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 상태와 전투력은 상관관계가 있을까?
https://m.news.zum.com/articles/66812658
육군에서 두발 규정을 완화한다고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이다. 이 논란의 핵심은 간단하다. '군인이 머리카락을 길러도 되는가'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이슈는 세대 간의 입장 차이가 매우 극심할 것이다. 그 어떤 토론과 세미나를 통해서도 결론을 낼 수 없을 것 같다. 군 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긴 게 뭐 대수인가라고 할 것이며, 기성세대와 간부들은 군인이 어떻게 머리카락을 기를 수 있는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과연 머리카락 길이와 군기가 관계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더 나아가 머리카락이 긴 군인이 짧은 군인보다 전투력이 낮을까라는 의문도 생긴다.
아무리 양보해서 생각한다 해도 요즘 용사(요즘은 병사를 '용사'로 부른다)들의 머리카락 길이는 너무 길다. 과거에 군 생활을 했던 분들이 와서 보면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과거에는 이발을 전문으로 하던 '이발병'도 있었다. 이발을 하기 위한 외출이 불가능하니 영내에서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다. 아직도 이발병을 운용하는 부대도 있지만, 요즘은 평일에 외출이 되니 밖에서 이발을 할 수도 있고, 아예 부대에 전문 이발사를 고용해서 이발을 하는 부대도 있으니 이발 문화는 상전벽해라 할 것이다.
군은 군인들에게 왜 머리를 짧게 자르라고 요구했을까? 애초 짧은 머리는 위생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고 한다. 나폴레옹 시절부터 짧은 머리가 군대의 표준이 되었다고 하는데, 청결을 유지하는 데는 긴 머리보다 짧은 것이 당연히 유리하다. 로마 병사들도 짧은 머리를 유지했다고 하는데, 고대 전투는 육박전이 많았으므로 머리가 길면 적에게 잡힐 우려도 있어서 짧은 머리는 전투를 위한 실용적인 방편이었다. 20세기 초 ,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각국은 군사 규정에 짧은 머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제 규정까지 만들어 놓았다. 짧은 머리를 해야 한다는 요구는 이런 역사적인 경험 때문이리라. 그런데 간부와 용사는 적용되는 두발 규정이 다르다. 간부는 '조발'을 할 수 있고, 용사들은 '스포츠'머리를 해야 한다. 짧은 머리가 좋긴 한데, 간부들은 아무래도 머리 손질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용사들보다 충분하기 때문에 이런 규정을 만들었으리라 생각된다. 아무리 눈썰미가 좋아도 머리 스타일만 보고 간부인지 아닌지 구분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머리카락과 전투력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만약 관계가 있다면 상투를 틀었던 과거에는 전투력이 영 형편없었을 것이다.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몽고군은 아마도 파르라니 깎지 않았을까라는 추정을 해 본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 승병의 활약이 대단했었던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간부나 용사나 할 것 없이 군복을 입는 사람은 박박 깎도록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옛 말에 틀린 것이 없다는 말이 있다. 이 시점에서 생각나는 건 주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일을 잘하리라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용모가 지저분하면 신뢰가 떨어진다. 책상이 어지러운 사람에게 일을 시키기가 꺼려지는 건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긴 머리는 잘 손질하면 멋있지만 손이 많이 간다.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그래서 단체 생활을 하는 군인들의 머리카락 길이는 짧은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하다. 그런데 이 정도 이유로 머리카락을 짧게 유지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좀 약하다. 남보다 일찍 일어나서 머리를 정리하겠다는 의지의 사나이가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여성들은 왜 머리를 스포츠로 깎으라고 요구하지 않느냐고 공격하면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단정하게 해라, 책임질 수 있을 만큼만 길러라, 상식적인 범위에서 생각하라는 요구도 어색하다. 단정함의 정의와 범위를 또 정해야 하는 소요가 생길 수 있다.
이 시점에서 미군의 이야기를 해 보자.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감당 못할 정도로 머리카락이 긴 미군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들은 전투를 하는 사람들이라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른다. 아예 민둥머리로 다니는 사람도 많다. 미군도 머리카락 규정을 놓고 논쟁을 벌일까 궁금한데,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다. 전투에 나가려는 군인이 멋진 헤어스타일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우리 군이 두발 규정을 가지고 논의를 한다는 것은 전투와 전쟁이 우리 군인들의 머릿속에 그다지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한다. 훈련이 힘들고, 훈련이 많은 부대에서는 두발 규정을 굳이 적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당장 전투에 나가야 하는 부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부대에서는 두발 규정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생각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논의를 해야 하는 사안, 논의할만한 사안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머리카락을 길러야 하느냐, 두발 규정에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허용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전쟁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한참 수준 낮은 인식이다. 본질과 한참 떨어진 소모적인 논쟁이라는 말이다. 머리카락이 왜 중요한가? 내일 훈련을 해야 하거니 전투를 해야 하는 군인이 머리카락에 신경을 쓸 정신이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왜 이런 논쟁을 하게 됐는지 돌이켜 생각해 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생각해 보면 머리카락이 긴 군인은 군기가 느슨할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군기는 임무를 수행하려는 자발적인 자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