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아프리카 #잠비아 #리빙스톤 #루사카
#루왕와국립공원 #치파타 #2017년6월20일~23일
잠비아와 보츠와나 사이에는 두 나라의 국경 역할을 하는 잠베지 강이 흐른다. 걸어서 건널만한 다리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그 국경을 건너기 위해서는 커다란 바지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바지선은 사람과 차 그리고 각종 화물들을 실어도 거뜬할 만큼 튼튼한데, 이것을 타고 10분 정도 물길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면 금세 잠비아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잠비아도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비자를 발급받아야 입국이 가능하다. 입국 심사 시 50달러를 내면 즉석 발급이 가능한데, 반드시 미국 달러로만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잠비아 외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도 마찬가지. 무튼 빅토리아 폴스에서 사장님께 환전을 하지 않았다면 우린 국경도 못 건널 뻔했다. 생각할수록 하늘이 도왔다고 밖에 설명이 안된다.
모두가 별 탈 없이 잠비아 입국을 마친 뒤 다시 트럭을 타고 국경 도시 리빙스톤으로 향한다. 오늘은 그다지 이동 시간이 길지 않은 날이라 오후 3시쯤 캠프 사이트에 도착해 텐트를 쳤다. 밤이 오기까지 샤워도 하고 밀린 빨래도 한 뒤 강가에 위치한 Bar로 갔다. 아프리카에는 국가마다 이렇게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 안전한 캠프 사이트들이 곳곳에 위치해 있다. 캠프 사이트 안에는 기본적으로 간단한 식사와 음료 및 주류를 판매하는 Bar와 샤워 시설 및 숙박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아프리카는 생각보다 여행자를 위한 인프라가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를 렌트해서 자유롭게 다니는 것이 더 좋을 뻔했다.
저녁으로 닭요리를 먹고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사람들은 어디서 왔고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이 여행에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돌아가며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나는 급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이런 공개적인 자기소개를 그것도 영어로 해야 하다니. 영어 울렁증 돋는다. 옆을 돌아보니 나보다 더 긴장한 표정의 남편이 보였다. 아마 지금쯤 손에 땀이 흥건하겠지, 나처럼.
나는 일단 한국에서 왔다는 말과 함께 북쪽 아니고 남쪽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근데 의외로 빵 터진다. 뭐지. 그리고 남편과 1년간 세계여행 중이며 지금이 중간 지점쯤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옆에 앉아 있던 레이철이 '아직 그 결혼 유지되고 있는 거 맞지?'라고 농담을 건넸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그런 것 같아. 근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라고 맞농담을 쳤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들 이런 류의 개그를 좋아하나 보다. 다음 차례였던 남편도 '영어를 잘 못하지만 너희들과 많은 이야기 나누고 싶어'라고 멋지게 자기소개를 마쳤다. 우리 둘 다 걱정했던 것보다 말이 잘 나와줘서 천만다행이었다.
잠비아에서 두 번째 날은 수도인 루사카로 500km 정도를 이동하느라 하루 종일 트럭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긴 이동인지라 점심은 한적한 길 가에 차를 세우고 먹게 되었다. 모이가 남자 멤버들과 함께 차에서 긴 테이블 두 개를 꺼내 하나에는 음식을 차리고, 또 다른 하나에는 설거지용 물을 담은 대야를 올린다. 메뉴는 간단하게 입맛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다. 빵과 치즈, 햄, 야채, 과일 등을 원하는 소스와 조합한 뒤 둥글게 모여 앉아 식사를 한다. 식사가 끝나면 그릇은 설거지 테이블로 가져가 각자 깨끗이 씻는다.
트럭킹은 단체 생활이어서 여행하는 동안 조별로 돌아가며 음식 준비 돕기, 설거지, 트럭 청소, 트럭 문단속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매일 역할이 달라지기 때문에 트럭 문에 붙여 놓은 공지를 잘 보고 자신이 맡은 바를 수행해야 하는데, 꼭 자기 역할이 아니어도 다들 무엇이든 잘 돕는 편이었다. 사실 세상에는 '또라이 질량 보존 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 하나씩은 나타나기 마련인데 우리 그룹은 예외인 것 같다. 아, 잠깐만. 예외라고 생각이 들 때 그렇게 생각하는 본인이 또라이라던데. 그럼 난가ㅋ
루사카 캠프 사이트에 도착하니 잔디 위에서 야생 얼룩말이 풀을 뜯고 있다. 얼룩말 정도는 인도에서 소 보듯 만날 수 있는 이것이 바로 잠비아의 클래스다. 원하는 장소에 텐트를 치고 사람들과 수다를 떨다 보니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날아온다. 오늘의 저녁은 직화로 구운 소시지와 목살 스테이크! 매일 저녁은 이렇게 육류로 풍성하게 차려진다. 좋다 좋다 참 좋다.
잠비아에서의 세 번째 날 아침은 새벽 4시부터 시작되었다. 한창 잘 시간에 일어나 씻고, 아침 먹고, 점심까지 싼 뒤 트럭에 올랐다. 오늘은 600km를 달려 동잠비아에 위치한 '사우스 루왕와 국립공원 South Luangwa National Park'으로 가야 한다. 원래는 오후 3시 전후로 도착할 것을 목표로 새벽 5시부터 출발을 한 것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중간에 차가 퍼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금방 고쳐질 줄 알았는데 수리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차가 세워진 곳 맞은편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다가갔다. 낯선 이들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동네 꼬마들과 여인들이 동네 공터에 잔뜩 모여 있었다. 남편은 현지인들의 생활이 궁금했는지 마을 입구까지 혼자 걸어가 청년들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대화를 시작한 지 10분이 지나자 처음 대여섯 명이었던 동네 청년들은 열명이 넘는 숫자로 불어났다. 그 모습을 본 제프도 재미있다는 듯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 현지인들과 함께 어울렸다. 나중에 남편은 그들의 손에 이끌려 마을 구경까지 하고 왔단다. 대단하다.
제프와 남편이 마을 청년들과 대담을 나누고 있는 동안 나는 동네 꼬마들을 공략했다. 멤버들과 카메라를 가지고 나와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한다.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자기들끼리 깔깔대며 어찌나 신나 하는지 그 덕에 우리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그들의 삶은 풍족하지 않았다. 어떤 아이들은 맨발이었고 또 어떤 아이들은 구멍이 뻥 뚫린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하다고 말했다. 내가 살아온 세상은 늘 가진 것만큼만 행복할 수 있다고 가르쳐왔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지만 돌아보면 나 또한 항상 그런 삶 위에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소유와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미소는 티 없이 맑았다. 내가 감히 따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3시간 만에 트럭이 기적적으로 고쳐져 다시 출발! 차만 타고 가다 보니 다들 심심했는지 내기 한판이 벌어졌다. 제프가 구운 쥐 꼬치를 먹으면 린다가 5달러를 주기로 한 것이다. 딜이 성사되자마자 린다는 트럭을 세우고 길가에서 장사 중인 꼬마들에게 쥐 꼬치를 구매했다. 제프는 망설임 없이 꼬치에 끼워진 쥐 한 마리를 통째로 입안에 넣었다. 맛이 어떠냐고 다들 묻자 닭고기 맛이 난다고 태연하게 대답하는 제프. 모두들 이상한 고기에서는 왜 맨날 닭고기 맛이 나는 것이냐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제프는 5달러를 손에 쥐고 내기의 승자가 되었다.
트럭은 저녁 8시쯤 캠프 사이트에 멈춰 섰다. 우리는 빠르게 텐트를 치고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은 조디가 나의 수다 친구가 되어 주었는데 생물학 연구원인 그녀는 영국 버밍엄 근처에 위치한 '발살 커먼 Balsall Common'이라는 동네에 살고 있다고 했다. 지어진지 120년 된 집에서 말이다. 생김새가 마치 방갈로 같아 항상 캠핑하는 기분을 즐길 수 있다는 그녀의 오래된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만큼이나 참 매력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비아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도 예외 없이 5시 기상. '사우스 루왕와 국립공원 South Luangwa National Park'의 모닝 게임 드라이브에 참여하기 위해 사파리 트럭에 몸을 실었다. 초베국립공원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한 무리의 하마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하마들은 초록의 풀들이 가득 떠있는 호수에 몸을 푹 담근 채 가만히 있었는데 수면 위로 살짝 나온 등이 마치 징검다리 같아 보였다. 그래서인지 그 위로 새들이 앉아 쉬었다 가기도 했다.
초원에서 만난 얼룩말들은 뒷모습이 정말 치명적일 만큼 섹시했다. 선명한 흑백의 줄무늬가 아침 햇볕 아래 반짝였고, 멋진 갈기가 바람에 흩날렸다. 와, 이러다 엘라스틴 광고 들어오겠다.
이번 게임 드라이브에서는 특별히 동물들이 접근하지 않는 장소에 트럭을 세우고 간식을 먹는 시간도 가졌다. 따듯한 차 한잔에 가이드 아저씨가 집에서 직접 구워온 맛있는 쿠키를 곁들여 먹으니 꽁꽁 언 몸도 사르르 녹아드는 것 같았다. 잠시였지만 이른 아침의 고요함은 지난 며칠간 바쁘게 달려온 여행에 작은 휴식이 되어 주었다.
아침나절을 게임 드라이브로 알차게 보낸 뒤 캠프 사이트로 돌아와 아까 미처 정리하지 못한 텐트를 접고 점심을 먹었다. 이제 동쪽 끝 국경 도시인 치파타로 가면 잠비아 여행도 끝이 난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 새도 없이 새롭게 만날 말라위에 대한 기대가 샘솟는다. 한 대륙 안에 있으면서도 어찌나 제각각 매력적인지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다. 오늘 설렜지만 내일 또 설렐 수 있는 아프리카 여행! 심장에 안 좋겠지만 그 무한한 설렘의 궤도 안에 영원히 머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