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압박과 병원의 시스템
엄마는 원체 폐로부터 발병된 병들을 많이 앓고 있었고 그 외에도 다른 많은 질병들을 앓고 있었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나의 어린시절부터 엄마의 기침소리와 아프다는 소리와 앓는 소리를 평생을 들어왔던터라 지금도 주변 사람의 아프다는 소리를 들으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엄마의 반평생이 넘는 시간동안 병원을 제집처럼 들락날락 하며 집안에 그득히 들어찬 약봉지를 보는 보호자의 마음이란.
여러차례의 수술을 이겨내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닌 엄마.
나는 엄마의 병원 생활 중 대학병원 세 곳과 요양병원을 경험했다.
대학병원은 친절하면서도 불친절하다.
중환자실에 엄마가 있었을때 나는 도무지 엄마의 상태를 알 길이 없었다.
이틀에 한번 정도 눈치를 보고 전화를 하거나 연락을 취해 물어보거나 그마저도 말이 짧은 간호사 선생님을 만나면 엄마의 상태에 대해서는 도무지 들을 길이 없었다.
그 전화 한통한통도 운이었다.
어쩌다 상냥한 선생님이 걸리면 엄마의 상태에 대해 소상히 물어보고 듣고 나는 그렇게 두달이 넘는 시간을 이겨냈다.
때로는 선생님들도 바쁜 나머지 피드백 전화를 까먹기도 하고, 나는 그런 날은 꼬박 잠을 자지 못해 뒤척이는 새벽을 견뎌내며 아침에 다시 전화를 걸고는 했다.
간혹 대학병원들 중 어플로 환자의 상태를 매일매일 업데이트 해주는 곳이 있다고 한다.
차라리 그런 시스템이었더라면 내가 덜 마음 졸였을텐데.
너무 큰 바람일수도 있다.
하물며 일반 병실에서조차 나는 당황스러운 일들을 겪고는 했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일은 전원할때의 일이었다.
전원하는 요양병원에서는 중환자실에 시간을 물어보라고 하고, 중환자실에서는 요양병원에 물어보라고 했으며, 전원을 돕는 진료협력센터에서는 보통 2시경이다 라고만 통보할 뿐 결국 이곳저곳에 전화를 돌리던 나는 내가 시간을 결정해서 네군데에 전화를 돌렸다.
요양병원/중환자실/홈밴트담당간호사선생님/사설구급차
그마저도 내가 조금이나마 덜 움직였으면 당일날까지도 시간을 몰라 헤매었을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시스템에 대한 말이 다들 달라 헛걸음 한 케이스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환자의 상태에 대해 들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가장 컸다.
특히나 진료협력센터의 존재자체를 모르는 보호자들도 꽤나 많았었다.
도움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나 적어도 나는 우리 엄마처럼 까다로운 환자일수록 ( 홈벤트/격리병실필요환자) 혼자서 알아보기보다는 협력센터가 있다면 잘 활용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모든 병원에 진료협력센터가 있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그만큼 협력센터라는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의미도 된다.
내가 전원을 늦추고 싶어서 늦춘게 아닌데, 코로나 확진이 되는 바람에 병원들을 알아보고 방문하러 외출 자체를 할수가 없어 전원이 늦어지자 대학병원 측에서 먼저 협력센터를 연결해주었다.
당시 엄마는 격리병실이 필요한 환자였다.
항생제를 오래 쓰면 나올 수 있다는 그 균 보균 환자였다. (VRE,CRE 외에도 몇개 더있음)
그조차도 중환자실에서 상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아 나는 온갖 검색을 통해 이런 균에 감염되면 선택지가 폭삭 줄어든다는 걸 알아버렸다.
협력센터의 도움을 받아 몇개의 요양병원을 추린 후, 그 요양병원들에 대해 소상히 검색/발품을 팔아 전원을 하였다.
대학병원의 전원압박을 당하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몸살로 완전 앓아누워버렸다.
시간을 충분하게 주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한명의 침상이라도 더 빨리 비워야 더 위중한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머리로는 알고있다.
머리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