고 사막도 있고 오아시스도 있고 모함메드도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 관념 철저한 모함메드. 옆모습도 훈훈함.>

 오늘은 모함메드와 하루 종일 시와의 숨은 명소들을 찾아다니기로 한 날이다. 아침 10시 30분. 그는 정확히 약속한 시간에 맞추어 호스텔 앞으로 우리를 데리러 왔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손질된 그의 파란색 오토바이는 자신의 주인만큼이나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한타 할레닉


 남편과 나는 어제 배운 시와어로 모함메드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익숙한 언어가 반가웠는지 여름 숲의 바람처럼 맑게 웃었다. 우리는 나무판자와 솜 방석으로 만든 좌석에 엉덩이를 단단히 붙이고 앉았다. 모함메드는 고개를 돌려 손님들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야자수가 많은 시와. 좁은 길에서는 게임모드 장착이 필수다.>

 마을 오솔길을 달리는 동안은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었다. 지붕이 없는 오토바이의 특성상 잎과 과실이 무성한 대추야자 나무가 나타나면 가지에 부딪히지 않도록 스스로 몸을 낮춰 장애물을 피할 것. 게임은 어릴 적 문구점 앞에 쪼그리고 앉아 범우주적 집중력을 발휘하며 즐겼던 갤러그처럼 단순하면서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절대 손잡이를 놓지 말 것. 손잡이라고 해봤자 경운기 뒷좌석 같이 생긴 수레의 기둥을 붙잡는 수준이었지만 태초의 오프로드 같이 순수 험함의 진수를 보여주는 길 위에서는 이것이야말로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손을 놓고 휴대폰의 카메라를 켜다가 영원히 지구를 떠날 뻔한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모함메드, 화보 찍니?>

 실핏줄처럼 가늘고 정교하게 이어진 오솔길을 벗어나자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우리의 그림자뿐인 진짜 시와가 나타났다. 파란 하늘은 듬성듬성 모여 앉은 구름들과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고, 그것보다 더 푸르른 호수는 바람이 만든 주름진 미소를 지어 보이며 시간을 흘려내고 있었다. 호숫가 돌들은 오랜 시간 물결에 실려 온 소금을 걸친 채 햇볕 아래 눈부시게 빛났다. 그리고 그 곁에 잠시 오토바이를 세운 모함메드가 서있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새하얀 전통의상을 입은 모함메드. 그는 이 동네와 지나치게 잘 어울렸다. 이곳에 살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말이다. 

<그 옛날 귀족들은 무덤도 으리으리하다.>

 오토바이는 하루 종일 우리가 원하는 곳에 멈추었다, 원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사막의 노오란 모래들로 가득한 유적에서 아주 오래전 사람들의 무덤을 만나기도 했다. 모함메드는 이곳에 묻혔던 사람들이 귀족이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거대한 자연석의 속을 파내 동굴처럼 만든 무덤은 마치 다세대 주택 같아 보였다. 모래 언덕을 올라 가까이에서 텅 빈 무덤 속을 살펴본 뒤 내려가려는데 모함메드가 따로 갈 곳이 있다며 후미진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발로 찍어도 화보가 되는 모함메드.>
<너무나 선명한 백만년전 발자국. 신기해서 넋이 나감.>

 그는 무덤이 자리 잡은 거대한 자연석의 꼭대기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리고 백만 년도 넘은 사람의 발자국을 보여주었다. 백만 년이라니. 고작 삼십일 년을 살아온 나로서는 그 시간의 크기를 가늠할 수도 없었다. 신발을 벗고 백만 년 전 사람의 발자국 위에 발을 포개 보았다. 오래전 이곳에 서 있던 사람은 어떤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자신의 발자국이 유명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그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나라면 한참을 깔깔대며 웃다가 앞으로는 더 많은 발자국을 남겨야겠다고 다짐을 했을 것 같다.

<앞뒤가 똑같아 보이는 사막 길도 훤히 꿰고 있는 우리의 모함메드.>

 백만 년 전 발자국을 보고 한바탕 상상의 나래를 펼쳤더니 슬슬 배가 고파왔다. 모함메드도 나의 뱃속에서 흘러나오는 꼬르륵 소리를 들었는지 한적한 장소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좌석 아래에서 이것저것 물건들을 꺼냈다. 줄줄이 나온 물건들은 돗자리, 물 한 통, 무언가가 잔뜩 담겨 있는 바구니. 이것들을 나눠 들고 무작정 모함메드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는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언덕을 긴 다리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다리가 짧은 우리는 거의 뛰다시피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왠 짓다 만 집 한 채가 서있었다.

<들어오는 사람 안 막고 나가는 사람 안 잡는 컨셉.>

 사막 한가운데 뜬금없이 나타난 집에는 지붕이 없었다. 창문도 자리만 나있을 뿐 유리 한 장 끼워져 있지 않았다. 나름 벽을 세워 방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었지만 바닥은 그냥 모래였다. 모함메드는 현관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리고 얼핏 방인 듯 보이는 공간에 돗자리를 깔고 만약 이 집이 완성되었다면 화장실이었을지도 모르는 곳에 주워온 나뭇가지를 놓고 불을 지폈다. 아, 이곳이 오늘의 점심 연회가 펼쳐질 장소구나!

<오늘은 내가 요리사>

 나뭇가지가 타닥타닥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타오를 동안 모함메드는 돗자리 한편에 앉아 물통에 담아온 물로 야채와 그릇들을 씻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참치 샐러드 한 접시를 뚝딱 만들어 냈다. 샐러드를 시작으로 바구니 속 재료들이 차례차례 그의 손을 거쳐  돗자리 식탁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오이와 레몬을 곁들인 치즈, 잘 익은 대추야자, 감자칩, 막대 과자, 땅콩, 얇게 구운 빵까지. 꽃무늬 접시에 얌전히 담긴 음식들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맥주 한 병을 꺼내 일회용 컵에 정성 들여 맥주를 따랐다. 건배!

<대충 차렸다는데 왜이렇게 진수성찬임. 심지어 색도 조화로움.>

 건배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점심 식사를 시작했다. 얇은 빵 위에 참치 샐러드를 올려서 한 입. 또 오이 위에 으깬 치즈를 올려서 한 입. 모함메드가 차려준 음식은 모두 맛있었고 특별했다. 그 맛은 사람의 흔적보다는 바람과 모래, 태양이 머물다 가는 사막 속 빈 집에서 먹는 것이었기에 더욱더 그러했다.

<매 순간 최고의 작품을 선사하는 천연 액자.>

 식사를 하는 내내 뻥 뚫린 창문으로 푸른 하늘이 흘러들었다. 매 순간 변화하는 창문 속 풍경은 마치 살아있는 액자 같았다. 나는 모함메드가 건넨 달달한 이집트 차 한잔을 마시며 찬찬히 공간들을 훑어 보았다. 누군가 세상과 단절된 낯선 행성에 도착해 막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신다면 딱 지금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게 또 나쁘지 않았다.

<모함메드와 다정한 한때.>

 먹고 난 그릇들을 정리한 뒤 우리는 뜨거운 해가 잦아들 때까지 담소를 나누었다. 모함메드는 여덟 살 때부터 농장에서 일을 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그리고 열다섯 살 남짓 되던 해 당나귀 수레를 몰기 시작했다. 무려 10년간 수레를 몰아 번 돈으로 산 것이 바로 이 파란색 오토바이 택시인 것이다. 그는 만약 자신이 여전히 당나귀 수레를 몰았더라면 마을에서 비교적 거리가 먼 이곳까지 우리를 데려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시와의 구석구석을 소개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행복. 그는 스물일곱의 나이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이미 깨달은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그 누구 보다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이 길은 달려도 달려도 질리지가 않는다.>

 태양이 조금 기운 시간, 우리는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로 향했다. 모함메드에게 어디로 가는지 물었더니 판타스틱 아일랜드로 간단다. 사막에 아일랜드? 그것도 판타스틱?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니 그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이름만 아일랜드인 강변 카페라고 추가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파란 하늘과 조화롭게 서있는 야자수.>

 오토바이를 타고 소금 호수와 사막의 곁을 지나 도착한 곳은 야자수가 가득한 숲. 아무 데나 오토바이를 세우고 조금 걸어 들어가니 잔잔한 강변 옆으로 작은 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놓인 카페가 나타났다. 손님은 우리뿐이었고 풍경은 나른했으며 마음도 안락했다. 나는 주문한 망고 주스가 나올 때까지 의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저물어 가는 해의 자락 사이로 저 멀리 사막이 보였다.

<앞은 사막, 옆은 휴양지. 정말 판타스틱한 곳이다.>

 거대한 오아시스를 사이에 두고 사막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린 왕자와 생떽 쥐베리가 떠올랐다. 그의 책은 언제 어디에서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신비로운 물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책 보다 눈 앞에 풍경에 집중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훗날 어린 왕자나 야간비행 따위를 읽으며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니 말이다.

<태양의 마지막 모습.>

 남편과 나는 그렇게 한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의 조각들이 붉은 태양과 함께 호수 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수평선 뒤로 하루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던 순간, 이곳이 왜 판타스틱 아일랜드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날들이 이렇게 아름답게 지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런 감동이 일었다.

<시와를 달리는 우리의 그림자. feat.오토바이>

 모함메드는 아마 우리에게 이런 행복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볼 수 있는 행복. 시간을 짊어진 채 퇴근하는 태양을 배웅하는 행복. 덜컹이는 오토바이에 앉아 얄라비나를 외칠 수 있는 행복. 이렇게 가만히 있어야만 볼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을 발견하는 행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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