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률사'를 아시나요. 문자 그대로 '흰 젖이 뿌려졌던 절'입니다. 조금 섬뜩하죠. 그런데 알고 보면, 신비로운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506년, 당시 26살이던 신라의 젊은 관료 이차돈. 신라의 수도였던 고향 경주에는 다보탑과 석가탑, 불국사와 석굴암 등 불교 문화재가 많습니다. 하지만 1500년 전, 이차돈이 관직에 들어설 때만 해도 신라인들은 '민간 신앙'을 믿었고, 낯선 불상이 상징하는 불교를 거부했습니다.
이차돈은 남몰래 불교를 믿어왔습니다. 불교를 신라의 국교로 정했다는 법흥왕은 이차돈의 목을 베었습니다. 반전이 있습니다. 이차돈이 바라고 원한 것이었습니다. 신라 왕실은 귀족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불교의 권위를 빌어 권력을 강화하려고 했습니다. 왕실의 이익과 이차돈은 신념이 만났고, 스물여섯, 청년 관료는 불교를 위해 몸을 바치기로 했습니다. 법흥왕은 이차돈의 목을 베라 지시했고, 이차돈의 순교에 부처님이 감응해 '흰 젖' 흘러나왔다는 것. 불교를 공인한 건 법흥왕이 아닌 이차돈이었습니다.
"뭐라 해도 제 목숨만큼 버리기 어려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저녁에 죽어 커다란 가르침이 아침에 행해지면, 부처님의 날이 다시 설 것이요, 임금께서 길이 평안하시리다.” <삼국유사>
'백률사'는 나고 자란 아파트 바로 뒤편에 있습니다. 주말마다 어머니와 함께 야트막한 동산에 있는 백률사를 향해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서울에 올라와 "경주에서 왔습니다" 이 말을 참 많이 했습니다. 사투리가 새어 나올 때마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을 때마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경주를 이야기하며 떠올릴 때마다 자연스레 백률사가 떠오릅니다. 목이 잘렸는지, 몸이 베였는지 모르지만 흰 젓을 흘리며 쓰러지는 상상 속에서 이차돈이 죽습니다.
가족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내던지고, 친구를 살리기 위해 팔을 뻗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믿음과 가치를 위한 희생을 할 수 있을까요. 상상 속 이차돈을 떠올리면, 종종 이런 생각에 빠집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크고 작은 꿈을 향해 달려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진학과 취업은 삶의 다음 땅을 내딛기 위한 걸음이었을 뿐 꿈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대륙의 정복자, 위대한 사상가나 선한 성직자처럼 하늘 위의 것을 좇아본 적은 없습니다. 보이는 것을 믿었고, 보이지 않는 것을 경계해왔습니다.
이차돈의 순교가 보이지 않는 가치를 땅에 뿌리기 위한 시도였을지라도, 실은 그 일이 성사된 이유는 불교를 내세워 왕권을 강화하고 싶었던 법흥왕의 이기심이었던 것처럼. 옷깃이라도 스쳐야 사랑이 이뤄지고, 평화는 정상의 악수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경주에서 온 저는 현실에 발을 붙이고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