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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Oct 25. 2023

나의 하늘이 무너졌다.

2023년 5월 8일 11:01

나의 하늘이 무너졌다.

내 우주가 무너져내렸다.

나의 하늘, 내 우주, 나의 전부였던 엄마가 마지막 숨을 들이 쉬던 날을 기점으로 내 세상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지독하게도 이어지고 있었다.

엄마의 간병일기를 쓰며 마음을 비워내던 날들은 얼마 가지도 못한 채 나의 하늘은 무너져내렸다.



내 손을 잡은 엄마의 숨은 한없이 얕아져만 가고 글로만 접하던 스톡체인 호흡을 귀로 듣게 되었다.

나는 두 다리에 감각이 없어질만큼 오래 서있었으며, 엄마가 눈을 감지도 못한 채 떠나간 이후에도 10여분을 참았다.

마침내 10분이 지나고 나는 울부짖었다.

사람이 죽는 순간에도 귀만큼은 몇분간 열려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울면, 내가 붙잡으면 엄마가 더 괴로워할까봐 10여분을 끝끝내 엄마 사랑해, 엄마 무서워하지마, 엄마 다음생에 내 딸로 태어나줘 따위를 읊으며 엄마를 배웅했다.

차가워지는 손, 얕아지는 숨, 엄마의 퉁퉁부은 손이 온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의사의 사망선고를 듣지 못했다.

어쩌면 듣고 싶지 않아서, 어쩌면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어쩌면 내 감정에 휩쌓이느라, 어쩌면 그 사망선고를 듣지 않으면 엄마의 죽음이 무효화 될 것 같아서.

갖가지 이유를 달아도 엄마의 손은, 다리는, 온 몸은, 눈꺼풀은, 호흡은 더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페이션트 모니터의 모든 수치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떨어진다.

나는 떨어지는 숫자들을 붙잡고 싶어 엄마의 손과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내 세상, 내 하늘, 내 우주, 내가 온갖 애정을 쏟고 아끼던 내 하나뿐인 가족.




장례식장에서조차 나는 엄마를 제대로 배웅하지 못했다.

엄마가 가는 마지막 길을 온전히 배웅하지 못한 것 같다 느꼈던 의사의 사망선고 순간이나 장례식장에서 느낀 기분이나 매한가지였다.

개판 오분전.

내가 사랑하던 내 애정을 모두쏟아 내가 아끼던 나의 하늘이 가는 날 마저도 나는 애도를 제대로 할수가 없었다.

울고 목놓아 또 울고, 엄마의 유골마저 뺏겨버린 그 날 이후 나의 시계는 멈춰있다.



내 하늘을 위해 울던 3일째 날,

장례식장 비용은 1400만원이 나왔다.

내 하늘은, 그렇게 달랑 1400만원 짜리 영수증만 남긴채로 떠나갔다.

살면서 처음으로 그런 큰 금액을 눈으로 보고 결제 했다.

엄마도, 나도, 살아있을때는 생각도 못했던 절차들을 나 혼자서 해야만 했다.

전광판에 상주 이름 내 이름 석자 달랑.

나는 힘이 없다.

나는, 엄마의 유골 한 줌 지키지 못했고, 엄마를 납골당에 모시려 계약금을 지출하고서도 엄마를 뻇겼다.



살아있을때 뭐 하나 도와준거 없고 내 직업이 뭔지도 모르고, 엄마의 친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내 직업, 내 과거, 내 이야기에 대한 지분 1%도 모르는 사람들이, 제사 지내줄것도 아닌 사람들에게 나는 엄마를 애도할 수 있는 마지막을 빼앗겨 버렸다.



장례가 끝나고 나는 빈 유골함을 들고 나왔다.

그 유골함 안에는 생전에 엄마가 나에게 주었던 엄마가 선줄해준 것들을 담아놓았다.

나는 그렇게 엄마를 추모한다.

납골당에 모시기에 빈 유골함이 너무나도 가벼웠고 엄마 역시 원하지 않을 것 같아 엄마의 이름만 적힌 빈 유골함을 끼고 그렇게 내 시간을 잠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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