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 시절, 처음 쓴 기사의 가장 첫 문장입니다. 흔한 날씨 기사였습니다. 그런데 선배들이 모여있는 회의실에 들어간 순간, 전혀 다른 기사가 되었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다들 저를 보고 웃었습니다. 그 때 하늘엔 기사와 달리 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유는 '사투리' 때문입니다. 문장의 첫 음이 올라가고, 또 내려가는 경상도 사투리. 부끄러운 상황을 마주할 때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반응을 보이곤 하죠. 하나는 순응, 다른 하나는 반항. 그들의 웃음을 듣고 '뭐야, 왜 웃어'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속은 쓰렸습니다. 하지만 택한 건 웃음이었습니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수습의 '수'는 '짐승 수'라고 전직 기자인 배우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순응은 강한 짐승을 마주한 약한 짐승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경상도 사투리'가 부끄럽다고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사투리'를 검색했을 때 가장 처음 뜨는 예문이 '경상도 사투리'란 걸 안 것도 이 순간입니다. 중학교까지는 경주, 고등학교도 구미에서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말투를 객관화할 시간이 없었습니다.대학 시절에도 마찬가지. 사투리 때문에 부끄러웠다면, 속으로 매력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서였습니다. 성별과 인종, 피부색처럼 타고난 것 중의 하나인 것을 부정당하는 느낌. 사투리 하나 가지고 뭘 그래. 스스로 위로했지만 불편한 감정을 지우기 힘들었습니다.
혼란스러운 감정과 마주한 순간, 원인과 관련된 기억을 더듬어보곤 합니다. 이를테면, '경상도 사투리'와 관련한 추억을 소환해보는 식입니다. 신기하다. 촌스럽다. 귀엽다. 정겹다. (멋있다도 있었습니다) 사투리를 쓸 때 들었던 반응입니다. 되돌아보니, 회사에서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면 촌스러운 사투리는 꽤 환영받고 있었습니다. 자기 합리화일까요. 달라서 싫을 수도 있지만, 달라서 알아가고 싶기도 하니까요. 사투리를 버리지 않고 품기로 했습니다.
스스로도 '그깟 사투리'라고 여기고 싶기도 합니다. 그깟 사투리 뭐라고 지키기까지 하나. 맞는 말입니다. 고집일까요. 소신일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세상에는 여러 모습의 '그깟 사투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깟 바둑 한 판 이기기 위해 수백 번 검은 돌, 흰 돌을 만지작 거리고, 그깟 농구 한 판 이기기 위해 수만 번의 슛을 쏩니다. 사소한 것이 타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는 말을 믿습니다. 이 믿음은 나에게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밥은 묵고 다니나"
익숙했던 사투리가 처음 낯설어지고 미워진 날, 가장 먼저 위로해줬던 건 다름 아닌 어머니의 사투리였습니다. 경주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는 늘 '밥은 묵었나'라고 안부를 묻습니다. 직업상 특정한 상황에서 표준어를 반드시 구사해야 하지만,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고 그저 나오는 대로 저의 언어를 쓰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