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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나 May 30. 2024

지금 무슨 노래 듣고 계세요?

취향은 취향일뿐 인생을 걸지 말자

#인생OO #홍대병


 서울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앞, 한남동 카페거리 등 ‘핫플레이스’ 거리를 혼자 거닐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 갑자기 카메라를 들고 다가와 “지금 무슨 노래 듣고 계세요?” 하고 물어보면 어떡하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적당한 플레이리스트를 준비해놓았다.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아미고>를 듣고 있다가, 누군가 다가오면 재빠른 클릭으로 밴드 넬의 <습관적 아이러니>로 넘어가는 연습도 종종 한다. 시크하게 핸드폰 화면 속 앨범 커버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뻔한 케이팝(K-POP) ‘후크송’ 보단 독특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밴드 음악이다. 귀여운 오버핏 티셔츠에 힙한 헤드셋을 끼고 길거리를 걷는 사람. 화룡점정으로 귓가엔 <습관적 아이러니>가 울려 퍼지고 있는 사람으로 전 국민에게 알려지고 싶다. 즐겨 듣는 음악을 전시하고자 하는 욕망은 시대 변화에 맞는 적절한 기술로 표출됐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브금(BGM)’부터 카카오톡 프로필 뮤직, 인스타그램 스토리 스트리밍 공유 기능이 그렇다. SBS 문명 특급 ‘숨듣명’ (숨어서 듣는 명곡), 유튜브 “지금 무슨 노래 듣고 계세요” 콘텐츠가 유행한 걸 보면, 이제 음악은 본인을 소개할 때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된 듯하다.


 MBC 무한도전에 밴드 혁오가 등장했을 때, 일명 ‘홍대병 말기 환자’들이 ‘나만 아는 가수’를 대중에게 뺏겼다며 분노를 참지 못했다. 요즘은 TV 프로그램보다 유튜브 댓글에서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 미국 팝스타 라우브(Lauv) 내한 공연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이 노래 처음에 발매되고 좋아했던 게 어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내한까지 오고ㅠㅠ 진짜 나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퍼져서 너무 흐뭇함” 다음과 같은 대댓글이 잔뜩 달렸다. “님만 알고 있진 않았을걸요;” 서로 나만 알던 가수임을 내세우는 댓글 간 기싸움은 웬만한 빌보드 팝스타나 케이팝 아이돌 영상이 아닌 이상, 이제 거의 모든 콘텐츠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최근에 한국 인디밴드 씬에 빠졌다. 가끔 좋아하는 밴드 음악을 멋들어지는 앨범 커버와 함께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다. “헐 노래 좋다ㅜ 누구야?”라고 묻는 DM(다이렉트 메시지)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내 밴드’가 인정받았다는 것에서 오는 뿌듯함도 느끼지만, 나만의 독특한 취향을 알아봐 준 것에 대한 희열감이 솔직히 더 크다. 그런데 DM을 보낸 이들이 모두 내가 추천한 노래에 푹 빠져 본인 SNS에 올리진 않길 바라고 있다. 이 못된 심보에 대해 생각하다 이 글을 쓰게 됐다.


 취향은 정체성을 표현하는 강력한 수단 중 하나다. 더 이상 가족 구성원 역할이나 직업으로 자아실현을 할 수 없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문제는 취향과 정체성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이다. 요새 나에게도 그런 못된 낌새가 보이고 있다.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것에서 오는 공감보다, 나만의 무언가를 뺏기기 싫다는 불안감이 먼저 발생한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좋아하는 콘텐츠에 ‘인생’이란 단어를 붙여, ‘인생 영화’, ‘인생 음악’, ‘인생 소설’ 등으로 부르고 있다. 특정 취향에 본인의 ‘인생’을 걸다 보니, 이것이 타인과 겹칠 때 쉽게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합집합 형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교집합이 발견됐을 뿐이다.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은 무의식 세상이 시각적으로 잘 구현된 영화다. 주인공 ‘라일리’의 내면 세계에는 다섯 가지 섬이 있다. 섬들은 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들이다. 아이스 하키 선수였던 라일리에게 ‘하키 섬’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섬들은 영원하지 않다. 시간 흐름에 따라 사라지거나 새롭게 생겨날 수도 있고,  이미 있는 섬에 새로운 무언가가 추가되어 보안되기도 하다. 라일리가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하키에 대한 흥미를 서서히 잃게 되자 ‘하키 섬’은 무너졌다. 하키 섬이 무너졌다고 해서 라일리의 인생이 끝난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생 노래’가 겹치는 다른 누군가를 만나면, “나와 섬이 하나 겹치는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이미 지어진 섬들이 사라질까 봐 불안에 떨기 보다, 더 많은 섬들을 발굴하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그러려면 인생을 여러 집합쌍으로 경험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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