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디 해라"는 말은 초등학생 때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아, 경상도 사투리로 "똑바로 하라"는 뜻입니다. '신발 끈을 단디 매라', '옷을 단디 챙겨라'는 용례입니다. 어린 시절 들었던 말은 잊히기 마련인데, 이 말만은 기억이 납니다. 중학생이던 15년 전, 한 농구 경기 때문입니다.
딴 길로 잠깐 새자면, 농구를 가장 좋아합니다. 농구를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농구만큼 사회적인 동시에 개인적인 스포츠가 있을까요. 농구를 처음 접한 건, 중학교 1학년 때. 초등학교에서는 축구만 했습니다. 중학교에 왔더니 운동장 공사로 축구공을 3년 동안 못 차게 됐죠. 곧바로 코트로 향해서 농구공을 만졌습니다. 처음 만진 농구공의 질감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손에서 빠질 것 같으면서도 삭삭 감기는 느낌.
농구에 금방 빠졌습니다. 점심시간에 잠깐, 방과 후에 잠깐. 평일의 루틴, 일정한 습관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유심히 이를 지켜본 체육 선생님은 함께 농구를 하던 저 포함 다섯 명을 학교 농구부의 연습 상대로 초대했습니다. 그때의 정확한 말은 기억에 나지 않지만 그 장면만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들은 사진처럼 찍히는 걸까요. 연습은 재밌고도 어려웠습니다. 한 번은 이겨볼 법도 한데 말이죠.
'신라중학교 B팀'으로 대회에 나가게 된 건 이후 3개월 뒤입니다. 후보 선수도 한 명 없는 '풋내기 팀'이었죠. 농구는 다섯 명이 코트에 나가야 하는데, 저희는 다섯 뿐이었으니까요. (왜 대회를 나가게 됐을까요, 당시 체육 선생님의 이름도 얼굴도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물어보고 싶습니다) 더 놀라운 건, 첫 상대는 전년도 대회 우승팀이었습니다. 그때는 <슬램덩크> 도 몰랐습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는 풋내기 강백호가 이끄는 초보 북산고가 부동의 우승후보 산왕 공고를 만나 경이로운 승리를 거두는 이야기입니다.
대회 당일입니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긴장했던 것 같습니다. 이때, 누가 한 말이 귀에 꽂혔습니다. "지더라도 단디 해라" 15년 전 기억난다던 말입니다. 우리는 '단디' 했습니다. 상대 코트 앞에서 공을 끊어냈고, 의외의 3점 슛을 터뜨렸습니다. 마지막 점수도 기억납니다. 49:48, 한 점 뒤지고 있을 때 우리는 버저비터를 상대 골밑에서 터뜨렸습니다. 이 장면도 영화의 마지막 컷처럼 저장됐습니다.
어려운 일을 마주하면 이 순간을 되감습니다. 자기 계발서는 좋아하진 않지만, 사소한 성공의 경험은 좋아합니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부작용도 있습니다. 마치 복권처럼, 다시 신이 찾아와 선물을 줄 것처럼, 방심과 안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 사실도 있습니다. 겁을 먹거나, '단디'할 거냐는 오롯이 저의 선택이라는 것. 앞발에 힘을 실어 달려갈 거냐, 뒷발에 무게를 줘서 물러설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