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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hyeon Sep 27. 2017

소원면 파도리, 그리고 '멍집'

그 이름도 예쁜

 우리에게 여행은 숨통이다. 단조로운 일상에 지쳐갈 때쯤이면 어김없이 떠나고 싶어 진다. 우린 그중에서도 특히 바다여행을 가장 사랑한다. 탁 트인 곳, 수평선 너머, 평소 건물 틈으로만 봐야 했던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 어느 바다로 떠날까?

 

 그 결정은 무척 수월했다. 우리 집 강아지들, 애플이, 망고 덕분이었다. 이번 여행은 꼭 아이들과 함께 하고자 했다. 언제든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사람도 이렇게 지쳐가는데, 사람 없이는 집 밖으로 나설 수 없는 반려견들은 얼마나 더 답답할까. 축 늘어져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더는 미룰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눈에 띈 게 애견 민박 '멍집'이었다. 소원면 파도리, 바다 근처 위치한 이 곳은 반려견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잔디밭이 있고, 한적한 산등성이에 위치해 아이들이 짖어도 눈치 볼 필요 없는 애견 동반 숙소였다. 이런 멍집에다가, 소원면 파도리라는 아름다운 지명이 마음을 이끌었다.


멍집 play ground에서 뛰노는 애플 ⓒjuhyeon

* 애견 민박 '멍집'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mungzip


 멍집 입실시간은 3시. 점심까지 먹고 느지막이 출발해 3시간여를 달려 도착했다. 소원면 파도리라는 이름이 생소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파도리 해변은 주말임에도 한적하다. 신나게 들어서려는데 애완동물 출입금지 표지판이 눈에 띈다. 발길을 돌려 근방 거친 바위 투성이 해변으로 비켜났다. 땅이 거칠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다닐 수는 없지만,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며 내는 시원한 소리에 아쉬움을 달래 본다. 파도가 치는 곳은 수두룩한데, 왜 하필 여기가 '파도리'일까 생각해본다. 이곳은 모래가 아닌 자갈해변이다. 조용한 마을에 파도와 자갈이 이루는 소리가 퍼진다. 그 음악은 밤이면 더 깊다.


해변에서 우리 ⓒjuhyeon


 바닥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걷노라면, 물에 젖은 자갈들이 햇빛에 반짝이며 내는 빛깔들이 아름답다. 개중엔 사람이 함부로 버리고 간 유리병 쓰레기가 오랜 세월 파도에 깎여 자갈이 된 경우도 있다. 투명한 초록 자갈(아마도 소주병이었으리라)을 보며 새삼 자연의 자정능력에 감탄한다.


파도리의 노을 ⓒjuhyeon


 3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곳. 당일치기면 충분한데도 굳이 애견 민박에서 자고자 한 이유가 있다. 노을을 보기 위해서다. 어플로 미리 일몰 시간을 확인해두었다. 멍집에서 쉬다 나와보니 노을이 만든 하늘빛 그림이 펼쳐져 있다. 시야를 방해하는 건물도, 벽도 없다.


노을 앞 우리 ⓒjuhyeon


 우린 그렇게 해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머물렀다. 노을을 보면 슬퍼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들었다. 지는 해, '진다'는 표현이 전하는 쓸쓸함 때문일까 추측해본다. 나는 조금 다르게 느낀다. 나에게 노을은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늘 집에 들어가 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누군가에겐 할 일도 고민도 잠시 내일로 미루고 침대에 편안히 눕기만 하면 되는 시간. 또 누군가에겐 피로한 인간관계가 끝나고 비로소 혼자 남을 수 있는 시간. 그래서 나는 노을이 좋다. 가장 아름답고, 뒤탈이 없어 마음 놓는 한때.


파도리의 밤 ⓒjuhyeon


 이윽고 해가 완전히 넘어갔다. 소원면 파도리. 그 이름도 예쁜 곳. 그곳에서 맞는 고요한 밤. 파도가 치고 풀벌레가 우는 밤. 그 이름이 왜 파도리인지 비로소 알게 되는 밤. 우리는 아무 말도 필요 없다.


* 영상으로 보는 파도리 여행기

https://youtu.be/Par5ryatW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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