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운 May 27. 2024

화무십일홍

영화, "대부"를 보며

오랜만에 대부를 봤다. 영화 채널에서 몇 번, 파일로 다운로드하여서 컴퓨터와 휴대폰에서도 몇 번이나 봤던 영화지만 볼 때마다 새롭다. 말론 브랜도와 알 파치노는 정말 대부라고 해도 될만큼 멋진 연기를 펼친다. 특히, 배우의 실제 나이와 영화의 흐름이 일치하는 장기적인 기획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놀랍다. 애초 기획할 때부터 알 파치노를 주인공으로 점찍어 뒀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알 파치노는 정말 명 연기자다. 젊었을 때의 마이클을 시작으로 노년의 대부까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영화를 찍었다. 그러고 보면 주인공보다 영화를 기획한 사람이 더 대단한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같은 사람을 시리즈 영화에 출연시키겠다는 결심을 한 것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동일 인물이 동일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면서 인생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몇 안 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좋아하는 장면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2부에서 마이클(알 파치노)의 아버지인 꼴레오네(로버트 드니로)가 조국인 이탈리아에서 마피아에게 쫓겨 미국으로 건너와 자수성가하는 모습이다. 나는 이 장면이 사실 제일 좋다. 부당하게 돈을 뜯어가는 지역 조폭을 처단하기도 하고, 이웃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면서 대부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린 장면이기 때문이다. 노력과 성실로 지역 사회의 거물로 커 가는 모습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격언이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인 마이클, 알 파치노도 아버지로부터 대부 자리를 물려받은 후 그를 견제하는 세력들을 처단하여 대부의 자리를 공고화한다. 왕권을 강화해서 통치질서를 잡으려는 정치투쟁과도 비슷한 과정을 온몸으로 겪는 마이클의 모습은 잔인하지만 비장하기도 하고,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매력이 있다.


둘째는 노년의 마이클이 나오는 장면이다. 전작보다 카리스마와 남성미가 훨씬 떨어진 마이클의 모습은 배우 알 파치노의 실제 나이가 겹치며 강력한 현실성을 갖는다. 주인공인 마이클이 금전적, 정치적 기반을 가진 모습에 대비되며 젊은 아들, 딸과 조카 등 마이클 이후 세대가 등장하며 세월이 꽤 지났음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마이클은 개인적으로도 당뇨가 있어 때때로 초코바를 먹어야 하는 허약한 모습을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돈이나 권력보다는 건강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나이가 되도록 욕심을 버릴 수 없는 마이클의 인생이 애처로웠다. 조직 간의 싸움에서 딸이 총에 맞아 죽고, 죽은 딸을 안고 울부짖는 마이클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 아닐까 싶다. 결국 마이클도 이탈리아 시골 마을에서 혼자 숨을 거두면서 영화가 끝난다.


 권력은 마약과 같다고 한다. 나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나의 힘을 자각하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더 미세하게 보면 권력이라기보다 지배욕이 맞을 것 같다. 권력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포함하지만, 지배욕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내 만족만 추구하려는 것이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자존감을 확장시키는 것이 지배욕이 아닐까. 권력과 지배욕을 분리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에서 멈출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권력은 행복과는 약간 다른 것 같다. 오히려 권력으로 인한 행복은 불안정하다는 느낌이 든다. 권력이 사라지고 나면 행복도 같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이 정점으로 치달을수록 본인은 희열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주변에서는 불안함을 더 크게 느낀다.


불교에 '삼법인'이라는 교리가 있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 세 가지를 말한다. 이 중 제행무상은 모든 물리적, 심리적, 무형적 현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상은 마음과 생각이 만들어 낸 것으로서 그 현상을 이루는 요소들에 약간의 변화만 있어도 결과는 완전히 바뀔 수 있다. 억지로 비유하자면 민감한 조향장치를 가진 자동차와 비슷하다고 할까. 방향을 조금 조정했을 따름인데 목적지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여기서 인연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인연의 개념을 이해하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인연은 어떤 작은 성취나 현상도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수많은 요소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짐을 말한다. 내가 지금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밥을 해 준 사람, 쌀을 갖다 준 사람, 벼를 키운 사람, 농약을 만든 사람...등등 끝이 없는 관계와 연관의 연속적인 현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수많은 조건들, 인연들로 인해 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잘났다는 생각은 인연의 관점에서 보면 어불성설이다.


대부라는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말이 제행무상이었다. 주인공인 알 파치노는 마이클 콜레오네라는 마피아 조직의 두목으로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권력과 부를 모두 쟁취한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있지만 그것을 발판으로 조직을 확장하고 사업도 번창하게 된다. 그렇지만 갓 결혼한 아내를 차량 폭발로 잃는다. 애지중지 했던 딸도 총을 맞고 죽는다. 마이클 본인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죽는다. 그의 이야기도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여느 사람들 이야기와 같이 영원히 묻혀 버렸을 것인데.

대부 마지막 장면 - 검색 이미지 (bing.com)


작가의 이전글 기다림의 결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