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전체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그 시대에 딸 여섯을 모두 대학에 보낸 집안의 장녀였던 어머니는 자연스레 교육열이 높으셨고, 아버지가 땀 흘려 번 돈으로 들여놓은 칼라판 동아백과사전은 우리에게 즐거운 놀이거리였다. 언제부터였던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학 진학으로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 계속 구독해오던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온 가족이 돌려보던 잡지였다. 한 때 언니가 영어 공부에 열을 올리며 잠깐 영문판을 받아보던 시기도 있었으나, 결국 가정의 평화(?)를 위해 국문판으로 복귀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일종의 다른 세계로 향한 창이었다. 주로 미국이 배경이 되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읽었고, 미국식 유머를 익히고, 가끔 영어 공부도 했다. 가족 중 누군가가 화장실에 동반하는 바람에 물기에 부푼 잡지를 봐야 하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어쨌든 꾸준히 우리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었다. 덕분에 밥상 머리 앞에서 함께 이야기할 화젯거리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었다.
이제 우리는 더이상 책을 돌려 읽지 않는다. 세 남매가 모두 다른 도시에 떨어져 살고 있고, 아이가 셋인 언니를 도우려 부모님이 올라와 계시긴 하지만 일, 이 년 내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실 듯하다. 그러면 일 년에 두 번쯤 보는 게 다일 테다.
가끔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떠올릴 때면 어느새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서늘한 마룻바닥에 배를 대고 책을 읽던 양옥집 2층과, 처음 내 방인 생겼던 14층 아파트와, 살림은 넉넉하지 않아도 소소한 행복이 있었던 그때가 돌아보니 참 행복한 시절이었다.
낯간지러운 소리 못하는 경상도 사람들이라 지금도 전화를 하면 '용건만 간단히'를 시전하지만, 그 짧은 대화 안에도 애틋한 마음이 실리는 것은 우리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아주 긴 시간을 쌓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2019.02.14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