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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Oct 25. 2023

일상복귀가 어려운 보호자

슬픔에 매몰되지 말지어다.

엄마의 수많은 입퇴원에는 늘 끝이 있었다.

이번만큼 끝이 길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엄마를 병원에 맡긴 죄로 하루종일 불안에 떨어야 했으며 울리는 벨소리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보호자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있을땐 하루 한번 엄마의 상태를 물어보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했었다.

안녕하세요, 이현숙님의 보호자 박송희 입니다. 라는 첫 인사로 전화 받은 상대가 어떤 성향인지

파악하려 최선을 다해야만 했었다.

목소리에 날이 서있는 선생님인지, 바쁜 상황인지를 파악해 엄마의 상태를 묻고는 했다.



병원마다 시스템이 다르다.

이것 역시 처음 알게 된 정보였다.

어떤 병원은 어플로 환자의 혈압이나 피검사 수치 같은 걸 보여주기도 한다는데 나는 운이 무척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상태를 물어보려면 중환자실로 전화를 해야만 했었고, 그 전화한통도 길게는 못했다.

주치의 선생님들과의 면담역시 매일 같이 이루어질수만은 없었다.

바쁜 곳이다.

그들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전화를 하는 와중에도 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그들은 나중에 전화드릴께요 라는 한마디로 전화를 마무리했다.

그들은 돌봐야할 환자가 더 많았다.

나는 면회를 갈때마다 종종 임종면회를 하러오는 가족들을 마주치는 일이 잦았고, 응급환자가 들어가는 장면도 여러번 마주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나는 늘 죄인이었다.

엄마를 병원에 맡겨놓은 죄인.

엄마가 중환자실에 들어간 날부터 요양병원으로 옮긴 지금까지도 내 일상은 오롯이 엄마의 입원 날을 기점으로 멈춰버렸다.

우리집은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쓰레기는 쌓여만 갔고 쌓이는 쓰레기만큼 나는 무기력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맛있는 걸 먹으면 엄마는 못먹을텐데 라는 생각으로 수저를 내려놓게 되고,

재밌는 영화나 웹툰을 보게되면 내가 지금 이렇게 낄낄거릴때가 아니잖아 라는 생각에 다시 침울해졌다.

이런 나를 밖으로 끌어내려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다는 것도 안다.



친한 언니는 이 일이 터지자 마자 집근처 반찬가게에서 양손 무겁게 이것저것 사다가 우리집 냉장고를 채워주었고, 주기적으로 나를 불러다 맛집에 데려갔으며 남자친구는 이런 나를 다독이려 본인 성격에는 잘 되지도 않는 따뜻한 위로를 하려고 노력했다.

친한 친구들은 나에게 일부러 전화를 걸어 내 상태를 확인했고 때로는 만나자고 조르기 까지 하였다.




이 사태가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고 세달이 되어가자 우리집은 드디어 불태워버려야 된다 라는 농담이 나올만큼 더러워지고 있었다.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나의 시계가 멈추었는걸.

다른 보호자들도 나와 똑같을까 라는 생각에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이기는 했어도 이런 무력감과 우울감은 비슷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호자가 슬픔에만 매몰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 넘실거리는 감정에만 젖어 허덕이다가 엄마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놓치고, 해결해야 할 일들을 찾아서 해결할수가 없다.

서류적인 문제부터 시작해 요양병원으로 옮기기까지 나는 많은 일들을 울면서 해결해야했다.

하다못해 병원을 알아보는 일, 엄마가 입원 전 대여해놓은 산소발생기 대여료가 연체가 되는 일 등등.

보호자들은 해야할 일이 슬퍼할 일 말고도 많다는 걸 알았다.

이 우울함과 슬픔에 매몰된다는 건 보호자가 처리해야할 일을 제때에 처리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시간을 돌린다면 나는 똑같이 매몰될테지만 이건 내 나약함에 관련된 문제니 내가 뭐라 할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차라리 형제라도 있었더라면 역할을 나눴을텐데.




현실은 무섭다.

나의 사정이 어찌되었건 현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환자와의 의사소통이 안되는 시점부터 나는 엄마의 카드사가 어느 은행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지를 알아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연체의 늪에 빠졌다.

핸드폰 요금 연체, 산소발생기 요금 연체, 입원 전 엄마가 쓰던 카드사의 연체 등 많은 연체독촉 전화를 받고 나서야 그 일들을 하나 둘 처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중환자실에서 무언가 검사를 위해 나를 호출할때는 아침 9시부터 면회까지 끝내고 나오기 위해 무한정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병원에서 하루종일 굶고 지친얼굴로 엄마를 면회하고 울면서 중환자실 복도에서 무너지기를 수십번 반복했다.

밖으로 나와서는 엄마가 벌려놨던 서류적인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이곳으로 저곳으로 전화를 걸고 길바닥에서 시간을 버리기도 했다.




많은 보호자들이 해야할 일은 마음을 추스리는 것.

나는 그걸 첫번째로 이야기하고 싶다.

환자가 누가 되었던 간에 나의 하늘이 무너진 것은 틀림없으니, 그 슬픔의 시간속에 잠기는 건 나중일이고

우선은 현실을 돌아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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