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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와피아노 Oct 01. 2023

카누 타다 물에 빠졌어요ㅜㅜ 1

워낙 순식간이라...

토요일 아침.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다. 오늘은 춘천카누사랑 동호회에서 함께 카누 타는 날이다. 의미를 부여한다면 지구의 날이라 선착장 주변 쓰레기도 줍고, 카누잉 하면서 쓰레기도 줍는 날이었다. 한꺼번에 8대의 카누가 움직이니 이순신 장군의 12척도 부럽지 않았다. 바람은 조금 있었지만 카누를 타니 곧 잔잔해졌다. 의암호를 향해 출발~~


그 사이 푸릇해진 산기슭의 풀들과 이름 모를 꽃들을 보는 재미는 카누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각자 흩어졌다 모였다 하면서 카누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 남편은 이 때다 싶어서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나는 살살 패들링 하면서 여유를 만끽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배가 고파지는 걸 보니 점심때가 다 되었나 보다. 선착장으로 돌아가려는데 바람이 쫌 불기 시작했다. 카누는 눈, 비보다 바람에 취약하기 때문에 바람은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저 멀리서 킹카누가 하나, 둘 하면서 가열차게 선착장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우리는 바람 때문에 가고자 하는 방향을 놓치다 다시 찾기를 반복하며 선착장을 향해 계속 패들을 젓고 있었다. 근데 킹카누가 자꾸 우리 앞으로 가까이 오는 것이었다. 킹카누에는 우리 패들링 교육시켜 준 감독님이 계시니 잘 피해 가겠지 하면서 나도 다른 방향으로 틀려고 힘차게 패들링을 했다. 


아, 근데 그게 내 맘대로 방향이 틀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아까보다 더 세게 부는 바람 때문에 카누 머리를 돌리기가 힘에 부쳤다. 그러는 사이에 킹카누가 자꾸만 우리 쪽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닌가. 피해 가겠지, 피해 가겠지 하던 킹카누는 우리 카누 왼쪽 측면에 부딪혔고 눈 깜짝하는 사이에 나는 이미 물속에 빠져 있었다.  위로 떠올랐을 때 내 눈앞에는 카누의 밑바닥이 보였고 눈 안 보이는 남편은 반대편에 떠 있었다.


나는 있는 힘껏 손을 앞으로 뻗으라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키가 큰  남편은 한 번에 킹카누의 지지대를 잡았다. 우리 카누는 뒤집어진 상태로 두고 물속에서 킹카누의 지지대를 잡고 킹카누가 몰고 가는 대로 딸려갔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니 킹카누에 타고 있던 분 중 한 분이 내가 자꾸 남편을 걱정하니까 "남편은 버리고 가요." 하며 농담을 던졌다. 그때 나는 "남편이 눈이 안 보여서요..." 했더니 모두들 놀라며 말을 못 했다. 


강기슭까지 무사히 도착해서 킹카누는 돌아가고 돌짝 위에 우리만 남았다. 젖은 양말 위로 제멋대로 들러붙어있는 풀들과 오른쪽 한 짝만 남아 있는 장화를  보니 갑자기 서러워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강기슭 돌짝에 우리 부부는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서 있었다. 핸드폰은 물에 빠져서 이미 포기 상태였지만 차키가 들어 있는 내 보라색 가방과 남편의 클라리넷 악기 가방을 잃어버린 생각에 그저 망연자실이었다. 남편이 가자는 말에 젖은 청바지보다 더 무거운 마음을 끌고 우리는 킹카누 선착장으로 돌아갔다.


생각보다 물도 안 차고, 춥지 않다 했는데 계속 젖은 상태로 있으니 점점 추워졌다. 친절한 여직원은 갈아입을 옷도 챙겨주고, 치웠던 히터도 가져와 틀어주고 따뜻한 물도 건네주었다. 아까 킹카누에 탔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며 괜찮냐고 물어봤다. 놀러 왔을 텐데 상황이 이래서 죄송하다 했더니 카누 훈련 중인 춘천 사람들이니 괜찮다고 오히려 안심을 시켜줬다. 그러는 사이 카누 감독님과 이사님은 가방을 찾으러 간다며 도구를 챙기고 계셨다. 바깥은 아까보다 바람이 훨씬 세져서 깃발이 완전히 펼쳐진 상태로 펄럭이고 있었다. 


어떡해야 하나.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고 말려야 하는 상황인데 가방을 생각하면 무작정 말릴 수도 없는 상황이고. 이거 정말 난감한 일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부터 챙긴다는 게 속담이 아닌 내 얘기가 될 줄이야. 그때 마침 출입구에서 누군가 헐레벌떡 들어와서 우리에게 소리를 쳤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나는 너무 놀라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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