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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 Jun 29. 2019

엄마의 여행

나는 엄마를 모른다


엄마와 단둘이 교토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 여행은 엄마의 생에 첫 해외여행이자 번듯하게 자리 잡은 딸내미가 오랜 시간 마음먹은 효도 여행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 내내 엄마의 반응은 내 기대와 달랐다. 몇 날 며칠을 검색하고 하나하나 후기를 읽으며 고른 료칸에 도착해서 내뱉은 첫마디는 "왜 이렇게 건조하노"였다. 제법 유명한 가게의 초밥을 먹으면서도 어제 먹던 음식을 먹듯 덤덤했다. 엄마 맛있지? 엄마 이쁘지?라고 물으면 응 맛있네. 응 이쁘네.라는 대답이 도돌이표처럼 돌아왔다. 54년 만의 첫 해외여행이 이렇게 덤덤할 수 있을까 하고 되려 내 속이 실망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여행은 줄곧 기대하는 내 물음과 덤덤한 엄마의 대답으로 끝이 났다.

그런데 짧았던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엄마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다. 교토의 유명한 대나무 숲 입구의 작은 가게 앞에 진열되어있던 파란 구슬 바구니 사진이었다. 

그 바구니 앞에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 니 구슬치기 같은 거 해봤나? "

" 아니 "

" 엄마 어릴 때 많이 했는데 이런 거. 여기는 구슬도 이쁘네"


교토에서 본 수많은 아름다운 장면들이 아닌 기억을 더듬어야 떠오르는 작은 구슬 바구니가 엄마의 프로필 사진을 차지한 것은 의외였다. 내가 찍어준 사진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엄마는 그 사진들을 두고 아무도 이곳이 일본인 지조차 모를 이 사진으로 자랑을 대신한 걸까. 


" 엄마 왜 이사진 프로필 했어? "

" 구슬이 너무 이뻐서 "





엄마에겐 그 구슬이, 나에겐 먼지 앉은 병들이 이뻐 보였다





엄마는 엄마의 방식으로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몰랐던 것이다.

내가 여행을 준비하며 기대한 음식과 풍경을 당연히 엄마도 나만큼 좋아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되려 나를 실망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그 속에서 내가 모르는 즐거움을 충분히 얻고 있었음에도. 


가끔 본가에 내려가 엄마와 나란히 누워 구글 포토에 담아놓은 교토 여행의 사진을 넘기다 보면 매번 새로운 엄마의 감상이 쏟아진다. 


"나는 이 라면이 제일 맛있더라"

"라면 아니고 라멘"

"그래 라멘. 사묵은 건 너무 느끼하고, 호텔에서 공짜로 주는 게 제일 입에 맛있더라"


"여기는 간판을 전부 다 숨겨놨잖아"

"그러니까. 찾기 어렵게"

"그래서 거리가 더 기억에 남던데? 엄마는 좋더라"


엄마와의 다음 여행도 단조로울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지 못하는 순간순간 엄마의 감상평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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