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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Oct 26. 2023

언젠가의 간병이야기

간병하는 후레자식




엄마가 많이 아프셔서요.



나는 태어나서 이때까지 엄마에게 무얼 선물하던, 어떤 말을 했던 때 보다 더 많은

효녀 소리를 들었다.

생전 태어나서 딱히 효녀라고 불릴만큼 엄마한테 물질적으로 잘한 것도 아닌데 그저 엄마가 아프셔서요

한문장으로 나는 효녀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거다.

효녀라고?



가족이 아픈거다.

단 한명 뿐인 나의 가족이 아파서 하는 간병이다.



간병은 힘들다.


 나는 34살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이 보기에 어떨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 분야에서 내 커리어는 이제 정상에 올랐고

나는 이제 그 정상에 오를때까지 쏟아부은 10년의 시간을 수확해야할 타이밍이었다.

2023년 1월부터 시작된 엄마에 대한 본격적인 간병은 나를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3년 2월, 나는 엄마가 중환자실에 내려간지 13일만에 퇴사 선언을 하였고 백수가 되었다.



사람들은 간병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그건 해본 사람만 아는거다.

그게 와상환자던, 거동이 되는 환자건, 인지가 있고 없고 얼마나 어떤식으로 다르게 힘드느냐의 문제지

실질적으로 힘든 건 똑같다는 말이다.



나는 20대 시절부터 엄마와 함께 입원병동을 들락날락거리며 짧으면 3일, 길면 7일을 엄마와 함께 했다.

엄마의 간병인으로서 말이다.

엄마는 아픈 곳이 무척 많은 사람이었다.

기존에 앓고있던 COPD, 그로인해 따라오는 여러 합병증은 손이 많이갈 수 밖에 없는 구조였고,

그로인해 더더욱 잦은 병치레와 간병을 할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의식이 있어 거동이 되는 환자면 편할까?

아니.

환자는 대부분 아픔을 깔고가기에 기본적으로 스트레스나 짜증에 대한 역치가 매우 낮다.

본인이 불러서 한번에 일어나지 않은것만으로도 짜증을 내는 환자, 쪽잠자느라 못들어 어버버하면서 일어나 환자의 요구를 들어주고 화장실을 갈때도 살펴보고 환자가 병원식을 먹을때도 수발을 들고 정작 나는 배를 곪고 있었다.




짧게 끝나면 몰라도 간병이 길어지면 부득이 가족간병을 해야하는 사람은 반드시 퇴사를 할수밖에 없다.

그게 나의 경우였다.

회사에 철판깔고 도와주세요 한마디로 있는 연차 없는 연차를 당겨써야했고 그 연차는 기어코 마이너스로 돌입했다.

그런 상황에서 결국 퇴사를 하게 되고 나는 그때부터 또 다른 걱정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불안감.


그래, 끝이없는 어두운 터널을 걷고 걷고 또 걷고.

대체 이 터널은 언제쯤 끝나는지, 이 기약없는 간병은 대체 언제쯤 끝날런지, 내 인생을 갈아넣고 내 정신력을 갈아넣는 이 고통은 대체 언제쯤 끝날런지, 그러면서도 불안감으로 인해 초조해지고 이 초조함과 불안감탓에 엄마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또 죄책감에 휩쌓이고, 그러면서도 내 말을 안들어주는 엄마에게 속상하고 화가나고 그러면서도 애틋하고 안쓰럽고 걱정되는 이 양가감정.

이런것 때문에 간병이 힘들다.



나는 보호자와 간병인들이 저런 효녀 효자라는 단어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저 말을 들으면 나의 양가감정에 대한 죄책감이 더 커진다.

나는 효녀가 아니다.

그저 하나뿐인 나의 엄마가 아파서, 하나뿐인 내 가족이니까. 내가 사랑하는 엄마니까 해내는거다.

엄마의 대소변을 처리하는 것이나, 먹는것 싸는것 하나하나 기록하는 것 조차도....


간병인을 구하면 되지않냐고?

그래. 그러면 몸은 좀 덜힘들 수 있겠지.

근데 그러면 그 간병인이 내 정신적 불안감과 나의 걱정까지 다 거둬가주나?

아니다.

오히려 더 불안해진다.

간병인이 못되게 굴면 어쩌지?

* 모든 간병인이 그러는건 아니지만 이런 사례는 주변에서 의외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게 문제임 *



예민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엄마는 낯선 사람을 싫어했다.

마음이 불안해 견딜수가 없던지 수차례 오는 전화에 하루는 커녕 몇시간만에 내가 다시 돌아간적도 허다했다.



우리가족을 , 나의 가족을 내 가족 처럼 여기며 간병하는 사람 찾는게 정말이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렵다.

간병인 운은 복불복이다.

나는 여태 여러명의 간병인을 갈아치웠다.

자정에는 반드시 소변통을 비워달라 ( 엄마의 소변양이 무척 많아서 넘쳐나기에 ) 부탁하고 간 다음날 간병인은 교체되었다.

본인은 잠을 자야 일을 한다고............아 물론 당연하지....알지....

간병이 얼마나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는 일인지 알지만, 그래도 최소 자정에 갈지않았으면 엄마의 소변통이 흐르고 넘쳐 역류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국 갈아치우고 갈아치우고 여러차례 갈아치운 끝에 운좋게도 좋은 간병인 분을 만나 엄마는 마음편히 병원에서 이틀을 더 보내고 퇴원할 수 있었다.

그때 당시 나는 나를 대체할 인원을 구할 수 없는 현장직이었기에 결국 출근을 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간병인의 입장과 보호자의 입장을 동시에 경험했다.

5월 중환자실에서 한참 전원압박을 받던때에 집에 가고 싶다던 엄마의 의사표현이 내 가슴을 너무 아프게 할퀴어 나는 집으로 모실순 없냐는 물음을 수차례 던졌다.



내 끝없는 요청에 오죽하면 한 의사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 집으로 가시면 어머님 5일은 커녕, 하루도 안되서 다시 119 타고 오실거예요... "


그 말을 듣고나서야 나는 포기했다.

예전처럼 잠을 못자도 좋으니, 제발 엄마 옆에 있게 해달라는 그 간절함을 포기했다.

나에겐 하루라도 엄마가 더 나와 함께 지상에 발붙이고 있어달라는 욕심이 엄마의 안식보다도 중요한 몹쓸 후레자식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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