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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Jun 12. 2019

'간판의 신' 님과의 인터뷰

간판으로 돌아보는 거리 풍경

원문

http://jaeminahyo.com/?p=20741

주 : 지난 2014년, '디자인 서울 뉴스레터'에 기고했던 글을 조금 다듬어, 브런치에 올립니다.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이 글에서 묘사되고 있는 간판을 둘러싼 세부 정책의 내용에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천경환 (이하 ‘천’) : 안녕하십니까. 게으른 건축가 천경환입니다. 이번에 모실 분은 간단히 소개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간판문화를 짚어보기 위해 서울시에서 어렵게 섭외했다고 하는데, 실은 저도 이 분의 정확한 정체를 아직 잘 모릅니다.  어서 오십시오. 이름이 어떻게 되시지요?


간판의 신 (이하 ‘간’) : 응. 나는 ‘간판의 신’이야.


천 : 네?


간 : 간판의 신! 내가 인간이 아니라 신이거든. 하하, 표정을 보니 조금 당황스러워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너무 긴장하진 말고, 편하게 대해 줘.


천 : 아니요. 조금 놀랐지만, 지난번에 버스정류장 하고도 인터뷰를 해 본 터라, 그렇게 크게 당황스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설명이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정체에 대해서 말이죠.


간 : 응, 나는 서울시에 설치된 ‘옥외광고물’, 간단하게 ‘간판’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총합이야. 사람들은 눈  앞의 대상들을 곧잘 생물과 무생물로 나누고, 생물에는 의식이 있지만 무생물에는 의식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사실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는 희미한 ‘의식의 싹’이 들어있거든. 몇 년 전, 수 없이 많은 간판들마다 따로따로 깃들어있던 ‘의식의  싹’들이 모여서 하나의 또렷한 자의식으로 태어났는데, 그게 바로 나야. ‘서울시 간판의 대표’라고 할까?


천 : 아, ‘간판의 간판’이라고 할만하군요. 대단한 분 모시고 인터뷰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몇 년 전에 태어나셨다고 말씀하시는데, 정확히 언제인가요?


간 : 2008년 3월 12일, 서울시에서 ‘서울시 옥외광고물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었지.  그리고 2012년 9월 28일, 그 내용이 ‘서울특별시 옥외광고물 등 관리조례’(이하 ‘조례’)에 본격적으로 반영되었어. 나는 그즈음에 이렇게 또렷한 의식으로 각성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해. 그 전에도 간판들에 대한 이야기가 적지 않았지만, 그냥 ‘보기 안  좋고 어지럽다!’는 식으로, 산발적으로 내뱉었다가 흐지부지 사라지는 막연한 감상평이 대부분이었지. 해결이나 개선을 위한 공식적인  의제로 관심받진 않았었거든. ‘가이드라인’이 ‘조례’에 반영되어 실행되면서, 간판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지고 간판을 둘러싼  여러 사건들이 벌어지더라고. 정비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옳다 그르다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고. 또 더러는, 간판을 철거하는  공무원이랑 가게 주인 사이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하고 말이지. 그런 분위기 속에서 몸이 슬슬 달아오르다가, ‘희미한 우리들’에서  ‘또렷한 나’로, 어느 순간 불쑥 발돋움하게 된 거지. 마치 하나의 인격체처럼 말이야.


천 : 따지고 보면 ‘가이드라인’ 발표가 결정적인 계기였군요. 구체적인 내용을 기억하시나요?


간 : 그게, 나로서는 정말 중요한 사건이지만, 내가 워낙 ‘흩어진 의식들’이 우발적으로 모여서 태어난 자의식이라, 원래 기억이 좀 가물가물해. 정신도 있다 없다 하고 말이지.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에서 찾아봐.


천 : 그래요. 그러면, 제가 지금 검색해 볼게요. 어디 보자. 아, 여기 있네요! 제일 처음에 나오는 전제가,  “간판은 업소를 알리는 ‘상업 수단’이자 도시경관을 이루는 ‘미관 요소’이고, 그래서 ‘업주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군요. 쉽게 말하자면, “간판은 업소 주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니, 서울시에서  참견을 좀 해야겠다.” 는 이야기인가요?


간 : 그렇지! 그게 바로 모든 간판들이 짊어질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거든. 우리 간판들은 가게  주인들이 자기 돈 벌기 위해 자기 돈 들여서 만든 것이기는 해도, 온전히 가게 주인만의 소유물이라고 하기 힘들어. 우리들이 모여서  거리 풍경이 이루어지는데, 거리 풍경은 서울시민 모두의 것이잖아.


천 : 그래요? 그런가?


간 :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모양이군. 온전히 ‘내 것’인 것 같은데, 사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의 것’인  경우가 의외로 많아. 예를 들어, 땅도 그래. 힘들게 모은 내 돈으로 산 땅이라, 그 땅 위에 건물을 내 마음대로 지을 수 있을 것  같지? 그런데 그렇지가 않아요. 모든 땅에는 건물의 쓰임새, 크기, 넓이, 높이, 생김새 등에 대한 규제가 있다고. 정해진 틀을  넘지 않는 선에서 지어야 하는 거지. 왜 그러겠어. 빈 땅에 건물이 들어서면, 시원하게 통하던 햇볕이나 바람이 막히고, 멀리  보이던 경치도 가려지고, 사람이나 자동차의 흐름이 새롭게 생기기도 해. 건물 안에 사람이 살면서 온갖 소음이나 쓰레기들이 주변으로  흘러나오기도 하고. 땅과 건물은 분명히 어느 개인의 소유물이지만, 땅과 건물로 인해 생기는 온갖 효과들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잖아. 그래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이 땅에는 이런 종류의 건물을 이렇게까지만 지어야 한다!”라는 식으로 참견을 하는  거라고. 결국, 땅이나 건물은 주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해.

간판도 마찬가지야. 건물만큼은 아니겠지만, 거리 환경에 큰 영향을 끼치거든. 주로 시각적인, 풍경 연출에 관련된 영향일 텐데,  지나치게 번쩍거리는 빛이 이웃의 수면이나 운전을 방해한다는 차원의 이야기도 할 수 있어. 길가에 커다란 간판을 설치한다는 것은,  길 한복판에 서서 커다란 목소리로 고함지르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고 봐. 아무데서나 목청껏 소리치면 안 되듯, 자기  마음껏 되는대로 간판을 달면 안 되는 거야. 아니, 너는 건축가라면서 이런 개념도 몰라?


천 : 아, 뭐. 모른다기보다,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짐짓 모른 척한 거죠.


간 : 아닌 것 같은데?


천 : 아무튼, 이런 기본적인 전제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말씀 들어보면 대충 취지가 이해는  되는데, ‘목숨 걸고’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간판에 대한 간섭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요. 간판 크기 줄이고, 전면에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플렉스 간판 대신 글자에만 불이 들어오는 형식이나 간접조명 형식의 간판으로 바꾸라는데, 그렇게 해서 손님 줄어들면  어떻게 할 거냐고요. 서울시나 구청에서 책임져줄 것도 아니잖아요. 안 그래도 먹고살기 힘든데, 새롭게 돈을 들여서 작은 간판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황당해요.


간 : 내가 명색이 ‘간판의 신’인데, 간판을 설치한 상점 주인들의 심정을 왜 모르겠어?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지.  거리에 빼곡히 들어찬 간판들마다 가게 주인의 애절한 바람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아. 아니, ‘애절한  바람’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해. 주인의 온갖 희로애락이 담겨있는 게 우리 간판이야. 우리를 쓰다듬으며 활짝 웃는 주인들도  많았지만, 우리를 부둥켜안고 펑펑 우는 주인들도 많았어. 수 없이 겪어왔던 일이야.


(사진: 건축가 최민욱 제공)


그런데 나는 간판 주인의 마음뿐 아니라, 우리 간판들의 사정이나, 길거리에서 우리를 욕하는 사람들의 심정, 그리고  가이드라인을 만든 사람들의 취지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간판답지 않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우리를 만든 가게  주인의 절박한 심정을 알고, 그래서 스스로가 자랑스럽기도 한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에 대한 기대가 무지 부담스럽기도 해.  각각의 간판이 아무리 크고 요란하다고 해도, 수많은 간판들이 건물 전체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상황이라면, 사실은 ‘어느 특정  간판을 알아보는’ 효과가 그리 크지 않거든. 그래서 기대만큼 역할을 하지 못할 때가 많아. 어쩔 수가 없어.

그 와중에도 우리를 만든 주인의 마음이 의식되기도 하고, 그리고 워낙 다들 덩치가 크니까 덩치 값이라도 하겠다고, 각자  커다란 목소리로 악다구니를 써대는 거야. 그러는 와중에 옆 간판이랑 우연히 눈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서로 민망하기도 해. 옆  친구보다 조금이라도 더 튀어 보이겠다고 우리 간판들끼리 얼굴 붉히는 일도 허다하고.


천 : 듣고 보니, 나름 마음고생이 심하시겠어요.


간 :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짜증 내는 사람들도 많아. 우리들 때문에 거리 풍경이 워낙 정신없이 어지러운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스스로 이런 말 하기 좀 그런데, 우리가 또 그리 잘생기지도 않았어요. 참 교양 없고 볼품없이 생겼다고  생각해. 한마디로 못생겼어! 더러 센스 있게 디자인된 간판들도 가끔은 있지만, 대부분이 그래. 천박하게 생겼어! 싸구려 술집 여자  같아!


천 : 저는 그런 술집 가본 적 없어서 잘 와 닿지 않네요. 아무튼 너무 자학하진 마세요. 안쓰러워요.


간 : 그런데 웃기는 건, 그렇게 어지러운 풍경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던 사람이, 정작 자기 가게 간판은 또  요란하게 만들어 붙이더라는 거야. 평범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대부분 그렇게 굴러가더라고. 봐. 이게 남의 탓을 할 일이 아니야.  간판으로 어지러운 풍경은 서울의, 아니, 대한민국의 거울이야. 대한민국의 초상이야. 애들 교육만 해도 그래. 모든 아이들을 위한  공교육 투자는 아깝게 생각하면서, 자기 아이만을 위한 사교육에는 아낌없이 돈을 쓰는 모습을 봐. 건물이나 거리에 대한 배려는  하나도 없고 자기 가게 선전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이랑 다를 게 뭐가 있어?


천 : 음,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것 같은데, 아무튼, 가이드라인을 마저 읽어볼게요. ‘가이드라인의 기본방향’이  나오는데, 정리하자면 간판의 수량과 면적, 정보량을 최소화하고, 디자인이나 색채, 재질의 측면에서 건축물과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런 내용이네요.


간 : 응. 이게 문자 그대로 ‘기본방향’이야. 수량이나 면적 등 ‘표현의 세기’를 줄이고, 건물이나 거리 풍경  등 ‘배경과의 조화’를 유도한다는 게 핵심이지.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이런 방향의 변화는 각각의 간판 주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기에, 반강제적으로 지침을 만든 거야.


천 : 그다음이 재미있네요. 도시 공간과 간판 형식을 각각 유형별로 구분했어요.


간 : 아, 맞다. 그런 식으로 되어 있었지. 이제 좀 기억이 난다. 도시를 중점/일반/상업/보전/특화, 이렇게  다섯 가지 ‘권역’(圈域)으로 나누고, 각 권역의 성격, 특성, 디자인 개념 등을 정리했더라고. 간판도 마찬가지로  가로형/상단 부착형/연립 가로형/돌출/소형 돌출/지주이용/창문이용 등으로 나누고.


천 : “1. 기본방향을 염두에 두고, 2. 도시를 이루는 다양한 성격의 공간에 맞추어, 3. 적합한 종류의 간판을 적용해라.” 는 내용이군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어요.


간 : 우리 간판의 종류가, 알고 보면 제법 많거든. 건물에 고정되는 방식이나 크기에 따라서 여러 종류로  나뉘는 거라고. 테헤란로랑 가로수길에 같은 종류의 간판을 설치하는 것은 이상하겠다는 이야기지. 가로수길이랑 인사동이랑도 각각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겠고. 예를 들자면 말이야.


(사진: 건축가 천경환 제공)

(사진: 건축가 천경환 제공)


천 :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지 벌써 6년이 되어가는데요.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간판정비 사업이 꾸준히  진행되었고, 그러면서 서울시의 거리 풍경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커다란 판으로 만들어진 간판들이 빽빽하게 나열되면서 거의  건물 전체를 가려버리는 식이었잖아요. 정비사업을 통해 커다란 판이 작은 글자로 바뀌면서 건물 표정이 한결 맑아진 듯한 기분이  들어요. 간판 부착 위치도 창문 간격 등에 맞춰서, 한결 가지런해진 느낌이고. 그래서 흔히 말하는 건물과의 조화도, 예전보다는  많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이에요.


간 : 넓은 면에다가 큼지막한 글자를 꽉 차게 써 놓으면 잘 읽힐 거라고,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하더라고. 공부 많이 하신 분들 말씀이, 시원스럽게 비워진 여백을 배경으로 작고 얇은 글자를 살짝 얹어놓는  방식이 읽기에 오히려 더 편하다고 해. 덕분에 거리나 건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 것 같고. 풍경이 느슨해지고,  여유가 생겼어.


천 : 그런데 왠지 좀 어색해 보이기도 해요. 산뜻하고 밝아졌다는 점은 인정하겠는데, 이게 현실이 아니라 드라마 세트장이나 놀이공원 같은 느낌이랄까요? 오랫동안 익숙했던 풍경이 갑자기 바뀌어서 낯설어 보이는 것이겠지요?


간 : 아무래도 그런 기분이 들 수밖에 없지. 수 십 년 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던 풍경인데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렸으니, 어쩔 수 없이 낯설어 보이는 거지. 그리고, 큰 틀에서의 취지는 옳은 것 같은데, 글자체나 두께, 간격이나 배열  방식 같은 구체적인 디자인 수법 상으로는 아직 좀 더 다듬어질 필요가 있어 보여. 글자 크기를 줄인다는 것은 분명 유효한  방향이야. 그런데 글자 안에 조명을 넣느라, 글자 두께가 일률적으로 도톰해진 것이 문제야. 한글은 획이 촘촘하게 배열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글자 두께가 도톰해지면 뭉쳐서 잘 읽히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글자 크기나 배열 위치는 가지런하게 맞추되,  글자체라든지, 혹은 글자가 빛나는 방식은 다양하게 하는 것도 생각해 볼만해.


천 : 어지럽고 난잡한 간판 풍경 또한 나름의 역사고 기억일 텐데, 씨를 말리듯 완전히 없애는 식으로  정비되어서는 곤란하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오래된 건물이 문화재나 근대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서 보존되는 것처럼, 유명한 가게의 오래된  간판에 대해서도 그런 개념을 적용해서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든다면 장충동의 족발집들 같은 경우지요. 동대입구에서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서 오래된 족발집들이 늘어서 있는데, 다들 저마다 원조라고 주장하느라 ‘원조 아무개 족발’이라는  간판들이 큼지막하게 붙어있잖아요. 맥락에 대한 아무런 이해 없이 그래픽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분명히 어지럽고 난잡해서 정비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추억이나 역사에 관련된 맥락에서 보면, 그 간판들에 수 십 년 동안 쌓인 장충동 족발거리의  정체성이나, 개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사진 : 건축가 최민욱 제공)


새롭게 지어지는 건물이나 새롭게 형성되는 신도시의 간판들은 당연히 가이드라인에 맞춰 통제되어야겠지만, 오래된 거리의 오래된  간판들은 선별해서 보존할 수도 있겠습니다. 북촌이나 서촌 같은 유서 깊은 동네에 가면, 개성 넘치는 옛 간판들을 더러 보게  되는데, 가이드라인 상의 크기 규정을 따져가며 철거하기에는 너무 아깝더라고요.


간 : 그런 가치를 인정해줘서 정말 고마워. 역시 건축가라 생각하는 게 남다르네! 앞서 못생겼다며 자학하기도  했지만, 당신 말처럼 간판 안에는 사고방식이나 가치관, 그리고 기술 수준 등, 당시의 시대상이 담겨있지. 유서 깊은 거리에는 품격  있는 영혼이 깃드는 법인데, 줄줄이 늘어선 촌스러운 간판들이 그 영혼을 담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해. 겉모양이 조잡하고  촌스럽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지금 관점에서 신선하게 보일 수도 있고.

의미 있는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면, 의미 있는 간판 또한 보존해야겠지. 당연한 일인데! 아, 갑자기 자긍심이 한껏 높아지는 기분이야!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


천 : 감정의 기복이 심하신 것 같아요. 남은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 진행을 좀 서둘러야겠습니다. ‘가이드라인’의  개략적인 내용이나 취지를 이해하겠고, 그동안 적지 않은 성과도 있었다는 사실도 알겠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실행  과정에서 불편을 느끼는 분들도 많이 있는 것 같던데요.


간 : 응, 생각지도 못했던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되더라고. 새로 이사 오면서 이전 간판을 떼어내고  새로운 간판을 설치하는 와중에, 이전 간판과 엇비슷한 크기와 형식으로 만들어서 붙였다 이거지. 그런데 뒤늦게 구청에서 ‘새롭게  만들어서 붙이는 간판은 새롭게 생긴 규정에 맞추어 붙여야 한다!’라며 철거하고 다시 만들어서 붙이라고 하더라는 거야. 옆 가게는  예전의 큰 간판을 계속 달고 있는지라 당장의 형평성에 잘 맞지 않게, 불공정하게 느껴지는 거지.


천 : 정책의 명분이나 커다란 방향만큼이나 현장에서 피부로 느껴지는 집행 방식 또한 굉장히 중요할 텐데, 그런 면에서 빈 틈이 있었군요.


간 : 응, 물론이지. 불공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억울하기도 하거든. 옆에서 누구도 그런  규정을 알려주지 않았단 말이야.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막연히 예전 간판만큼, 혹은 옆집 간판만큼 설치하면 되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거지. 규칙을 세우고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리 알려줘서 위반을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겠지. 그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야.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구청에서 세운 규칙이 있어. 그걸 큼지막하게 인쇄해서 해당  거리에 자리 잡은 부동산 중개업소에 나누어주면 쉽게 해결될 일이야. 부동산 중개업소 안에 포스터처럼 걸어두라고 해. 그럼 가게 임대  계약하는 사람들이 저절로 알게 될 테지. 간판 관련 규칙을 미리 안내받지 못해서 낭패를 보았다면, 철거 및 재설치 비용을  부동산 중개업소가 내라고 하고.


천 : 재미있습니다. 그럴듯한 아이디어인데요. 그런데, 요즘 막 새로 지은 건물에 입주하는 경우는 몰라서 어쩔 수  없이 위반하는 사례는 별로 없겠어요. 건축허가 과정에서 간판 크기나 부착 위치를 구청에서 확인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건축가들도 건물 디자인에 그런 사항들을 미리 반영하기도 하고요.


간 : 응. 그래서 간판 관련 착오나 해프닝이 많이 줄어들고 있긴 한데, 그 와중에도 가게 주인들이 적극적으로 편법을 찾아서 활용하는 경우도 있어.

(사진 : 건축가 천경환 제공)


요즘 지어지는 건물에는 간판을 모아서 붙이는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그 외의 자리에 마음대로 붙이면 안 된다는 사실을  건물주도, 임대인도 잘 알아. 그래서 하는 짓이, 자기 유리 벽에 밖에서 보라고 커다란 글자를 붙이는 거야. 햇볕을 가리는  스크린에 글자를 인쇄하기도 해. 실내에서 붙이면 별 문제가 안 될 것이라 생각하나 본데, 엄연히 불법이거든. 가게 하나가 그런  짓을 하면, 근처 가게들도 금방 따라서 하게 되더라고. 자기 혼자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볼 것 같으니까. 그래서 결과적으로 깔끔하게  잘 디자인된 건물 얼굴이 완전히 망가질 때도 있지. 그런 걸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지.


천 : 적발되어 시정명령을 받아도, 실내 유리면에 붙인 스티커 방식의 글자를 뜯어내고 약간의 과태료를 물면 되니까,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거죠. 과태료나 철거비용보다 그동안의 광고 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사진 : 건축가 천경환제공)


간 : 그런데, 그렇게 해서 건물 얼굴이 망가지면, 당연히 그만큼 건물 이미지가 나빠지는 거야. 큰 맘먹고 세 들어온 고급 건물이 한순간에 싸구려 건물로 비추어지게 되는 거라고.


(사진 : 건축가 천경환제공)


천 : 그리고 건물이 자리 잡은 동네가 싸구려 동네가 되는 거고요. 그만큼의 피해를 자청하고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걸까요. 아니면 그런 것은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일단 장사만 잘 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이런 위반은 구청에서 단속 나오기 전에, 건물 주인이 막아야 한다고 봐요. 건물에 대한 투자의 의미, 그리고, 자기 자산의  가치를 지킨다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건물주라면, 비싼 돈 들여서 정성껏 지은 예쁜 건물을 망가뜨리지 말라고, 내 건물이  자리 잡은 이 동네 분위기를 망치지 말라고, 그렇게 따져야지요. 건물의 가치는 건물을 빌려 쓰고 있는 사람들의 양식, 그리고,  건물이 자리 잡은 동네의 이미지와 별개일 수 없거든요. 사람이 좋고 동네가 좋아야 건물도 좋아지는 거라고요.


간 : 그러게.


천 : 피곤하신가 봐요.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오랫동안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뵐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간판 개선사업이 잘 정착이 되어 간판을 둘러싼 잡음이 줄어든다면, 선생님의 존재 자체가 저절로 소멸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간 : 하나로 통합된 또렷한 의식은 사라질지 몰라도, 거리의 추억을 지키는 영혼들 중 하나로, 희미한 ‘의식의  싹’의 형태로, 도시와 거리가 존재하는 한, 나는 계속 살아있을 거야. 불러줘서 고마웠어. 하고픈 말을 시원스럽게 풀어놓을 수  있어서 후련했어. 안녕.


천 : 안녕히 가셔요!


인터뷰를 마치며 :  '간판의 신' 님과의 인터뷰는 때로는 유쾌한 분위기에서, 때로는 다소 슬픈 내내 유쾌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그 동안 쌓인 사연이 많아서인지, 감정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인터뷰 도중 집중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이기도했다. 서울에는 '간판의 신'님 말고도 아직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다른 많은 분들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독자 여러분의 참여와 제보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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