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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루 Oct 20. 2016

글의 주박으로부터 벗어나며

공개적 글쓰기가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라 생각하던 과거의 나로부터

  어떤 '순간'이란 것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 따라 각자의 삶은 꽤나 다른 모습으로 전개된다. 이를테면 성적이 짜릿하게 오른 결과를 마주하는 순간, 책 속에서 삶의 지각을 뒤흔든 구절을 만나게 된 순간, 친구 셋을 제치고 정확한 각도의 바나나킥으로 골을 터뜨린 순간. 그런 순간들이 있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계속해나갈 최소한의 원동력을 얻게 된다. 계속해서 공부해볼 이유, 계속해서 책을 읽어나갈 이유, 계속해서 바나나킥을 연마할 이유, 혹은 계속해서 축구 경기에 나갈 이유. 이건 그런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곧잘 글을 썼고, 쓰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으며, 좀처럼 하루에 생각을 비우는 시간이 없을만큼 무언가를 늘 생각하고 있는 꼬마였고 또 그런 어른으로 자라났지만, 나의 생각과 나의 글이 몇 개의 박스를 채워나가고 컴퓨터 폴더와 스마트폰 메모장에 빼곡히 쌓일 동안에도 어지간히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은 없었다.


  내 글을 누군가가 본다는 상상만으로도 눈이 가려진 채 차렷 자세의 알몸으로 꼿꼿하게 서있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나는 내 연인들에게조차도 나의 몸을 보여주는 것이 나의 글을 보여주는 것보다 빠를 정도였다. 나에게는 그까짓 몸을 숨기는 것보다 나의 뇌와 심장 사이 어딘가쯤에 있는 마음을 숨기는 것이 훨씬 묵직한 사항이었다.


  그렇게 꽁꽁 싸고돌기를 십 수년, '결심'이란 것은, 아니면 다른 말로 '순간'이란 것은 정말이지 의외로 그렇지만 언제나처럼 갑자기 찾아왔다.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최소한의 원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여기에 이렇게 첫번째 글로서, 또 초심으로서 적어두고자 한다. (사실 이 구구절절한 회상조차도 이 책의 구절을 적기 위해 쓴 것이나 다름없다.)


자기 진술을 하는 것은 내가 고정된 주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존재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자기 진술하기를 꺼리는데, 그것은, 내 생각에는, 그 진술을 통해 자신이 고정되어 버릴지 모른다는 공포심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을 규정해버리면 더 이상 신비스럽지도 않을 것이고 스스로 그 말에 갇혀 버릴 것이라는 생각들을 한다. 내게 있어 자기 진술은 자기 성찰이자 자기 해방적인 행위이다. 나를 말하는 것은 내가 변하기 때문이고, 변하고 싶기 때문이다. 말하고 난 후의 나는 그 전의 나와 다르다. 글을 쓰고 나면 나는 이미 그 글을 쓴 사람으로부터 조금은 달라져있다. 그래서 그 글은 내 허물이며 분신이면서 또 나와는 이제 무관하다.

         - 조한혜정, "글 읽기와 삶 읽기 2" 중에서


  나는 이 글을 읽고 그동안 내가 글을 공개해야한다고 생각할 적마다 알몸이 되는 것만 같았던 이유가 공포심 때문이었음을 알았다. 남을 향한 공포가 아닌 나 자신이 구속되고 속박될까봐, 내가 쓴 글에 내가 갇힐까봐 가졌던 막연한 두려움과 혼돈. 이 글은 나의 생각, 나의 마음을 적은 것이니 나는 (내 글을 읽게 될) 저 사람에게 이제 남김없이 읽히겠구나. 더 이상 ㅇㅇㅇ이 아닌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글을 적는 사람'이 되어 저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는 어떤 방식으로 판단되고 규정되고 정의내려지겠구나, 어떤 류의 글을 적은 것을 들키는 순간 분명 어떠한 편견으로 심사받고 뿌리박히겠구나, 하는 공포였다. 나는 이렇게나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데 과거에게 또 나 자신에게 발목잡히면 어쩌나 하는, 과거의 나는 언제나 현재의 나보다 열등하다는 오만한 전제를 깔은 생각으로 공개적 글쓰기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의 마지막 세 줄이 그동안의 나로부터 나를 완전히 해방시켜주었다. 나에게도 삶의 어느 '순간'이 찾아오게 된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제목에 '글의 주박'이란 표현을 적은 까닭이요, 앞에서 그렇게 순간 이야기를 절절하게 풀어낸 까닭이다. 더 이상 자기 진술의 글은 나에게 주박도 감옥도 아니며 다만 자기 표현의 수단이고 글을 쓰기 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벗은 허물이다. 그동안의 글 은닉이 이제껏 내가 생각해왔던 것처럼 완전한 100%의 자기의지가 아니라 남에게 재단될까 무서웠다는 '남'(의 시선)이 우선시되는 이유 때문이었다는 것이 새삼 소소한 충격이었다. 정작 나는 소실점이었던 것이다. 출발이 나인 것은 맞지만 아주 멀리에 있고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


  그 소소한 충격이 나의 글 은닉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가끔씩 생각하곤 하던 리뷰를 써볼까, 블로그를 운영해볼까, 브런치의 작가로 등단해볼까 하던 20%의 하고 싶어와 80%의 내가 무슨으로 끝나던 결심에 이렇게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으니. 글로 나를 만나게 될, 글로 나와 맺어지게 될 관계가 두려워 시작하지 못하던 나는 더 이상 없다.


  과거의 글을 쓴 것도 분명 나다. 어떤 글을 적어왔던 간에 나는 그 때의 나를 좋아하며 또 더없이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혹 과거의 글이 나에게 주박이나 굴레가 되더라도 나는 그때 당시의 나를 원망하거나 후회할 수는 없다. (글쟁이의 강인함이란 거기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하나 분명한 것은, 하나의 글에서 손을 떼는 순간 나는 분명 그 글을 쓸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끊임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이유이며 확신이다.


  나는 지금까지처럼 나의 생각에 책임지고 글을 써낼 것이고, 무책임하게 이곳에 그 글들을 공개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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