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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운 Jun 04. 2024

같은 문으로 들어가고 다른 문으로 나간다

재판정에서

아주 심각한 잘못을 하지 않으면 재판정이라는 데를 가 볼 일은 없다. 평생 한 번도 가 보지 않고 일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가 볼 줄은 몰랐다. 내 일이 아닌 것도 아니고 내 일인 것도 아니다. 도덕적 책임, 인간의 도리라는 말을 붙이면 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기 일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성인이라는 말을 붙이면 내 일이 아니다.


TV나 영화에서 봤던 재판정은 꽤나 깔끔하고 넓었는데 실제 보니 그렇진 않았다. 다만 입구에서 출입자를 점검하는 분위기부터 엄정하다는 기운은 느껴졌다. 생각보다 재판정에는 사람이 많았다. 피의자가 여러 명이었는데 사건을 맡은 검사가 같으면 같은 시간대에 판결하도록 시간을 배분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판결을 받아야 할 사람이 여러 명인데, 그의 변호사도 있고 가족도 있으니 사건별로 두세 명은 있었을 것이다.


지은 죄가 무거우면 판결도 무거웠다. 간혹 법정에서 구속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나가는 문은 다르다. 판결에 따라서 나가는 문이 달라지는 것이다. 법정 구속되는 경우 법정 내의 다른 문으로 나간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교도소로 바로 갈 것이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들어가는 문은 같았는데 재판이 끝나면 다른 곳에 있겠구나, 같은 문으로 들어갔는데 나오는 문은 다르구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문으로 나와서 다른 문으로 들어간다. 시작은 같지만 과정에 따라 결과도 다르다.  인생에는 관문이 많다. 학교, 직장, 승진, 사업 등등. 각 관문을 어떻게 통과하는지는 인간관계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지적 능력이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재판정에서는 변호사의 변론과 서류가 재판관의 판단을 좌우하지만 인생은 삶의 모든 과정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생에서 뭐가 제일 지배적인 요소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오롯한 내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재판관도 여러 사안을 고려해서 선처해 주기도 하니, 재판조차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은 같다. 변호사도 도움을 주니까.


이런 교훈을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인생이 좀 더 나아졌을 것이니까. 더 아쉬운 것은 젊은 사람이 이걸 얼른 깨달았으면 하는 것이다.


죄를 지은 사람과 아픈 사람은 죄와 아픈 것으로만 평가받는다. 돈이 얼마나 많든, 사회적인 지위가 어떻든 중요하지 않다. 그러고 보면 법원과 병원은 고정관념이 작동하지 않는 곳인가? 아니면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라는 권력을 가진 곳인가?


어쨌든 문에 가기 전에는 똑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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