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iss you'
납득되지 않는 상태에서 배려가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건, 누구 하나는 결국 지치게 되어 있어요. <웹툰 N번째 연애 中>
용산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순간은 흔한 로맨스 영화의 한 컷처럼 남았다. 20분 정도 홀로 기다리고 있던 때, 웃으며 주차할 곳이 없어서 늦었다는 말에 입꼬리가 올라가고 말았다. 열심히 서울말을 쓰고 있는데, 경상도에 왔냐고 훅 들어와 시무룩하게 만들다가도, 눈이 초승달처럼 되는 미소를 어느새 따라 했다. 서서히 서로만 아는 축약된 언어를 만들었고, 남들에겐 외계어지만 둘의 세계에선 어디서든 통하는 공용어였다.
웃음과 눈물로 쌓아오던 둘만의 세계는 말 한 마디로 무너졌다. 금융 시장의 붕괴는 미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질 때 생기고, 제국의 몰락은 정치 엘리트를 향한 불신이 만든다. 헤어질 세계 또한 그랬다. 약속된 언어는 풀어져서 어디로 향할지 모르게 부유했고 그래서인지 입 밖으로 가지도, 다시 돌아오지도 않았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연애와 이별에 법칙이 있다면 어떨까 중얼거리게 된 것도 이후였다.
코트를 오래 밟은 농구 선수는 경기의 흐름을 잘 읽어내고, 타석에 많이 선 선수는 한 방은 아니어도 한 걸음 베이스를 향해 나가는 방법을 신인보다 더 잘 안다. 정확한 수치가 나오는 법칙은 모른다고 해도, 여기서 살아가는 방법을 뇌가 본능적으로 익힌 거다. 그런데, 생존의 영역에선 누구보다 똑똑한 뇌도 할 때마다 헷갈리는 게 연애다. 연애는 단 한 번도 같은 높이의 농구대, 같은 크기의 야구공인 적이 없어서다.
연애의 법칙은 없을지 몰라도, 최소한의 정석은 있다고 믿는다. 바둑을 보면, 이창호나 이세돌 같은 프로 바둑 기사들도 입문자와 같이 바둑판의 양 끝 점 주변부터 돌을 놓기 시작한다. 중앙부터 두는 법은 없다. 약 3000년의 바둑의 역사 끝에 이렇게 시작하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이 모인 거다. 바둑과는 달리 이토록 다른 점에 끌리고 그토록 비슷한 점에 홀리는 예측할 수 없는 사랑이어도 말이다.
이해가 잘 안 되어도, 일단은 배려하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이 말에는 함정이 있다. 이해를 해보려고 최선을 다했는가. 자신이 없다. 때로는 피하기도 했고, 넘어가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같이 있는 동안은 웃고 행복하기만 하면 된 거 아닌가 합리화했다. 그건 바둑판의 중앙부터 돌을 던지는 무리한 수였던 것 같다. 바둑판의 주변부터 돌을 두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해를 하는 납득 가능한 과정이 필요했다.
이별을 한 후에 이렇게 성장한다고 다독여보지만, 그놈의 성장 따위 이제 지겹다. 이제는 못 보는 그 미소를 한 번만 더 봤으면 하고 수없이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