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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나 May 30. 2024

‘친한 친구’가 아니라 ‘보여줘도 괜찮은 친구’

인스타그램에서의 선택적 대면 사회

#인스타그램 #커뮤니티논란


 인스타그램에 ‘스토리’ 기능이 도입된 지 벌써 8년이 지났다. 24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삭제되는 인스타 스토리는 피드에 ‘박제’되지 않아 완벽한 이미지여야하는 부담이 없다는 강력한 장점을 가진다. 게시글 업로드는 하지 않고 스토리만 올리는 사용자들도 상당할 만큼, 이제 스토리는 인스타그램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스토리 하이라이트’, ‘스토리 좋아요’ 등 관련된 새로운 기능들도 많이 등장했다. 그중에서 내가 자주 사용하는 것은 스토리 ‘숨김’이다. 대상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본인의 스토리를 숨기는 기능이다. 이 경우 상대방이 내 스토리를 볼 수 없게 된다. 팔로워 중 일부를 ‘친한 친구’ 리스트에 선별해놓고, 그들에게만 스토리를 공유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상대방의 ‘친한 친구’에 해당된다면, 그의 스토리가 보통의 빨간색이 아닌 초록색 링으로 보인다. ‘친한’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나는 처음에 이 초록색 링의 의미를 오해했다. “내가 친한 친구라고? 이 사람 나를 각별하게 생각했구나!” 상대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친한 친구’가 아니라 ‘보여줘도 괜찮은 친구’라는 것을. 가끔 동생 옷을 몰래 입고 나가는 날엔, 그날 하루 동생을 ‘친한 친구’ 리스트에서 제외한다. 친동생이 친한 친구가 아닌 것이다.


  반대로 상대방의 스토리를 숨기는 기능도 있다. 이 경우 상대방이 스토리를 올려도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언팔’ (언팔로우, UnFollow) 과는 다르다. 언팔은 곧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지만, 스토리 숨김은 ‘맞팔’(맞팔로우, 서로 팔로우된 상태)이라는 관계가 느슨하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단지 보고 싶지 않은 상대방의 스토리가 반짝거리는 존재감을 뽐내며 인스타그램 홈 화면 상단에 보이지 않기를 원할 뿐이다. 스토리를 자주 많이 올리는 사람을 일명 ‘바느질 장인’이라 부른다. 여러 개의 스토리를 올렸을 때의 그 빽빽한 모습이 마치 바느질 땀 같다는 점에서 유래된 신조어다. 스토리를 한 땀씩 클릭하다 지치면 아예 통째로 넘겨버린다. 문제는 읽지 않은 스토리가 남아있다면 해당 프로필이 계속 떠서 꽤나 거슬린다는 점이다. 결국 ‘바느질 장인’에게 스토리 숨김을 적용하고 만다. 최근에 어떤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화제가 된 글을 봤다. “진짜 이미지 소비되는 거 싫으면 인스타 스토리 많이 올리면 안 되겠다”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카일리 제너도 아닌데 소비될 이미지란 게 있냐"라고 비판하는 댓글도 많았지만,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이제 스토리 올리는 주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숨김 처리 당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일반인도 이미지를 신경써야하는~)


 이렇게 한 명 한 명 숨기다 보니, 인간 관계망이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다. 내향적인 성격 탓에 현실에서야 애초부터 좁디좁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에서조차 같은 상황이 반복되니 이래도 되나 싶다. ‘소셜 네트워크’라는 단어가 무색하다. 또한 스토리 숨김 기능은 당사자가 설정 여부를 모른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오랜만에 대학교 동기 모임에 나갔다가, 모임에 나오지 않은 친구가 당시 부산 여행 중이라는 것을 나만 몰랐던 적이 있다. 숨김 처리한 것을 들킬까 봐 애써 둘러댔다. 그리고 나만 타인의 자극에 과하게 반응하는 건가 싶어 잠시 우울했지만, 이내 숨김 처리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 친구가 롯데월드에 교복을 입고 간 것에 대해, 주책이니 뭐니 하나둘씩 뒷말을 얹는 것이다. 만약 내가 그 친구를 숨김 처리하지 않고, 반짝이는 프로필 테두리에 이끌려 스토리를 확인했다면 나 또한 똑같이 판단했을 것이다.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은 저서 <그냥 하지 말라>에서 우리 사회는 대면도, 비대면도 아닌 ‘선택적 대면’ 사회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굳이 불필요한 만남은 자제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선택적으로 만난다는 것이다. 이는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이후 확산된 '비대면 문화'가 남긴 몇 안 되는 순기능이다. 여기저기 자극이 넘쳐 아무 생각 없이 끌려가기 쉬운 세상에서, 내가 선택의 주체자가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그 또한 인스타그램의 사용자를 늘리기 위한 마케팅 수법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스토리 숨김 기능도 무한 알고리즘 세계에서 주체적 선호와 판단을 통해 내 감정을 스스로 컨트롤하고자 하는 나름의 노력이라고 위안 아닌 위안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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