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서울에 온 건 스무 살 때입니다. 말이나 표정이 많지 않아 정답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참 많은 '척'을 해야 했습니다.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을 했고, 섭섭해도 섭섭하지 않은 척을 했습니다. 사투리를 써도 사투리를 쓰지 않은 척도 했던 것 같습니다. 척은 스스로에게도 적용됐습니다. 괜찮지 않는데도 괜찮은 척했습니다. 척을 어려운 말로 하면, 가면이라는 뜻의 '페르소나'일 텝니다. 인간의 페르소나는 생존과 번식의 욕구에서 발달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가장 많이 꺼내 드는 척은 '괜찮은 척'입니다. 소셜 미디어에 꾸며진 모습을 올립니다. 돌아서면, 괜찮아 보이려고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오롯이 고백하기가 쉽지 않지만, 조금은 아픕니다. 운동을 매일 하는 이유이기도 한 증상이 존재감을 드러낼 때마다 두렵습니다. 커리어의 성장이 정체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리운 사람이 보고 싶어지는 게 참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불행이 들이닥칠 때마다, 타인도 남모를 아픔이 있다고 믿으면서, 괜찮은 척해봅니다.
척의 쓸모에 안주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건 이 책을 읽고 나섭니다. 도쿄대 문과, 이과 교수님들이 함께 <어른의 조건>에는 나오는 대목입니다.
자연스럽게 생기는 분노나 초조함을 억제하거나 불신 및 의심이 가는 감정을 봉인하는 행위는 성숙의 정도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는커녕 오히려 퇴화의 징후가 아닐까 싶다. 인간이 다양한 국면에서 감정적으로 격앙하거나 소박한 의문을 갖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책 <인간의 조건>-
애매한 감정과 소박한 의문을 괜찮은 척, 아는 척하며 넘기는 건 '어른인 척' 하는 것일 뿐인 게 아닐까. '괜찮은 어른'이라면, 사회의 익숙한 가면을 써서 난감한 상황을 넘기기보다는 정면으로 마주하는 분일 겁니다. 그리고 직면한 감정을 깊숙이 소화해 나의 언어로 공유 가능하게 표현하는 것. 척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닙니다. 다만 척이 쉬운 길일 때는 잠시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자주 속이고, 어쩌면 소중한 인연을 떠나보낼 수 있다는 것. 그런 거짓말을 하기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