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남자랑 소개팅 안 해"

'He did his best'

by 글월 문

"경상도 남자랑은 소개팅 안 한다"


매주 소개팅을 해도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다며 넋두리를 하던 친구의 말. 아무리 급해도 경상도 남자는 마다한다는 뜻었습니다. 왜까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지역 차별을 하냐" 차근차근히 물어보는 대신 채근했습니다. (이런 모습 때문일까요) 웃으며 헤어졌지만 찝찝함이 남았습니다. 비슷한 종류의 말을 최근 벌써 세 번 들었습니다. '경상도 남자'를 둘러싼 세간의 평은 억울한 누명일까요, 경험적 진리일까요.


가부-장 (家父長). 경상도 남자가 가장 자주 번역되는 용어니다. 남성 연장자가 가정을 이끌어내는 체계를 뜻하죠. 모든 경상도 남자를 '가부장'이라고 표현할 수는 아마 없겠죠. 다만 대체로 그렇다고 하면요, 글쎄요. 선뜻 아니라고 입을 떼기가 민망해집니다. 일단 어머니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 고향이 경상도인 친한 친구들의 집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 경상도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변명해봅니다. 전 세계적으로 '남성 연장자'가 가정을 이끄는 건 역사적이었습니다. 여성 참정권이 미국 상하원을 모두 통과한 건 1920년. 불과 102년 전입니다.


그런데, '가부장'은 왜 미국 남자와 서울 남자를 보고 생각나지 않고, 경상도 남자의 얼굴에는 덕지덕지 묻어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경상도 남자는 표현을 원래 잘 안 하나요'란 물음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죠. 사실 '경상도 아버지'들 때문이라고 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 들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늘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수영을 갑니다. 돌아와서는 가지런히 출근 복장을 정리하고, 주말에는 청소를 빠지지 않습니다. 일상의 일관적인 규칙을 중시한 아버지. 어머니와 아들들에게도 그런 삶을 따라와 주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힘들었을 겁니다. 잔소리는 많고 애정 표현은 적은 아버지습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를 살짝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조금 더 살가웠으면 했습니다. 아버지 고집대로 하지 않길 바랐습니다. 디즈니 마블 영화 <엔드게임>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이언맨인 토니 스타크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인 1970년 뉴저지에 있는 '쉴드 본부'로 캡틴 아메리카와 돌아가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토니는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를 마주합니다. 하워드는 아내(토니의 어머니)가 임신했다고 말합니다. 고민도 털어놓죠. 아빠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토니는 생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에게 "He did his best(최선을 다하셨다)"고 위로합니다.


'가부장 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 '그만 됐다'는 핑계를 대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할머니에게 매일 안부 전화를 빼먹지 않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할아버지보다는 조금 덜 가부장적이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자주 깜빡하는 못난 제가 아버지보다는 조금 덜 가부장적이라면, 흘러가는 시간처럼 진한 것이 옅어지기도 한다면, '경상도 남자'에게 섣부른 누명을 씌우기보다 기회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버지가 최선을 다한 것을 존경하되, 조금 부족한 곳의 나머지는 제가 채울 수 있길.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모든 뒤따라가는 자들의 권리이자 책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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