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과 표절
나는 문과를 선택한 사람이다. 내가 문과를 선택한 이유는 ‘팔방미인’, '제네럴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이과는 그저 계산이나 하고 기술이나 배우는 사람들의 영역이라며 속으로 깔보면서 문과를 가야 이과를 '다스릴' 수 있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사실 이과적 성향이 더 짙었다. 과학책을 즐겨 읽었고, 웬만한 이과 친구들보다 수학을 잘했다. 게다가 까칠한 성격 탓에 논쟁을 즐기며 논리적으로 따지는 걸 좋아했다. 그럼에도 문과에 발을 들였던 것은 어쩌면 이과적 냉철함을 문과적 언어로 다스려보겠다는 허영심 때문이었다.
최근 이국종 교수가 "입만 터는 문과 놈"이라는 표현으로 논란을 빚었다. 이국종 교수는 그 말 때문에 국방부에 사과까지 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핵심을 찌른 지적이라고 본다. 말이 앞서는 문과의 세계에는 ‘결과 없는 말’만을 늘어놓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문과 연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과가 객관적인 근거 없이 '입만 털어서' 결과를 내는 경우가 있다는 비판은 문과 내부에서 진지하게 성찰할 만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표절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표절은 문과·이과를 가리지 않고 발생할 수 있는 문제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는 "문과가 이과보다 표절의 위험성이 더 높다"는 인식이 있다. 문과의 연구가 이과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영역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특히 문과는 ‘창의적 재구성’이나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지만, 창작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인용과 표절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이과는 실험, 수치, 공리 등 보다 명확하고 재현 가능한 원리에 기반하기 때문에 연구의 출처와 기여도를 문과 연구보다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쉽다.
문과와 이과는 사고방식과 연구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지닌다. 이과는 명확한 답과 공식을 추구한다. 실험 결과는 수치로 표현되고, 증명은 논리적 절차를 통해 객관적으로 검증된다. 따라서 연구의 결과와 그 출처는 분명하게 드러나며, 동일한 실험을 통해 동일한 결과를 재현할 수 있어야 인정받는다. 이과와 같이 정량적이고 구조화된 체계 속에서는 타인의 연구 결과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경우 그 흔적이 비교적 쉽게 드러난다. 때문에 표절의 가능성이나 유혹 자체가 줄어들 수 있으며, 설령 발생하더라도 검증과 판별이 용이하다.
반면 문과는 정해진 정답이 없다. 사상, 철학, 문학, 역사 등 문과의 대부분은 텍스트와 관점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논리적 근거와 자료에 기반하되, 해석의 다양성과 창의적 재구성이 중요시된다. 문제는 바로 이 ‘다양한 해석’이라는 문과의 특성이 때로는 타인의 사유를 자신의 언어로 치환하는 과정을 ‘창작’으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문과적 글쓰기에서는 어휘의 선택과 문장 구성, 관점의 유사성 등에서 미묘한 차이를 드러낼 수 있다. 이로 인해 표절과 독창성을 가르는 경계가 매우 얇다. 출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무의식적인 표절이 되기 십상이다. 또한 문과는 창작을 ‘표현의 문제’로 다루는 경향이 있어, 이미 존재하는 생각을 ‘잘’ 말하면 곧 창작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문과의 이런 환경은 저작권 감수성이 낮은 학자들이 의도하지 않은 표절을 자행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요컨대 문과는 그 특성상 표절을 식별하기 어렵고, 발생 가능성 또한 높다는 구조적 취약점을 안고 있다.
결론적으로 명확한 답과 공식을 바탕으로 한 이과의 연구는 검증 가능성을 통해 표절의 위험을 제어할 수 있는 반면, 문과의 연구는 해석과 표현의 자유로움 속에서 표절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위험이 있다. 따라서 문과의 연구는 저작권에 대한 의식과 인용 원칙에 대한 철저한 교육과 자각이 절실하다. 창작의 자유는 책임을 전제로 한다. 그 책임의 시작은 타인의 생각에 대해 고마움을 올바르게 표하는 일이다. 남의 글을 인용하거나, 그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면, 당연히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 이 고마움의 표현이 바로 인용할 때 출처를 표시하는 것이고, 그것을 지키지 않을 때 법은 '표절'이라는 이름으로 단죄한다. 표절은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며, 저작권은 단지 법적인 장치가 아니라, 창작자 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제도로서 존중되어야 한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지식은 없다. 하지만 그 지식을 엮는 방식과 해석하는 틀은 무수히 많다. 문과는 바로 그 틀을 만드는 학문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문과는 저작권과 표절 문제에 있어 스스로를 더 엄격히 다스려야 한다. 입만 터는 문과 놈이 아니라, 입으로 세상을 설득하고 변화시키는 문과인이 되기 위해서는 말의 무게만큼, 내가 도움받은 출처의 무게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