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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롬 Jul 18. 2018

#111.파리의 박물관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 #FIAC아트페어

#2017년10월20일


<프랑스의 수도 낭만의 파리>

 아침 일찍 한인 게스트하우스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따듯한 밥을 먹고 차가운 가을 기운이 내린 거리로 나섰다. 지금까지 더운 계절을 따라 여행했던 우리는 늘 얇은 옷과 함께였다. 그래서인지 파리의 가을은 유독 알싸했다. 하지만 등을 떠미는 쌀쌀함에도 설렘이 묻어나는 까닭은 지금 이 순간 붉게 물든 낙엽이 스산하게 떨어지는 파리의 가을을 걷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스트하우스 이모님의 특급 사랑 담긴 아침 밥상>

 날씨가 주는 감정의 울렁임을 오롯이 느끼며 도착한 곳은 세느 강변 옆 루브르 박물관. 이곳은 본래 요새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지만 여러 번의 확장 공사를 거쳐 궁전이 되었다가 지금은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900년 가까이 한자리에 앉아 시간을 세어가며 그리고 시간을 품어가며 박물관이 된 루브르. 이렇게 사라지고 없는 누군가의 흔적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이 파리가 갖는 가장 큰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루브르의 상징 유리 피라미드 인증은 필수>

 우리는 박물관에 올 때마다 으레 한국어 가이드를 신청한다. 가이드는 그냥 스쳐 지나갈 것들 속에서 오래되고 잘 익은 이야기들을 꺼내 맛있게 전달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파리에 관한 우리의 기억도 보다 풍성해지고 말이다.

<과거 궁전이었음이 확실한 루브르의 자태>

 박물관에 들어서자 가이드님은 가장 먼저 페르시아 문명의 세계로 우릴 안내했다. 세계사 시간 밑줄에 별표까지 그려 넣었던 함무라비 법전의 실물이 지금 내 눈 앞에 있다니. 기분이 묘해지는 순간이었다. 기원전 1792년쯤 만들어졌다는 법전의 나이는 올해로 약 3,809세. 그 기나긴 시간 동안 검은 돌기둥은 정의에 대해 그리고 공평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의 법률과 비교하면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에 대한 것은 지금보다 더욱 엄격하고 단호하게 다루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교과서에서 오조오억번 봤던 함무라비 법전의 실체>

 고대 문명의 흐름은 기원전 700년 코르사바드 왕궁의 흔적들로 이어졌다. 여기서 가장 놀랐던 것은 왕실의 벽을 그대로 가져다 전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예로부터 유럽 사람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유적을 누구의 허락도 없이 가져다가 소유하고 전시해왔다.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보존되지 않았을 테니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발견한 유물들을 보존하고 싶다면 그 나라에 박물관을 짓고 현지 사람들에게 그것을 보존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올바른 길이 아닐까.  

<귀하다면 아무리 거대해도 다 가져올 수 있었던 유럽 사람들>

 비록 열강의 욕심 때문에 멀고 먼 이곳까지 오게 되었지만 그래도 코르사바드 궁의 조각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황소의 몸과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라마수 조각은 그들을 보여주는 아주 작은 단서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것의 꼬리를 물고 먼 옛날 이라크 북부로 잠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어 행복했다.   

<작은 게 이 정도인 스핑크스의 위엄>

 루브르 박물관에는 스핑크스도 있었다. 이집트에서 만났던 거대 스핑크스보다는 작았지만, 본 적 있는 얼굴이라 그런지 아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지난주까지 머물렀던 이집트에서의 추억이 물밀 듯 밀려들었다. 나른한 모래사막, 반짝이는 홍해 바다, 그리고 그 앞을 거니는 낙타. 현실 같지 않은 오묘한 풍경에 몇 번이나 감동했던 그 시간들이 잠시나마 그리워졌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이 여행의 남은 날들까지도 몽땅 그리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바닷바람 가르며 항해를 할 것 같은 니케 여신상>

 관람이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가이드님은 우리를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 니케 상’ 앞으로 데려갔다. 모나리자 다음으로 루브르 박물관의 인기 작품인 거대한 여신상은 지금 이 순간 강렬하게 불어오는 에게해의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있는 듯 역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단단한 대리석을 재료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아주 얇은 옷을 걸치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정교하게 제작되었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었다. 무려 100조각 이상으로 나뉘어 있던 것을 장인의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이어 붙여 복원했다는데, 만든 사람도 복원한 사람도 모두 금손 인정이다.

<멍때리며 보게 되는 모나리자>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 루브르의 ‘그녀’를 만나러 갔다. 커다란 전시관에 들어서자, 그녀는 소문을 무성하게 두르고 신비로운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날이 추워 박물관 자체에 관람객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주변은 인산인해였다. 나도 사람들이 미쳐 닫지 못한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살짝 올라간 오른쪽 입꼬리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동자를 가진 모나리자. 때로는 한없이 온화해 보이다가도, 한없이 쓸쓸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투영하는 오묘한 힘을 가진 것 같았다. 다빈치는 무려 4년에 걸쳐 이 작품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 그림에 대해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보통 초상화를 의뢰받으면 그림이 완성된 뒤 주인을 찾아가기 마련인데, 다빈치는 이 그림을 꽤 오랜 시간 개인 소장으로 남겨두기까지 했다. 그에게 모나리자는 어떤 의미였을까. 이제는 알 수 없는 작가의 마음까지 고이 품고 있는 모나리자는 오늘도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과 함께 조금씩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

<사계를 바라보는 은발의 그녀는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을까>

 박물관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사계’라는 작품 앞을 지났다. 꽃과 과일 야채를 이용해 네 가지 계절의 아름다움을 생기 있게 표현한 그의 작품은 굉장히 유쾌하고도 흥미로웠다. 봄에서 여름을 지나 가을과 겨울로 향해갈수록 그림 속 인물은 서서히 늙어갔다. 우리의 인생이 이 네 점의 그림 속에 모두 담겨 있듯 말이다.  

<나는 겨울의 얼굴이 좋다>

 그가 바라본 봄의 얼굴은 핑크빛으로 물든 여인의 뺨과 네모난 프레임 가득 피어난 꽃들의 향기가 눈 앞을 아련하게 만드는 그런 것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처럼 꽃들의 만개 속에서 생명이 흘러넘쳤다. 그 옆으로 이어지는 여름의 얼굴. 그 속에는 한입 베어 물면 당장이라도 과즙이 물씬 터져 나올듯한 재료들이 싱그럽게 드리워져 있었다. 쓰고, 달고, 시고, 매운 삶의 맛들을 가장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우리의 젊음처럼 말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무르익어 원숙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가을. 그림 속에는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젊음의 불안정함에서 벗어나 삶의 불완전함에 조금씩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이파리보다 무성해진 가지로 표현된 겨울의 얼굴에서는 깊게 패인 나무의 결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인생의 시침은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가지만 그 어느 때보다 여유가 느껴지는 겨울의 얼굴이 좋았다. 오래도록 보아도 짙고 깊은 향기가 나는 그런 얼굴이었다.  

<가을이 짙게 내린 파리의 뛸르히 정원>

 이렇게 루브르에서의 시간은 내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남겼다. 그 너울은 박물관을 나온 후에도 얼마간 계속되었다. 그런 마음에 오묘한 가을바람이 떠밀려 들었다. 거리를 수놓은 붉고 노란 낙엽들은 추위에 떠밀려 빨라지려는 나의 걸음에 자꾸만 훼방을 놓았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 손을 잡고 천천히 박물관 옆 뛸르히 정원을 걸었다.  

 우리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당한 장소로 알려진 콩코르드 광장을 지나 세계 3대 아트 페어 중 하나인 ‘FIAC’이 열리고 있는 그랑 팔레로 향했다. 사실 입장료가 1인당 무려 37유로나 하는 이 퀄리티 높은 아트 페어에 가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었다. 하지만 정말 운 좋게도 루브르 박물관 투어에서 만난 한국분이 이곳에 들어가는 VIP 패스를 공짜로 주셨고, 그 덕에 이렇게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로또다 로또!

<전시회가 있을 때만 들어올 수 있다는 그랑팔레 홀>

 FIAC은 20세기의 유명 작가들부터 21세기의 떠오르는 신진 작가들의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아트 페어였다. 현대 미술은 항상 그렇듯 애매하고 모호하며 오묘한 것이 매력. 나에게 미술적 지식이 없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게다가 오늘 아트 페어가 열리는 그랑 팔레의 대형 홀은 이렇게 기획전이 있을 때만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계 탄 날이 아닐 수 없다. 그랑 팔레에 들어서자 거대한 유리돔으로 이루어져 있는 대형 홀의 천장을 통해 가을 햇볕이 가득히 쏟아져 내렸다. 그 아래로 개성 강한 작품들이 충실히 제 몫을 다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둘러보았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느낌이 좋은 작품들 곁에 서서 이리저리 살피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이 긴 시간 동안 나는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감정과 생각 그리고 삶에 대한 견해들을 모두 녹여 그 끈적한 농축물을 한 점의 시각적 작품으로 풀어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 낸 작품이 누군가의 평가에 의해 10만원이 되기도 하고 1,000만원이 되기도 한다. 그 누군가의 기준은 대체 무엇일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셈일 텐데 말이다.

<피에로 만초니의 예술가의 똥 / 출처: Wikimidiea Commons Jens Cederskjold>

 1961년도에 피에로 만초니라는 예술가는 이러한 자본 중심의 예술 사조를 비판하기 위해 자신의 똥을 90개의 깡통에 나누어 담고 자신의 이름과 작품이 탄생한 날짜와 시리얼 넘버 등을 매겨 판매했다. 하지만 90캔의 똥은 인기가 날로 날로 높아져만 갔고, 작가가 29세의 나이로 요절해버리는 바람에 더더욱 유명해져 버렸다. 그리고  약 2년 전 밀라노 경매에서 27만 5천 유로(약 3억 6천만 원)에 낙찰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캔을 여는 순간 작품이 훼손되기 때문에 실제로 그 안에 똥이 들어있는지 확인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만초니의 이 작품 또한 파리의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니 시간 되면 한 번 들러 캔이라도 보고 와야겠다.

<파리를 더욱 파리스럽게 만들어주는 알록달록 작품>

 관람을 마치고 그랑 팔레 앞마당으로 나가니 거리에는 이미 오후의 빛이 내려앉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관람에 정성을 쏟아서인지 몸 구석구석 나른함이 따라붙는다. 휴, 하얗게 불태웠어. 비록 전공도 아니고, 그림 볼 줄은 더더욱 모르나 거침없이 받아들인 역사와 미술의 장면들은 머리 대신 마음을 거쳐 뒤통수에 반짝하고 전율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다. 눈이 호강하고 마음이 찬란했던 파리에서의 두 번째 날. 나는 집에 돌아가는 내내 이 말을 되뇌었다. 파리에 오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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