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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운 Jun 03. 2024

만남

기다림

만남은 기다림을 전제로 한다는 말이 있다. 누구를 만나려면 기다려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기다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의 관계여야 만남을 가지는 의미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도 될 것이다.


기다림은 만남을 전제로 하는데 만남이 반갑지 않은 기다림은 어떨까? 그 사람이 나를 확실히 나 주지 않을 을 알면 그 만남을 기다리지도 않을 것인데, 사람 마음이 요동치다 보니 바뀔 수도 있다는 기대를 안 할 수는 없다. 그런데 만일 이런 상황이라면? 그 사람이 나를 만나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유를 나는 아주 잘 안다면? 게다가 내가 그 사람이어도 나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면? 예를 들면 내 조직을 대표해서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경우이다. 내 일이면 절대 안 만나겠지만, 내 일이 아니라 회사의 명운이 달려 있거나, 조직의 이익을 챙겨야 하는 입장이라면 싫어도 가야 한다. '난 원래 그런 체질이 아냐'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긴장이 따르게 마련이다. 첫 만남이면 다른 만남보다 긴장감이 더 크고, 만남의 의미가 바뀌었을 경우, 관계 설정을 다시 한 다음의 만남일 경우는 더할 것이다. 흔히 만나는 친구 사이라면 긴장은 없을 테지만, 친한 사이라고 해도 오랜만에 만나는 경우라면 긴장과 설렘이 생긴다.


만남을 즐겁게 기다릴만한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전화가 오면 무슨 일이 생겼길래라는 생각보다 목소리를 들어서 반가운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식사 약속을 하면 약속시간보다 먼저 나가서 그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싶은 사람, 커피 한 잔 하자는 말이 정겨운 사람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결국 인간관계를 계산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음을 알게 됐다. 솔직히 내가 남에게 바라는 것만큼 내가 남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자신 없다. 그러니 나도 계산적인 인간관계를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쉽지 않은  나이가 되어 버린 게 안타깝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그렇게 구조화돼 버렸다는 것이 더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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