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 방영되었던 '남자의 자격' 하모니 편을 한참이 지난 지금에야 유튜브 클립으로 보았다. 당시에 엄청나게 화제가 되었지만, 귀국해 정신없이 일하던 때라 TV와는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이다.
비 전문가들이 합창이라는 것을 통해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가는 모습은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 한 과정 과정이 내게 더 의미 있게 다가왔던 것은 그것이 내가 연극을 배워가던 과정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마추어가 좋은 리더를 만나 전문가로 변해가는 성장의 서사와,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리더십, 전혀 모르던 낯선 타인들이 만나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들이 모두 내가 타국에서 배우가 되어가던 과정과 하나하나 조응이 되었다.
그 아름다운 서사에서 독보적으로 눈에 띈 것은 이 이질적인 사람들을 결국 하나로 묶어내는 박칼린의 리더십이었다.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이 양립되는 보기 드문 이 사람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힘 있는 명언들을 여럿 쏟아내었는데, 그중 하나가 아이 믿 유였다.
연습의 막바지쯤 단원 중 하나에게 칼린 선생이 농담처럼 물었다.
'I meet you'가 무슨 뜻인지 알아요?
나는 당신을 믿는다는 말이에요.
썰렁한 농담으로 구박받을만한 그 엉터리 영어에는, 놀랍게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바로 '신뢰'라는 것이다.
내게도 이 '믿음'이라는 마법의 열쇠를 선물 받은 몇 번의 경험이 있다.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섰을 때,
처음으로 책을 출판했을 때,
처음으로 사무실을 열었을 때,
내 옆에는 이런 말을 해 주는 이가 있었다.
너를 믿어.
그 말들이 여기까지 나를 이끌어 왔다. 우리는 지극히 연약한 존재이기에, 태연한 척하는 겉과는 달리 마음 한 구석 보이지 않는 곳에 언제나 크고 작은 두려움을 내재하고 있다.
내가 이것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성공할까? 하는 질문을 끝없이 해댄다. 그런 자기 의심이 우리를 무릎 꿇게 할 때즈음, 우리를 사랑하는 이들이 해주는 말이 이 말이다. '너를 믿어.'
그 마법 같은 말을 들으면, 세상이 개벽한다. 바로 직전까지도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도 멋지게 해낼 수 있을 것만 같고, 없던 재능도 어디선가 생겨나 갑자기 천재가 된 듯하다.
그러니 우리, 구박을 감수하고라도 이 썰렁한 농담 한 마디씩 던지며 살자.
아이 믿 유
라고.
2019.02.12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