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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Jul 15. 2022

나는 나르시시스트의 아내입니다. 01

나르시시스트와의 연애


살면서 공감 능력은 떨어지나 본인의 감정은 내세우며 어디서나 주목받길 원하고 상대방을 무시하기 일쑤인 사람을 만나본 적 있을 것이다. 단정할 순 없지만 대개 그런 사람들을 나르시시스트, 자기애성 성격장애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라는 미소년이며 이 소년은 저주를 받아 샘에 비친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어 결국 죽게 되며 그 자리에는 수선화가 자란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 사랑’이다.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파국을 맞은 나르키소스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을 정말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재된 불안과 공포, 열등감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 탓을 하기 때문에 본인의 문제를 파악하기 어려워 치료도 힘들다. 결국에는 그들 옆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점점 죽어간다. 나는 나르시시스트 남편을 둔 아내이며 결혼 후부터 우울, 불안, 좌절감으로 자살충동이 들어 정신과를 다니고 있는 환자이다. 매일 영혼이 죽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집은 나에게 지옥이었다.


그런 남편과 왜 결혼했느냐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들은 목표가 있으면 자신을 꾸미고 거짓말하고 남을 속이는 게 능한 사람이다. 나의 남편은 운전할 때도 화 한번 내지 않고 항상 아이처럼 들떠있으며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궁금해하고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연락에 인색한 나에게 꾸준히 연락 오며 잊어버린 메시지에도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다정했다. 똑똑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간 그는 겸손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매력 있는 사람과 몇 번의 데이트를 하고 마음이 안 뺏길 사람이 있을까. 정신적인 교감이 중요한 나에겐 그와의 연애가 너무 기대되고 설레었다.


내가 그에게 푹 빠져 진지해지기 시작하자 점점 나에게 불만을 꺼내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무뚝뚝하고 표현이 없으며 마치 남자를 만나는 것 같다고 했다. 너무 무심했나 싶어 대화로 말을 꺼내면 자신의 의견과 다를 때마다 욱 하고 기분 나빠하며 대화를 회피했다. 그는 자기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며 족쇄를 차기 싫으니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선포하였는데 연애를 시작해놓고 본인은 그 어떠한 것도 맞춰줄 수 없다니. 당황스럽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무언가 이상하다 느끼기도 전에 그는 주변에 나와의 관계를 알리며 나를 더 궁지로 몰았다. 바보처럼 주변을 의식하며 아직 나는 그를 좋아하니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 보자고 생각했다.


그가 나르시시스트임을 알려 줬던 단서들


1.  의미 없는 거짓말을 자주 한다.

2. 습관적으로 ‘감히’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3. 본인의 잘못이 있어도 기분 나빠하는 상대에게 초점을 맞춰 예민한 사람이라고 한다.

4. 대화를 자신에 대한 공격이며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5. 자신의 능력으로 경제적인 부분을 지원해주겠는 약속을 한다.


지금에서야 눈에 보이는 단서들이지만 그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의미 없는 거짓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자신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보다 상대방이 원하는 말을 생각하고 그때그때 대답을 바꾼다. 묻지도 않았는데 가보거나 해봤던 일을 처음 해본다며 설레어하는 듯이 행동한다. 이런 거짓말은 당시엔 진짜인 줄 믿고 넘어갔는데 오래 지내보니 거짓말이 대부분이었고 환심 사기 위해 그 순간 아무 의미 없이 하는 말이라 본인도 기억하지 못한다. 의아하여 저번에는 해본 적 없다고 하지 않았냐 물으면 왜 따지냐며 자기는 그런 말 한적 없다고 되려 화낸다. 이렇게 나를 예민한 사람을 만들었다.


다잡은 물고기가 되어서는 나에게도 ‘감히’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연애 때에는 나에겐 쓰지 않고 타인과 트러블이 있을 때면 감히 나에게 이렇게 한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똑같은 사람인데 저런 단어를 사용하는 게 낯설었지만 타인이 무례하게 행동하여 기분이 상하여 한 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옳고 그름이 없는 문제에 나의 생각을 말할 때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면 공격이라고 받아들였다. 나의 생각을 논리 없이 비난하고 자신을 공격한다며 꼭 이길 거라 말했다. 나는 대화를 통해 각자의 가치관과 생각을 존중하길 바랬는데 왜 내가 공격한다고 생각할까 싶었고 마치 내가 자꾸 싸움을 만드는 것 같이 느껴졌다.


기분이 좋을 때면 표현을 극단적으로도 잘하였는데 한 번은 경제적인 부분은 자기가 책임질 테니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이라 표현했지만 본인이 봤을 때 내가 잘할 것 같은 어느 부분에 대해 말했다. 내가 그 일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조차 그의 판단이었으며 원래 독립적인 성격이 강했던 나는 바로 거절했다. 그저 연인일 뿐인데 경제적인 문제가 얽히기 싫었고 이 빌미로 내가 그에게 붙어 있고 싶지 않았다. 진심으로 사랑했고 오히려 내가 그의 버팀목이 되고 싶었기에. 부담스러운 제안이었으며 사실상 말뿐인 허상이기도 하지 않은가. 저런 말에 휘둘려 내가 당장 일을 그만두는 것도 웃겼다. 이 부분은 아직도 정말 잘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에게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내가 생각해보고 할게. 내가 잘할 수 있도록 응원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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