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이라노"

'No pain, No gain'

by 글월 문

마음이 아리고 몽글몽글해졌습니다. 처음 느낀 이 감정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게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남자 중학교에서는 여자를 만날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죠. 고등학교 입학 전에 다닌 종합 학원에서 여자인 친구들을 조금씩 만날 수 있었지만, 입시 경쟁에 쫓겨 시험지만 바라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경상도 남자라서 숫기가 없는 건가' 이런 생각에 빠질 정도로 3년 동안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습니다. 전교생은 150명 남짓, 다섯 반밖에 없는 학교였습니다. 다른 반이어도 대충 다들 아는 사이였고, 그녀와는 3년 가운데 2년은 같은 반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바보처럼 흔한 안부 인사를 머뭇거렸습니다. 그때 MBTI를 했다면, 지금도 그렇듯 친화력이 좋다는 'ESFJ'였을 텐데 말이죠. 화도 담아놓지 않고 풀어야 하듯, 사랑도 재지 않고 꺼내야 합니다. 당연하고도 어려운 이야기를 고3 졸업여행에서 깨우쳤습니다.


졸업 여행에서 뜬금없는 '노래 고백'을 해버린 겁니다. SG워너비의 '라라라'에 꽃까지 건네고 말았습니다. 수능을 세 번 치고 지금은 포항의 공보의로 일하고 있는 동기와 함께였습니다. 만행을 저지르고 난 정치인이 사과를 머뭇거리는 데 동의하진 않지만 왜 저러지는 지는 경험을 통해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믿고 싶지 않은 거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꽃을 주고도, 마음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용기 있는 다른 친구와 함께 이야기하러 가더군요.


"와 이라노. 방에 들어가서 놀자" 가 꼬드겼는지, 저를 꼬드겼는지 노래를 함께 부른 동기의 말 한마디에 사태는 이렇게 일단락됐습니다. '사람이 변하나'는 질문은 '세상이 바뀔까'를 향한 회의처럼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변화와 혁신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환영받는 구호지만, 손에 가장 잡히지 않는 언어이기도 하죠. 제가 경험했던 세상은 '내력'보다는 강한 '외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무시할 수 없는 외력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변했습니다.


물론 좋은 방향의 변화를 의미하는지는 앞으로의 일이겠죠. 다만 '숫기 없는 남자'는 그 이후로 조금 달라졌습니다. 술을 마실 때 빼고는 얼굴이 빨개지지도 않고, 표현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망설일 때마다 '와 이라노. 떨지 말자'를 속으로 외칩니다. 그래도 잘 안 될 때면 12년 전, 잊지 못할 외력을 기억합니다. 동기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저도 노래 부른 모습을 지워버렸지만 '와 이라노'는 귀에 맴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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