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현대지성, 2022)이란 책에 '빨리 보기도 하나의 장르로 즐기는 시대'가 됐다고 한다. 얼핏 성질 급한 사람의 성깔부리기로 치부될 수 있는데 이마저 엄연한 장르로 인정된다고 한다. ‘빨리 감아 보기‘에 대한 변명은 다음과 같다. 소비자가 선택하는 것은 작품인데, 작품을 맛보는 것은 소비자의 자유이다. 제작자나 영화감독은 생산자로서 소비자가 어떻게 자신의 작품을 소비하든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대학생들을 인터뷰하면 "제작자가 보통 속도를 시청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생산자가 소비자의 니즈에 답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행위에 가깝다"라고 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인생도 빨리 감기로 갈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해 보면 몇 가지 생각해 볼 점이 나온다. 첫째, 인생은 물리적으로 빨리 감기가 불가능하다. 지난 나의 인생을 빨리 감기로 되돌아볼 수는 있겠지만, 남의 인생은 이 마저도 섣불리 해서는 안된다. 힘든 현실에 봉착했다고 해서 빨리 시간을 보낼 수도 없고, 행복한 시절을 무한정 누릴 수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인생은 매 과정을 본인이 오롯이 겪음으로써 성숙함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인생을 대신 살아 주는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두 번째는 이런 이유로 인해 빨리 감기는 대상에 관한 심도 깊은 이해를 불가능하게 한다. 똑같은 일을 겪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소비도 그렇다. 아무 때나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편리한 시대이지만 명절을 앞두고 새 옷을 사던 감성은 사라졌다. 염두에 뒀던 메이커 신발을 사려고 1년을 기다리는 것은 인내심을 요한다. 어른들의 잔소리를 참아내는 것도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성격 차이가 있는 배우자와 사는 것은 참을 수 없을 만큼의 인내가 필요하리라. 이런 인내는 자체가 고통이다.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고통이고, 그걸 견뎌야 하는 고통이다. 더 큰 고통은 기다렸다고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내년에 부모님이 새 옷을 사주시리라는 보장이 없고, 어른의 충고를 따랐지만 바람직한 결과가 안 나올 수 있다. 배우자가 변하기를 기대하는 건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 요원한 일일 수 있다.
그런데 왜 기다리고 참아야 할까? 기대가 없는 것은 절망이다. 젊은이들이 취직을 걱정하는 것은 백 번 타당하나, 취직 이후의 삶이 보장되지 않으면 그들은 취직 걱정 자체, 시도도 하지 않을 것이다. 최저 시급이나 월급이 비슷한데 굳이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합리적이다. 병사의 봉급과 군의 초급 간부의 봉급이 비슷한데 굳이 복무기간이 긴 간부를 지원하지 않는 것도 합리적이다. 이처럼 구조와 여건이 기다리고 참는 행위가 본인에게 손해만 끼친다는 인식을 강화한다. 소비도 마찬가지이다. 어차피 살 거면 지금 사서 즐거운 게 낫다. 나와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하는 어른들은 꼰대로 규정하면 편하다. 같이 지지고 볶을 일은 지금 갈라서면 없다. 그런데 참으라고? 말이 안 된다.
인터넷에서 보이는 삶에는 숨은 면이 많다. 유명한 관광지에서 인증숏을 찍으려면 최소한 운임과 숙박비가 필요하다. 좋은 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숱한 고뇌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말을 잘하려면 그만큼의 훈련이 필요하고, 먹방을 하려 해도 육체적, 정신적 준비가 필요하다. 이런 과정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거의 없다. 고정관념일 수도 있고 사회 구조에 순응하는 별 볼 일 없는 삶일 수 있지만, 자기만의 오롯한 경제력으로 살아가는 능력은 사고 싶은 걸 마음껏 사면서 배양되기 어렵다. 나이 든 어른들은 구태의연하지만 그런 과정을 겪은 이들이 많다. 지지고 볶는 갈등 속에서 피어날지 모르는 삶의 보람도 포기할 수만은 없는 가치이다. 세상이 내 마음과 같이 흘러가지 않음을 배우고, 때론 무섭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기다림 혹은 인내가 주는 의의가 아닐까? 도전과 모험은 인내하려는 자만이 할 수 있다. 인내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가 싫거나 두려워서 지금의 만족만을 추구하는 것은 겁쟁이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또한 마땅히 겪어야 할 과정을 뛰어넘는 것은 부당함을 추구하는 기회주의이다. 조용한 인내, 묵묵한 노력은 언젠가 빛을 본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만들어 가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